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삶은 신산하다.
본래부터 유한한 존재임에도 비로소 남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음을 실감한다. 50년에서 30년으로 줄어든 것 뿐인데 실제는 3년밖에 남지 않은 것 같지 않은 절박함에 빠진다. 사회적 쓸모가 사라졌기 때문일까. 상실감을 못 이겨내는 까닭인가. 아무튼 저만치 저승사자가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은 사람을 더없이 위축시킨다. 제기럴!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산전수전 다 겪어본 나 아닌가'하며 분연히 떨쳐 일어난다. 곧 죽어도 고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다리에 영 힘이 실리지 않는다. 마치 공기를 잡겠다고 내두르는 팔같이 허망할 뿐이다.
철학자라도 된 것처럼 '인생은 무엇인가?' 물어본다, 젊을 때와 질문은 같지만 그 결은 사뭇 다르다. 그렇다해도 답이 보이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 좋다 그러면 재미있게라도 살아보자!' 때 아니게 결의를 다지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마침 허준이교수가 근자감을 가지라고 해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보지만 왜 이리 기운이 나지 않는지 스스로 민망하고 또 처량하다.
인생은 유희일까 유리일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에도 까르르 하며 웃는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을 보면 전자가 맞아보이는데, 벤치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욱 늘어앉아 있는 노인들을 보면 후자가 맞아보인다.
인생? 종 잡을 수 없다. 그때 스쳐가는 생각이 있다. '그래, 통합적 사고인가 뭔가도 있지 않은가. 유희도 되고 유리도 되는 거겠지. 정치인들의 수사처럼 세상이 어떻게 딱 나눠지냐고.'하며 대충 넘긴다. 그러고보니 대충 넘기는 거, 그거 하나는 잘 되는 편이다. 그거라도 어디인가하는 위안이 찾아온다.
이제는 '몰라몰라. 나만 가나? 다 가는데.' 하며 대충 넘겨진다. 하하하. 난 좀 뻔뻔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