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다의 두 번째 소설『열살차이』는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창작 소설입니다.
현실의 인물, 사건과 유사하더라도 이는 우연의 일치이며,
일부 인물 및 장소는 서사의 흐름상 가명 또는 허구적 설정을 사용하였습니다.
재헌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스윙댄스 OT 수업 시간이 끝났을 때였다.
어쩔 수 없이 뒤풀이 장소로 다시 차를 돌려 갈 수밖에 없었다.
친한 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끌려 나온 상황이었지만,
아는 사람이 하나 없는 형이 가게에서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자리를 지키고 있을 생각에
재헌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가게에 도착하니 이미 만석이었고, 남녀들이 술을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재헌은 재빨리 형을 찾아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고,
구석진 데서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는 형을 발견하고 얼른 자리를 향해 갔다.
" 형 저 왔어요. "
재헌은 형에게 아는 체를 하며 형 주변 사람들에게도 간단히 목례를 했다.
재헌이 오자 형은 금세 표정이 밝아지더니 자신과 옆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던 한 여자를 소개했다.
" 오오.. 재헌아.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열받게...
여기 제가 아까 말한 친한 동생이에요. "
재헌은 여자를 봤다.
단발머리에 검정 반팔티에 무릎까지 오는 편한 치마 차림.
너무나 앳된 보이는 얼굴이 재헌이 이 스윙댄스 동회회에서 처음 제대로 얼굴을 본 사람이었다.
재헌은 다시 어색하게 인사와 짧게 자기소개를 했다.
여자는 이미 친한 형과 대화를 몇 마디 나누어서 그런지 어색함이 없었고, 심지어 선배 기수였다.
무엇보다 여자는 자신을 소개하는 데 있어 막힘이 없었다.
" 아 진짜 제가 이 동호회 오는 데 까지 고생이 많았어요.
저 사실 오늘 취업했거든요. 이제 진짜 사회인인 거예요. 통금시간도 무시할 거예요!"
통금시간이라...
얼마 만에 들어보는 단어인지 재헌은 자기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가 나왔다.
그리고 이런 동호회 나오는데 고생을 하면 얼마나 했을까 싶어 호기심이 생겼다.
기껏 해봐야 부모님의 반대 정도 되려나? 아니면 뭐가 있으려나.. 남자친구가 있나?
" 저 대만에서 유학하다가 졸업하고 와서 엄마 간병하느라 진짜 힘들었거든요.
그래도 취업을 해서 정말 다행이지 싶어요. 오늘은 진짜 열심히 먹고 놀 거예요! "
대만... 간병... 취업..
재헌은 그녀가 말한 것을 천천히 다시 상기시키며 자신도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었다.
이미 친한 형은 병풍이 된 지 오래였다.
" 어.. 대만에서 유학했구나. 나도 상해에서 유학 잠깐 했어요. 중국어 그럼 잘해요? "
여자는 무슨 그런 질문이 다 있냐는 등 엄청 웃으며 답변했다.
" 중국어도 하고요. 일본어도 해요. 변종 돌연변이예요.
거기서 왜 일본어 전공했냐는 질문은 수백 번 들었는데 나중에 친해지면 알려줄게요."
재헌은 이 스윙댄스 동호회에 사실 형에게 예의상 얼굴만 첫날 비추고 안 나올 생각이었지만
이 여자 회원 때문에 호기심이 생긴 나머지 그리고 저 이유를 알고 싶어서라도 왠지 나오고 싶어졌다.
분위기가 좀 더 편안해지자 재헌은 술도 한 잔 했고, 중국어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막힘없이 중국어로 답했다. 이건 무슨 갑자기 한국&중국 친목회 자리도 아닌데...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동호회 사람들에게 첫날 친목을 다지는 자리에서 민폐였다.
재헌은 그런데 이야기를 하면서 문득 그녀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정보가 빠졌다는 것을 알았다.
" 저기.. 혹시 근데 나이가 몇 살이에요? "
" 저요? 한국 나이로 계산하면 26살이요. "
순간 재헌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26살...? 그럼 몇 년도에 태어난 거야?
설마 나보다 지금 10살이 어리단 말이야?
내심 재헌은 그녀가 답하기 전에 부디 그녀가 자신보다 5살만 어렸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5살은커녕 10살이었다.
그의 표정을 봤는지 못 봤는지 그녀는 다시 다른 주제로 재잘재잘 쾌활하게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재헌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다.
시간은 어느새 밤 1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핸드폰은 집으로부터 빨리 돌아오라는 압박이 가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었는지 모임도 서서히 정리를 하거나
2차를 갈 사람들은 가는 분위기여서 그녀는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 저기 괜찮으면.. 늦었잖아요. 제가 데려다 줄게요. "
재헌을 보는 형의 눈빛이 게슴츠레 해졌다.
" 나는 네가 결혼도 하지 말고,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어.
여자에게 있어 결혼은 선택이고 직업은 필수야 "
어머니의 수많은 가르침 중에 저 말은 오랫동안 지안을 억눌러왔다.
신혼 때부터 가정불화를 심하게 겪기도 했고, 지금도 그러한 상태이지만
대게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고, 시댁에 대해 신물인 나고, 그래서 이혼 생각을 자주 결심하며,
남편 대신 본의 아니게 경제적으로도 뒷받침을 해야 입장에서는 경험을 해 본 자로서도 그렇고,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이혼을 하지 말아야 된 다는 소명 의식 때문에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의 삶을 산 사람이 딸에게 줄 수 있는 유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안에게 있어 저 말을 오랫동안 족쇄였다.
어머니의 힘든 결혼 생활을 몰랐던 것도 아니다.
어릴 때는 판단 능력이 없어 어머니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해왔다.
아버지를 진심으로 어머니를 괴롭히는 악역으로 생각해 대신 싸운 적도 여러 번이며,
힘든 결혼 생활을 하는 어머니가 가여워 자신과 동일시하는 내내 어머니의 우울증이 전가되어
또래 자신의 문제로도 벅찬데 10 대들보다 더 힘든 우중충하고 우울한 학창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대만에 홀로 있으면서 그녀는 저 족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드디어 원가족과 떨어지면서 혼자서 낯선 외국에서 외국어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어쩌면 이는 당연한 것이었다.
혼자서 생활하는 것은 분명히 힘들었다.
하지만 대만 유학이 있었기에 오랜 시간 억눌러왔던 자신의 색깔과 생각들이 거침없이 나와
그녀의 가치관과 성격을 만들게 되었다.
가진 것이 없는 그녀였기에 그녀는 더더욱 자신만의 가정을 원했다.
이는 현재 취집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사뭇 개념이 달랐다.
아무리 부모가 사이가 좋지 않고 가정의 불화가 심하고, 결혼이 여성한테 손해라는
어머니의 가르침과는 별개로 또 자신이 남자로부터 좋지 못한 일을 당했을지라도
그 일과 자신이 미래에 가정을 만드는 일은 다른 것이라고 여겼다.
애초에 다른 인격체인데 같은 결괏값이 나온 다는 것도 이상했다.
결혼을 도피처로 생각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연애를 함에 있어서 그녀는 단 한 번도 결혼을 생각 안 한 연애는 없었다.
어차피 연애의 결말은 결혼 아니면 이별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그녀는 연애도 결혼이 시작되기 전의 예행연습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한 마음가짐 때문인지 지안은 정확하게 자신에게 맞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별할 줄 알았다.
어찌 되었든 어머니의 말씀을 바꿔서 지안은 생각했다.
지안은 결혼을 원한다. 정확히는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사랑을 원한다.
자유로움도 이것도 적당히 자유로워야지 통제되지 않는 자유로움은 결국 공허했다.
또 타국에서 생활을 비추어 봤을 때 자유로움은 한계가 있다.
결국 뿌리를 내리지 못하니 계속해서 방황만 할 뿐이었다.
여자에게 있어 결혼은 선택이고 직업이 필수라는 말은 어머니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그러나 이건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오히려 결혼은 제한 시간이라는 것이 있고 직업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니 개의치 말자.
참고사항으로 받아들이자라고 말이다.
나는 나고, 엄마는 엄마다.
술을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동호회 뒤풀이에서 처음 만난 남자는 집으로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이거 지금 술도 마셨는데 이상하고 험한 일 벌어지는 거 아니야?
얼떨결에 남자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차 쪽으로 갔다.
남자는 잠시만 기다리라면서 대리 운전기사를 부르겠다며 전화를 걸었다.
이거 집주소를 말해도 되는 건가. 지금이라도 뛰어 내려서 도망갈까.
너무 갑자기 내 인생 막장으로 가는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차에 시동을 걸고 재규어 영어와 그림을 본 순간 더더욱 막장 기분이 들었다.
대만 유학 시절 일본 전 남자 친구가 그렇게 자랑하던 자기 할아버지 차가 재규어라는 게 이 차였구나.
그녀는 차에 대해서 종류도 모르고, 집에서도 경차만 끌었기 때문에 뭐가 좋은지도 몰랐지만
그놈의 재규어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 사람 차는 재수 없고 지안은 이 차에 지금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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