(아불야불 6) 막장드라마보다 더 막장 같은

LG스코어의 탄생!

by 잼벅

2023 시즌 한국시리즈 3차전이 그랬다. 끝났다고 생각하면 또 역전이 되고 그 역전마저 또 재역전이 되는 게임이라니.



박용택 해설위원도 윤희상 해설위원에게 혀를 내두르며 탄식한다 "이건 예측이 안 되는 게임이라고요!!"


정말 '끝나야 끝난 것'이라는 요기 베라의 말이 저절로 떠오르는 오싹하게(?) 끓어오르는 게임. 냉탕과 온탕을 공간 이동하는 것 같은 도무지 끝을 모르는 게임.


이게 드라마나 영화라면 시청자나 관객은 채널을 돌리거나 '이런 막장이 있나'하며 욕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가상의 스토리가 아니라 2023넌 11월 10일 수원 kt wiz 야구장에서 벌어진 실제 스토리이다. 그래서 욕 대신 '오, 마이갓!'이 나온다.


그냥 한 게임이 아니다. 한 게임이지만 열 게임 이상을 본 듯한 포만감이 든다. 거의 매일 게임을 직관하는 팬으로서 올 시즌 내내 이런 게임을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지난 몇 년간 이런 게임 본 적 없다.(기억을 100%까지 믿을 수는 없지만 ㅎ)


평소에 야구에 눈길을 주지 않는 사람들도 이 게임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야구 팬이 될 지도 모른다. 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 기웃기웃하는 정도는 되지 않을까. 다른 종목의 선수들은 “어쭈 이것 봐라!”하면서 속으로는 긴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결정적인 실책을 한 선수의 역전 홈런이라니! 그는 한때 대한민국에 존재하던 욕이란 욕은 다 먹던 선수다. 그 이유는 다 알 것이니 굳이 말하지 않겠다. 지난해에는 25개나 쳤던 홈런을 올 시즌에는 8개밖에 치지 못한 선수가 한국시리즈의 향방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결정적인 홈런을 쳐낸다.(그는 4차전까지 3개의 홈런을 치며 새로운 기록을 써가고 있는 중이다)


타자는 5-7대로 뒤진 9회초 투아웃 주자 1, 2루인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다. 상대 투수는 초구로 체인지업을 던진다. 잘 던지지 않는 공이다. 많이 빠진다. 초구를 골라내며 다음 공이 무엇일까 생각하는데 뭔가 느꼈는지 포수가 마운드로 가서 투수에게 뭐라 한다. 타자는 짐작해본다. 뭐라 했을까? 편하게 평소대로 던지라고 하지 않았을까. 타자는 직감한다. 그럼 직구다. 상대투수의 직구 구사비율이 70% 이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그의 방망이는 시원하게 돌아간다. 그렇게 역사가 만들어진 것이다.


축구에서 제일 재미있다는 펠레스코어가 있다. 아마 3-2이든가. 이 김에 야구에서도 하나 만들면 어떨까. '엘지스코어'!특정그룹의 이름이 들어가서 좀 그렇긴 한데 뭐 그게 대수라고.


LG스코어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 세번 이상의 역전

- 9회에서의 최종 역전

- 최종 역전은 홈런으로 이뤄질 것

- 스코어는 4점 이상(승리팀 기준)이되 최종적으로 1점 차이일 것

(경기 중 큰 실책을 저지른 선수가 최종 역전 홈런을 치면 최상급이다. ㅎ)


스토리는 그것만이 아니다.


그토록 철벽 같던 불펜 투수가 무너지고 리그 정상급 마무리투수가 홈런을 맞는다. 저 투수들의 심정은 어떨까. 감독이 막으라고 올렸는데 역전 홈런을 맞은 기분? 일그러진 얼굴로 마운드에 그대로 주저앉는 모습이 처절하다. 상대팀과 관중의 환호 가운데 외딴섬처럼 혼자 고립돼있다.


꽁꽁 얼어붙은 왕년의 홈런왕이 드디어 침묵을 깨고 홈런을 터뜨렸는가하면 출루머신으로 불리는 선수가 포스트시즌 징크스를 깨고 안타를 쳐댄다.


의외의 일이 수시로 벌어지는 곳이 야구장이긴 한데 이처럼 대량(?)으로 세게 벌어지는 일은 드물다. 처음에는 당황스럽지만 곧 통쾌함이 뒤따른다(물론 상대팀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좌절하지는 않다. 다음에 보자!하며 결기를 끌어올린다) 그리고는 외친다.


'그래 바로 이맛이야! 이래서 내가 야구를 본다니까'


체감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날씨 탓에 볼이 사과처럼 빨갛게(얼마나 빨간지 귀엽고도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된 어린 팬의 뜨거운 응원도, 29년만의 우승을 기원하며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일제히 유광잠바를 차려 입고 나온 팬들의 응원도 볼만하다.


오랫 동안 기다린 게 또 있다.


선대 그룹회장이 우승하면 주려고 한 아오모리 소주와 최우수선수에게 선물하려고.한 롤렉스 시계! 엘지도 너무했다. 아무튼 그것들은 드디어 세상구경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또 하세월 기다려야 할까.


이렇게 보면 게임은 수많은 스토리들의 덩어리다. 그리고 그 덩어리 안에 있는 하나 하나의 스토리에는 바람, 욕망, 비탄, 약속, 결기, 후회 등이 잔뜩 묻어있다.


이 모든 것들이 얽히고 설키면서 '한편의 드라마 같은' 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 맞다 맞어!!


문득 생뚱맞게도 이것도 살아야하는(버텨야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못 보면 너무 아쉽지 않나. 꽃은 해마다 피지만 이런 게임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버킷리스트가 별 건가. 점점 메말라가는 세상에 단비처럼 우리를 촉촉히 적시는 이런 스토리들이라면 거기에 들어갈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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