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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불야불 8) 변화구처럼 유혹하라

변화구는 변주처럼 난처하지민 신비롭다

by 잼벅

직구는 시원하다. 빨래줄처럼 쭈~욱 간다.(실제는 중력의 작용으로 다소 떨어진다)


반면 변화구는 느릿하고 휘어져간다. 휘어지라고 던지는 것이니 휘어지는 게 당연하다. 휘어지면서 만들어내는 곡선이 멋지다. 그런데 궤적의 유려함만 멋진 것은 아니며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창조력 또한 멋지다. 변화구는 그 속성상 이런 저런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늘 웃음을 자아내는 장난기 많은 아이 같다고 할까. 변화구를 잘 던지는 투수일수록 그 창조되는 공간은 새롭고 화려하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직구가 그 가는 길을 예측할 수 있다면 변화구는 어디로 갈지 짐작하기 어렵다.


직구는 구속의 숫자를 확인하는 일로 끝나지만 변화구는 궤적을 더듬어봐야 알 수 있다. 게다기 그 궤적은 명확하지 않아 여운을 남긴다.


이러한 변화구의 의외성은 난처하지만 신비롭다.


길을 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평소 다니던 길이 아닌 낯선 길로 들어선 적이 있다. 지난 가을이던가. 앞선 사람을 무심코 따라건건지 다니던 길이 그날따라 사람들로 붐비었던지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평소 다니던 길이 직선에 가까웠다면 그 길은 에둘러가는, 그래서 좀 더 걸어야하는 길이었다. 그 길에서 작은 커피숍을 발견했는데 귀엽고 예뻤다. 그날부터 한동안 그길로 다녔다. 그 커피숍을 한번 쳐다보고 지나가는 게 다였지만 왠지 기분이 나아졌다. 아니, 조금 위로받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도 뭔가 평소와 다른 느낌이 드는 날이면 그길을 택한다. 이와 같이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공간을 만나 새로운 느낌을 받으며 그게 크든 작든 사는 데 하나의 자극이 된다.


흔히 남지는 직선, 여자는 곡선에 비유한다.


사냥을 본업으로 삼던 남자들은 사냥감을 발견하면 전속력으로 달렸다. 당연 최대한 직선으로 가야한다. 그게 사냥감을 잡을 수 있는 확률을 높인다. 옆을 보거나 뒤를 돌아보면 손해를 보기 쉽다. 어깨에 메기에도 버거울 만큼 큰 짐승을 잡아 동네로 돌아갈 때 사람들이 보내줄 환호를 떠올리거나 마음에 두고 있는 여인의 미소를 상상하면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덩치가 큰 짐승부터 멸종되었나는 주장이 있다. 짐승의 덩치가 클수록 많이 나눠먹을 수 있으니까 더 큰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여자는 집에서 집안 일을 하고 아기를 기르며 열매를 채취했다. 게다가 이웃 부족이 언제 쳐들어올지 몰라 주위를 주시해야했다. 여러 가지 일을 맡은 여자들은 동선 자체가 곡선이다. 앞만 봐서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안테나를 세워 수시로 집 주위나 동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탐색해야 한다. 여자들의 뛰어난 촉은 이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 아닐까. 자신이 속으로 사랑하는 남자가 큰 짐승을 잡아 오면 다른 사람들 모르게 감탄과 유혹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라도 직구만으로는 타자와 좋은 승부를 할 수 없다. 가끔 강속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투수를 보면 처음에는 그 구속에 ‘우와!’ 하지만 투구가 거듭될수록 그 단순함에 관중은 호기심을 낮추고 타자들도 이윽고 적응을 마쳐 안타를 쳐내기 시작한다. 변화구를 적절히 섞지 않으면 직구만으로는 그 위력이 오래가지 못한다. 직구와 변화구가 조화를 이뤄야 타자들이 직구인지 변화구인지 헷갈리면서 자기 스윙을 하지 못한다.


이처럼 직구를 더 위력있게 만드는 것은 직구의 더 빠른 구속이 아니라 변화구이다. 직구는 변화구를 동반자로 삼을 때 그 존재감이 확인되는데 마치 남자(여자)가 여자(남자)가 있어서 비로서 멋진 존재가 되거나 더 완벽해지는 일과 같다.


변화구는 다양하다. 커브, 슬라이더, 스플리트, 컷패스트볼, 체인지업과 포크볼 등이 있다. 2023년 시즌에 NC의 패디가 던져 화제가 된 스위퍼도 있다. 또 마구라고 불리는 너클볼도 있다. 게다가 투수의 투구패턴이나 체격조건의 차이에 따라 같은 변화구라고 해도 다 다르다. 즉 기본 틀이 있지만 그 사이에 수많은 변형이 존재하는 것이다. 마치 원곡에 수많은 변주가 존재하듯.


직구는 구속의 차이로 구분되는 비교적 단순한 구종이라면 변화구는 투수가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변화를 줄 수 있는 보다 창조적 구종이다. 같은투수가 지난 번에 던진 체인지업과 오늘 던지는 체인지업이 다르다. 그 투수의 컨디션, 상대팀 타자들의 대응, 경기 상황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또 비슷힌 이유로 지난 게임에는 슬라이더를 주로 던졌는데 오늘은 포크볼을 집중적으로 던지기도 한다. 변화구는 직구와 달리 여러 구종이 있어 그 안에서도 유연한 선택이 가능하다.


만일 투구의 미세한 흔들림과 회전 그리고 궤적까지 영상으로 담아낼 수 있다면 그 다채로운 변주는 클래식을 감상하는 일만큼이나 멋진 일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김에 KBO에 제안한다.


투구나 타구의 미세한 움직임을 기계적으로 처리해 영상으로 표출하는 일에 투자 좀 하자. 야구팬들은 더 늘어나고 더 고상해질 것이다. 투자 대비 효과가 매우 클 것이다. 그 유려한 궤적을 상상하기만해도 벌써부터 짜릿한 느낌이 온다. 어려운 일이 아니냐고? 우리는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디스플레이 강국 아닌가. 게다가 삼성과 엘지가 있지 않은가.


퍽퍽! 소리를 내며 포수의 미트에 꽂히는 통쾌한 직구를 보는 일도 좋지만 매번 조금씩 다른 공간을 만들어내며 유려한 궤적을 그리는 변화구의 변주를 맛보고 싶다.(찐팬이 되어가나보다 ㅋ)


기꺼이 유혹당하리라 변화구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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