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이 많이 길었다. 그만큼 나에게 무심한 시간이 지났다. 오래간만에 미장원을 찾았다. 풀썩 주저앉는 거울 속 내 모습이 애처롭다.
좁아지는 시간을 무사히 지나치기 위해 누군가를 밀치고 먼저 나아가야 했다. 하지만 이내 뒤따라오는 이들의 무게에 치이고 또다시 뒤집혀서는 같은 시간을 지나가야 했다. 나는 시계를 가졌으나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이 여행이 거듭될수록 가슴이 더 답답해지고 반복되는 기억이 추억인 것처럼 쌓여가는 것이 싫다.
나의 시간을 갖지 못한 까닭으로 나는 다시 다른 시간을 찾아 떠나야 한다. 추억의 무게로 몸이 무겁다. 무엇부터 버려야 가벼이 떠날 수 있을까? 시계 초침은 연신 껌을 씹어대며 하릴없이 시간을 밀어낸다.
그래, 딴 생각하지말고 머리카락부터 잘라야겠다. 남겨진 머리카락의 길이만큼 시간을 벌 수 있겠지. 되도록 짧게 잘라 나를 가볍게 하면 이 여행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더 생기겠지. 손목을 조이는 시계를 만지작거린다. 가죽줄에 배인 땀냄새가 시큼하다.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는데도 시간이 간다. 한결 가벼워진 머리지만 잡스런 생각에 머리가 무겁다. 여기서의 시간이 끝나면 내게 주어질 시간이 얼마나 남을 지 모르겠다. 시간의 양은 유한하다. 멈추지 않고 소비된다. 하지만 또 쌓인다. 잘라도 또다시 자라는 머리카락처럼 그렇게 반복된다. 그 사실에 삶은 절망이면서도 희망이라 말하곤 한다.
미장원을 나왔다. 고개를 떨구기 싫지만 하늘을 쳐다보지 않는다. 앞을 볼 수 없어 넘어지기 싫기 때문이다. 이제는 시간을 좇지 않고 마음대로 살아볼 생각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난 어느 순간 내 삶에 만족한다면 그 때는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추억처럼 묶어볼까 한다. 그러면 그 시간들이 내 것이 되지 않을까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우연처럼 지나치는 한 카페에서 박정현의 '미장원에서'라는 곡이 흘러나온다. 한참을 멈춰서 듣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발걸음이 미소처럼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