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열살차이 02화

2. 스윙댄스

by 이진다

이진다의 두 번째 소설『열살차이』는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창작 소설입니다.

현실의 인물, 사건과 유사하더라도 이는 우연의 일치이며,일부 인물 및 장소는 서사의 흐름상 가명 또는 허구적 설정을 사용하였습니다.



지안은 다시 아무런 소속감이 없었다.

10대 시절에는 학생이었고, 20대에는 대만에서 유학을 하면서 어학교, 대학교라는 소속이 있었다. 그리고 졸업 후 자연스럽게 취업이 되면 직장에 소속이 될 줄 알았다. 이러한 기시감은 과거 대만 어학교를 다닐 때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차원이 달랐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앞날에 대한 두려움으로 현재에 대해 도저히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사실상 경제적인 가장이었던 어머니가 쓰러졌고, 여전히 한국에서 살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다시금 떠나고 싶었던 마음을 강제로 접게 되었고, 한국에서 20대의 반을 부재했기 때문에 아는 사람도 없었고, 기반도 없었다.


이런 상황이었다면 괜히 한국에 온 것이 아닐까.


지금이라도 대만에서 살고 있을 그 과거 일본 연인에게 연락해서 매달릴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잠깐 들 정도로 비굴했고, 비참했다.

정말 걔 말대로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데 감히 이별을 선택해서 벌을 받은 것일까 대만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좀 더 인내심 있게 대만에 더 적응하려고 노력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이지 않았을까 하는 우울하고 비굴한 생각에 지배당했다.


그런 그녀가 뜨끔 없이 스윙댄스를 추러 춤 동호회에 나가겠다고 한다.이러한 다짐은 그녀에게 있어서 정말 엄청난 용기였다. 어떻게 보면 미치지 않기 위해 그녀 나름대로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몹시 억울했다.


대만에 살면서 늘 떠나고 싶었고, 유학을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해외에서 열심히 놀지 않고 공부한 대가가 이런 삶이었다니.


이판사판이다. 춤이라도 추자.

그것도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 춤을 추는 것이다.

비 오는 날 웃는 광년처럼.




한 대학교 번화가에 있던 그 스윙댄스 춤 동호회로 가는 길은 그녀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스윙댄스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강의실에 도착하니 벌써 몇 수강생들이 도착해 있었다.


어색하게 인사를 하는 지안에게 그들은 친절하게 안내를 도와주었다. 신나는 리듬과 화려한 오색빛깔의 조명이 반사되며 별천지 분위기를 이루었다. 여기서는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르는 게 룰이라고 했다. 대충 주위를 둘러보니 남녀 성비 비율은 반반인 거 같았고, 나이대도 다양했다. 아는 사람이 1명도 없었기 때문에 눈을 어디다 둘 지 몰라 지안은 바닥만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이윽고 강의실에 수강생들을 가득 채워졌고, 스윙댄스의 기본 스텝을 배워가며 천천히 몸을 풀었다.그리고 서로 돌아가면서 음악에 서서히 발 스텝과 손동작을 맞추어가며 모르는 이들과 춤을 추기 시작했다. 몸치, 박치, 눈치 3박자를 골고루 갖춘 지안은 열심히 앞에 선생님을 따라 하다가 상대방 발을 밟기도 하고 당황해서 죄송하다고 사과도 하면서 어느샌가 한 곡을 완주를 했다.


정말이지 식은땀이 났다.


신기한 것은 춤을 추면 출수록 이곳에 오기 전까지의 우울하거나 암울했던 생각들은 잠시 잊게 되었고, 스윙 댄스 그 특유의 빠른 템포와 박자감과 함께 여럿이 함께 파트너를 바꿔가면서 춤을 추었기 때문에 이 자체 에너지가 지안에게는 무언가 작은 성취감으로 바뀌어졌다.


어느새 춤추는 시간이 끝나고 뒤풀이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이 대는 보통 20대에서 40대로 다양했지만 20대에는 지안이 가장 어린 축에 속했다. 자신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취준생이면서 백수라고 말을 해야 하는 신세가 조금 서글펐지만 아무도 지안을 지안이 생각하는 만큼 이상하게 보지도 않았다.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자신처럼 잠시 일을 쉬고 있는 경우도 있었고,새로운 꿈을 위해 여러 일을 하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는 사람 등 정말 다양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곳은 성인 및 직장인 동호회였다. 요즘으로 치면 상당수는 "썸"과 "연애"를 위에 오는 곳이었다. 순수하게 춤을 추거나 배우러 오고 싶어서 오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지안은 시간이 지나 동호회 사람들과 친해졌다.

그러나 지안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오빠들이 이성으로 느껴지기는 만무했고,

오히려 자신의 신세가 딱하고 불쌍하여 동정의 의미에서 호감을 보이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정말 이 동호회의 취지에 맞게 열심히 춤을 추었다.뒤풀이에서는 다른 회원들의 이야기에 열심히 경청했고, 열심히 리액션을 했다. 그녀의 행동들은 일부러 그런다기보다는 낯설지만 어른답게 보이고 싶었던 지안 나름의 성의였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지안은 대만에서 주로 우롱차와 홍차를 마시며 보냈다. 이 말의 참뜻은 한국에서 전혀 술문화나 MT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고 즐긴 적도 없었다. 즉 다시 말하자면 고등학교 생활의 연장선을 5년 더 한 것과 다름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안에게 있어 한국의 이 스윙댄스 동호회의 뒤풀이 문화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녀의 언행은 이성에게는 정말 순수하게 보일만했고, 때로는 오해를 살 만도 했다.




이 무렵 서울의 어느 한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하는 30 중반의 한 남자가 있었다.

한 때 그의 집안은 손꼽힐 정도로 상당히 부유하여 돈에 대해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크게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돌아가시며, 그의 집안은 손을 쓸 수도 없이 무참히도 계속해서 무너져 내려갔다.


그 과정에서 지인과 측근, 사업 파트너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배신도 많이 당했고, 상처를 받았다.

지금까지 평온하고 귀하게 자란 도련님 삶과 다르게 그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일들이 연달아 현실에서 일어났을 때 그에게 선택지는 2가지뿐이었다.

삶을 포기하고 낙담하고 정리를 하던가 아니면 그 힘으로 열심히 이판사판 살아보던가.

그는 후자를 택했고 정말 안 해본 일들이 없었다.


대학에 가서도 최선을 다해서 일을 했고 쉬어 본 적이 없었다.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했다. 반지하를 사는 자신의 형편에서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도 사치라고 생각했다.

어느덧 열심히 일한 덕분에 나름대로 소소한 사치도 부리며 삶을 즐길 수 있는 위치까지 오게 되었다. 그의 사회적인 위치가 달라지자 그를 보는 시선도 달라졌고, 그는 더더욱 자신의 사업에 매진했다. 사회적으로 숫자로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이라면 그도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 수준은 보통 이상은 되었다.


일에 매진하다 보니 나이가 30 중반이 되었다.

문득 그도 이제는 안정적으로 정말 자리를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인연이 닿으면 하는 것이지 억지로 인연을 재촉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까지 오는데도 고생이 많았고, 해야 할 일들은 많았고, 누군가를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 또한 자신의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사업 속 인간관계에서 이미 뼈저리게 배웠다.


일하는 와중에 그에게 와인 동호회에서 만나 친하게 된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 재헌 전에 말한 거 오늘 꼭 올 거지? 나 혼자 가기 그래서 그냥 너 이름까지 같이 회비 넣었다."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듣자마자 거절을 하려 했으나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동안 일로 바쁘다는 핑계로 동호회나 모임 같은 것은 그의 성격에 잘 맞지를 않아 참석을 피했는데

이번에도 회피를 한다면 친한 형과의 관계가 조금 난처해질 것 같았다.


그는 일단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윽고 형님으로부터 회비를 넣었다는 한 스윙댄스 동호회 장소와 정보를 카톡으로 공유받았다.


재헌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많은 모임을 거절했더니 결국 춤을 춰야 한다니...
정말이지 난처했다.


그렇지만 별 수 있겠는가. 일단 가겠다고 했으니 얼굴이라도 잠시 비추면 될 듯 싶었다.
급한 일들은 일단 마무리 지었고, 재헌은 번화가 쪽으로 서둘러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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