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불야불 2) 팬이 치면 개안타!

by 잼벅


응원만큼 ‘우리’를 잘 보여주는 것도 드물다.


집단의 힘이 우리를 지배하는 시대에는 파도타기나 떼창을 연출한다. 파도타기는 ‘까라면 까!’식의 응원인데 출처를 알 수 없는(?) 의무감이 관중을 압박한다. 이상하게도 따라하지 않으면 나쁜 놈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떼창은 ‘세계에서 제일 큰 노래방’을 만든다. 관중들이 일제히 불러제끼는 바람에 경기장이 들썩들썩 할 정도이다.

<쓰레기 봉투 응원>


압권은 관중들이 핑크빛 봉투를 뒤집어 쓰고 응원하는 장면이다. 쓰레기 청소 좀 해달라고 나눠준 것인데 이걸 응원도구로 삼은 것이다. 그런데 왜 술집에서 취할 대로 취한 아저씨의 빙긍빙글 도는 눈과 시뻘간 코가 떠오를까. ㅎ 기이한만큼 귀엽다. 도대체 세계 어느 나라에서 이런 희한한 응원을 볼 수 있을까.


그런데 개인의 시대가 활짝 열리면서 응원문화는 달라진다.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보러 오는 팬이 있는가 하면 특정 선수의 유니폼을 계절별 또는 시대별로 구매해 관중석에 쭉 걸어놓는 팬도 있다. 마치 응원에도 등급이 있는 양 세를 과시한다.


응원하는 팀이 서로 다른 연인이나 친구의 풍경도 드물지 않게 본다. 연인 사이라고 해도 경기를 보는 동안 만큼은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물론 경기가 끝나면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금세 원래대로 돌아간다. 혹 원래대로 돌아가는 게 어렵다면 그 관계 다시 생각해봐야 되지 않을까(사견 ㅎ)


사투리는 응원에 감칠맛을 보탠다. ‘아~주라’(관중석으로 날아든 볼을 어른이 갖지 말고 어린이에게 주라는 뜻), ‘뭐꼬?’, ‘‘머혀’ 등. 촌철살인이 따로 없다. 특히 '마~마~'는 절묘하다. '잘했다 마~'가 될 수도 있고 '잘 좀 해라 마~'가 될 수도 있다. 말 한 마디가 손바닥 뒤집듯 자유자재로 쓰인다. 질책과 칭찬은 쌍둥이 같다. 질책은 칭찬을 하기 위한 것이고 칭찬은 질책을 막기 위한 것이기 때문일까.


찬밥 신세가 되기 쉬운 사투리가 빛을 발한다. 사투리는 그 지역 사람들이 동질감을 느끼면서 서로 위로하게 하는 비밀병기다. 꼭 강강수월래 같다. 한번씩은 경험이 있겠지만 '손에 손 잡는' 것만으로 거짓말처럼 쉽게 동화된다. 수도권이나 타지의 사람들은 사투리의 깔깔하고 구수한 맛에 빨려 들어간다.


최근 코로나19로 등장하게 된 스케치북은 엔데믹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우리 특유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집단에서 벗어난 개인 중심의 응원이다. 한때 스마트폰에 문구를 표출시키는 게 유행하기도 했지만 스케치북은 그것보다 더 크고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할 수 있어서 장점이 크다. 1인미디어시대가 야구장에도 온 것이다.



<스케치북 응원>



‘이정후 아웃되면 나랑 결혼’

‘이대호선수 항상 허기지고 배고프죠? 당신 위에 아무도 없어서 그래요’

‘수능 앞둔 고3 직관 중’


스케치북 응원문구는 짧다. 모바일 기기보다 큰들 경기장에서는 점 같은 존재다. 고로 주목을 받느냐는 문구가 얼마나 임팩트 있느냐에 달려있다.읽을 때 ‘오라! 이것봐라!’하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그 짧은 문구에는 본인의 소망은 물론 답답함, 아쉬움, 처지, 스타일, 꿈 등이 깔려있다. 본인은 그 문구 하나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이를 보는 이는 마치 자신의 이야기 같아 공감을 느낀다. 이처럼 ‘잘 만든’ 문구 하나는 낯선 이들이 순식간에 하나가 되는 통로이자 기폭제가 된다.


‘오늘은 내 생일 선물 줄거지?’


깜직하고 과감하다. 자신의 생일임을 밝히면서 선물까지 요구한다. 기성세대는 여간해서 자기 생일을 밝히진 않는다. ‘굳이….’한다. 젊은 세대는 다르다. 더 솔직하다. 말이 된다 싶으면 까발릴 수 있다. 공감받거나 위로받을 수 있다면 더더욱 ㅇㅋ이다. 야구장에서는 홈런이든 안타든 아니면 멋진 허슬플레이이든 욕심껏 요구하는 것은 과해 보이지 않는다.


응원에 관한 한 웬만하면 다 받아들여지는 게 야구장이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사회에서는 입 닫고 귀 막고 살아야 무탈하다. 본심 드러내면 손가락잘 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야구장은 다르다. 마음껏 소리치고 춤 추고 욕심내도 좋다. 쓰레기봉투를 머리에 뒤집어 쓰는 마당에 가릴 게 뭐가 있고 못 할게 뭐가 있으랴. 한 마디로 눈치볼 일 없다. 심지어 경기는 대~충 보고 맥주에 고기에 치어리더에 집중해도 된다. 먹는 것도 응원이라고 빠득빠득 우기면 된다. 누가 뭐라 하랴. 전적으로 본인의 자유인걸.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말이다.('자유'가 아주 여러 의미로 쓰이기에 좀 조심스럽긴 하다;;) 여성분들이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소위 날 건드리는 게 부재하는 해방의 공간인 것이다.


야구팬들이여~ 부디 갈망하고 도발하라! 개안타!


타자가 치면 그냥 안타, 팬이 치면 개안타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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