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연주하는 움직임대로 전라의 소녀의 움직임이 달라진다. 연주자의 머리에 발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 흡사 섹스하는 듯 하다. 아래의 마르셀 뒤샹의 누드모델과의 체스 장면에 답하기라도 하듯이, 예술은, 섹스는 체스처럼 정해진 법칙대로 가는 길이 한정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피아노 선율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강변하기라도 하는 듯 하다.
작품 속에서 에로티시즘을 느낀다. 섹스와 예술에 부여하는 자유로움이란 억제하지 않는 감정을 통한 극도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한다. 인위적이지만 인위적인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
[사진출처 : 1960 by JULIAN WASSER, Smithsonian Institution Archives of American Art]
단계를 밟아 절정에 이르는 순서대로 관계를 갖는다면 그것만큼 지루한 것도 없을 것이다.
마르셀 뒤샹은 예술이든 체스든 정신적 유희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에 본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신적 유희를 바탕으로 하나 그것을 표현함에 있어서 예술과 섹스와 체스는 틀의 유무에 있어 이질감이 있다.
섹스는 체스가 아니다. 쓸데없이 머리를 쓴다면 오르가즘은 사전 속에나 나오는 말이 될 지도 모른다. 어쩌면 백남준은 예술이 체스판과 같이 사각의 틀에 갇혀버리는 것을 우려해서 본 퍼포먼스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섹스와 음악을 통해 자유로운 예술의 표현이 어떻게 감동을 주는 지를 공유하고 싶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