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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구원해주지 않을 걸!

꽃마리를 만난 날의 커피 맛

by 잼벅

사는 게 너무 꼬이거나 할 수 있는 거라고 없을 때 자신도 모르게 '구원'의 손길을 찾는다. '이 구렁텅이에서 나 좀 구해줘'!라며 절규한다. 물론 뭉크의 그림 속 인물처럼은 아니더라도 마음이 한없이 무너져 존재 자체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는다


구원의 손길은 누구로부터 올까. 친구나 가족일까, 아니면 종교일까. 아니면 돈일까. 사람마다 처지와 생각이 다르니 정답이 있기 어렵다.


내 속의 어려움을 경청해주고 쓰다듬어줄 친구가 있다면 좋을 것 같다. 고통 속에서 그런 친구의 존재는 말할 수 없는 위안이 될 것 같다.

배우자나 가족이 친구 같은 역할을 해준다면 마찬가지로 좋을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가 가족주의를 부르짓는 것일까.

부처님이나 주님이 나를 구윈해줄 수도 있다. 그분들이야말로 구원을 외치는 분들이니까. 물론 부처님은 절대자가 아니라 안내자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결국 돈이지 않을까. 돈만한 게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을 수 있다. 국가별 가치관 조사에서 한국사람은 돈을 첫번째로 꼽았다고 하니. 돈이 많으면 병이나 궁핍한 일상이나 각종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완벽한 정도는 아니고 어느 정도의 구원이라고 봐야한다. 부자가 10년을 더 산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는데 돈의 구원은 이 정도 아닐까.

어쩌면 근육 아닐까. 근육은 자신감을 높이고 질병의 확률을 낮추고 힘들 때에도 더 잘 견뎌내는 힘을 줄 것 같다.


너무 작아 잘 보이지도 않는 꽃은 어떨가.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아침에 일어나는 것조차 싫을 때 억지로 일어나 씻지도 않은 채 츄리닝 차림에 모자 푹 눌러 쓰고 커피를 사러나가는데 작디작은 꽃이 눈에 들어온다. 그 꽃이 말이라도 건 듯 가다말고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는데 자신도 모르게 말이 나온다. "넌 뭐냐?너무 작은 거 아니야?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겠다!" 뭔가 안타깝고 애잔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정지된 삶이 다시 흐르는 느낌이 든다. 혹시 이것이 구원 같은 거 아닐하는 생각이 고개를 쏘~옥 내민다.


그 작은 몸으로 거친 비바람을 견뎌내니 얼마나 당당한가. 사람도 날려버릴 것 같은 강풍 앞에서 꽃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떨지는 않았으리.(그랬다면 부러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덤비지도 않았으리.(승산없는 싸움이었으니) 오히려 바람과 하나되는 쪽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볼수록 그 꽃이 멋져보였다.


사실 이건 내 얘기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꽃의 이름은 '꽃마리'이었다. 꽃대가 말려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름도 멋지다.

꽃마리를 만난 봄 어느 날 커피 맛은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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