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뒷좌석에 놓인 내 수첩을 스윽 보더니 "아빠, 이거 아빠 시 쓰는 수첩이에요?"하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다시 "OO이가 집에 가져가도 되나요?"하고 물어 그러라고 하니 연필 하나를 가방에서 꺼내 든다. 씨익 하고 웃으며 한참을 무언가 적더니 다시 내게 돌려준다.
비가 내리네
비가 내리면
흠뻑 젖게 되지
- 천재시인 딸 2의 시 <비 내리는 날> 전문 -
딸 2 그림 그리다가
그랬다. OO이에게 '비'는 하늘에서 내리고 세상을 젖게 하는 고유한 성질을 가진 시적 소재였다. 나태주의 '꽃'이 그 어떤 특별한 것이 아닌 꽃 그 자체로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듯이 OO이에게 '비'는 그냥 '비'였던 것이다.
어떤 누군가가 타인의 시를 보고 시적 장치가 없고, 화려한 수사도 없고, 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철학이 없다고 수준이 낮다고, 시가 아니라고 한다. 그에게 있어 시란 심오한 철학을 담은 그림이어야 하고,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음흉한 시인의 마음을 숨기고 있어야 한다. 시인 자신이 아닌 사람들이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인 것이다.
그는 분명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어리석게도 그는 시는 특별한 것이고 시인은 특별하다고 잘못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시는 얼마나 잘 쓰여졌나가 아니라 어떤 이미지, 어떤 메시지를 주었고 어떻게 끊임없이 공감을 일으키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의미를 비트는 것은 필요할 지 모르지만 대상의 본질을 왜곡해서는 안된다.
"아빠, 비는 다 젖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산을 쓰는데 그래도 안젖을 수는 없어요."
라고 말하는 여덟 살 아이의 생각이 어쩌면 시의 답이다. 아이처럼 쓸 수 없다면 그 누구도 시인이 아니다. 나는 시인인가 자문해 볼 일이다. 시험으로 따낸 등단 따위로는 시인의 이름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잊지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