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다의 두 번째 소설『열살차이』는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창작 소설입니다.
현실의 인물, 사건과 유사하더라도 이는 우연의 일치이며,
일부 인물 및 장소는 서사의 흐름상 가명 또는 허구적 설정을 사용하였습니다.
대만에서 우체국으로 한국에 보낼 짐들은 이미 다 보냈다.
책상에는 대학 생활을 압축한 졸업장이 지안의 눈앞에 있었다.
이제 우리 끝내자
라는 말을 서로 하지는 않았지만 찝찝하게 끝나버린 이 관계에 대해서도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지안은 한국을 다시 돌아가는 것을 결정했고, 이제는 번복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래야만 했다.
왕복 비행기 티켓이 아닌 아닌 편도 티켓으로 대만을 떠나면 무슨 기분인지 항상 궁금했다.
하지만 사실상 아무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더더욱 아무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여름밤에 드디어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대만처럼 습하고 덥지도 않은 청량한 여름 저녁이었다.
여름의 한국은 항상 풀냄새가 나는 기분 좋은 시원한 향이 있었다.
대만에서 한국에 도착하여 살아온 지난 1년 간 지안의 삶은 절대 쉽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최악의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이라는 표현이 정확했다.
여기가 지하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반지하였고, 더 깊은 지하로 지안은 계속 떨어졌다.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적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지안의 어머니가 쓰러졌다.
평소 지안의 어머니는 건강에 대해 자신이 있었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에서 문제가 터졌다.
대장암 1기라고 생각해서 간단하게 용종만 제거하면 될 줄 알았다.
사실은 대장암 3기였고 지안의 어머니는 아연실색하며 휴직을 신청하고 바로 병원을 입원해야 했다.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하루 빨리 수술 할 의사를 찾고 가장 빠른 날짜를 지정해야 했다.
여기서 지안은 새삼 깨달았다. 사람의 앞날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다.
누구나 이 말에 공감하면서도 사실은 까먹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지안도 당연히 그랬다.
건강할 때는 세상 모든 만사가 걱정거리였다면 아프고 나서는 오로지 건강만이 걱정이었다.
지안의 어머니는 오랜 시간 동안 가정의 기둥이었다.
병으로 쓰러져 일어나지 못한다면 지안의 가족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매일 병원에서 어머니를 간호를 하면서 지안은 다양한 가족들과 아픈 사람들을 보았다.
지난날 집에서 먹고 자고 생활했던 그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것이 너무나 과분한 생각으로 여겨질 만큼 병원 창 밖의 세상이 상대적으로 눈부시게 느껴졌다.
지안은 처음으로 "돌봄"과 "복지"의 영역이 단순히 불쌍한 사람들만 받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며 가정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선"이라는 것이 존재해야만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온몸으로 배운 시간이었다.
그날 이후, 마음 한구석에 작은 씨앗이 심겼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자랄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 누군가를 지탱하는 뿌리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지안은 자기 객관화가 부족했다.
냉정히 말해 대만에서 받은 대학 졸업장은 졸업장일 뿐이었다.
이것이 취업 시장에서 엄청난 가치를 지닌 것도 아니었고, 남들보다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대만에서 일문학과를 나왔지만 그 중국어는 본토 중국어와 비교했을 때 뛰어날 것인가.
또 일본 현지에서 배운 일본어보다 뛰어날 것인가라고 한다면 지안은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학을 하는 것은 하나의 기술일 뿐 그 "어학"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가 중요한데
지안은 사실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정확히는 본인이 무엇을 잘하는지 몰랐다.
그러므로 한국 취업 시장이 너무 치열하고 자신이 없었고 애초에 정보도 몰랐다.
어차피 한국에서 취업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골똘히 고민을 하던 와중에 당시에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의 워킹홀리데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거라고 생각한 지안은 다시 돈을 모아 캐나다로 갈 생각을 했었다.
이것이 또 다른 도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에 워홀 비자로 현지에 가서 일하면서
영주권 비자까지 받아내는 이야기가 마치 성공한 일처럼 심심치 않게 유행처럼 번졌다.
지안도 그 길이 오히려 취업 준비를 할 겸 깊은 생각도 없이 맞다고 여겼다.
비자도 받고 이제 관련 서류를 모두 다 챙겼고, 건강검진 서류도 잘 받았다.
아이엘츠(IELTS) 시험도 치러 어학교에서 요구하는 점수도 한 번에 잘 받았다.
이제 캐나다 비행기 티켓만 결제하면 되었으나 지안의 어머니가 쓰러지며 모든 것이 중단되었다.
마지막으로 지안은 가족을 포함한 인간관계가 취약했다.
앞서 모든 준비가 물거품이 된 순간, 내가 붙잡고 있던 건 사실 종이 몇 장과 허황된 기대뿐이었다.
정서적 지지와 공감을 주고받는 안정적인 기반이 없는 지안은 늘 마지막에 결국 흔들렸다.
그리고 늘 타인의 삶에 정답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점수로써 어떻게든 결과물을 낼 수만 있다면 그것이 곧 언젠가는 자신이 바라는 삶에 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참 순진했다.
그러나 한 번도 지안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외부에서 사건이 터지거나 내부적으로 스스로가 흔들리게 되면 쉽사리 무너졌다.
대만, 일본 이제는 캐나다까지 나라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지 사실은 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제 지안의 어머니의 대장암 3기 수술을 앞둔 어느 여름날,안 그래도 우울한 지안은 생각해 보니 이제 졸업을 한 지 1년이 지났다는 것을 알았다.
문득 핸드폰에 울리는 알람을 보니 페이스북에서 다른 후배들이나 친구들이 학사모를 던지며 즐겁게 웃고 있는 사진이 한가득 올라오고 있었다.
지안은 화면을 끄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순간 숨이 깊게 가라앉았다.
졸업 후 1년 뒤 자신의 모습이 서울의 어느 한 병원에서 간병을 하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지안은 문득 자신이 대만에 떠났을 때의 다짐이 떠올랐다.
더 이상 현실 도피를 하지 않도록 안정감을 바라며,
내 인생을 걸 수 있는 상대 옆에서 여생을 살아가고 싶었다.
다시 불안전하고 알 수 없는 운명에 온몸을 힘차게 내던지고 싶어졌다.
먼저 지안은 부정적이고 우울한 영향을 주는 원가족으로부터 다시 벗어나 자신의 삶을 개척해야 했다.
그리고 지안만의 가정을 꾸리며 그 안에서 안정적인 인간관계와 기반을 다시 세우는 것이 맞았다.
그것은 단순히 나라를 바꾼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 이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한국에서 지안은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하는 게 맞았다.
아무런 기술도, 경력도 없었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았기에 네트워크도 한정적이었다.
사실상 고등학교 졸업 후 20대 중반까지는 한국에 부재했다.
방학 때도 거의 대만에 있었기 때문에 지안은 사실 한국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즉, 그녀의 수준은 10대 때 한국의 학창 시절에 머물러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오히려 이 상태를 깨달으니 안도감이 들었다. 어차피 "0"에서 다시 시작하는거고, 지안은 드디어 스스로가 뭐가 문제인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지안의 어머니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다.
비록 대장암 3기였지만 비교적 빨리 발견한 덕분에 전이는 안 되었다.
대장을 많이 잘라내긴 했지만 열심히 회복하고 재활에 힘쓴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 했다.
기적이라면 기적이었다.
얼떨결에 시간이 금세 1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녀의 나이 고작 20 중반에 참 그 사이 많은 일들이 밀물과 썰물처럼 밀어져 나가고 있었다.
간병을 하는 와중에 개인시간이 이제 생기자 지안은 지금까지 안 해본 일들을 하고 싶어졌다.
당시에 지안이 왜 하필 "춤"에 꽂혔는지 모르겠지만, 춤이 추고 싶어졌다. 그때 마침 춤 관련 영화가 대히트를 쳤다.
춤추는 사람들의 밝은 얼굴과 열정적인 제스처 등의 그 열정적인 에너지와 매력에 매료되었다.
또 추측 건데 아마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동안 간병으로 병원, 산, 집만 챗바큇처럼 돈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었다. 자신이 현재 취준생이자 곧 백수였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춤 동호회 중 지안은 그중 이름이 재미있는 곳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 생각지도 못 한 곳에서 지안의 운명이 바뀔 거라고 그녀는 감히 상상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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