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1. PEACE 01화

PEACE. 산티아고 가는 길

시작, 그 큰 두려움 앞에서

by 황사공

St Jean-Pied-do-port. 생장피드포르.



지난 6년간 내 마음속에 꼭 가야 할 곳으로 새겨 두었던 낯선 그곳에 드디어 도착했다.


기대보다 너무도 작고 허름한 역의 모습에 조금 놀랐다. 그래도 괜찮다. 이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프랑스의 작은 시골마을에 혼자 도착했다는 것에 비하면 허름한 역 따위는 아무런 문제도 아니다. 두렵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나처럼 흔들리는 눈빛으로 길을 걷고 있었기에 조금 위안이 된다. 길은 하나였기에 나 역시 그들을 따라 걷기 시작해 본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은하수의 길. 나는 지금 이 길을 찾아 지구의 반을 날아왔다. 그리고 그 길을 시작하는 곳에 혼자 덩그러니 있는 중이다. 무엇을 바라 이 곳에 있게 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저 이 곳에 와야만 할 것 같은 막연한 느낌이 계속해서 나를 사로잡았었고, 결국 지금에서야 나를 이 곳에 있게 만들고 말았다. 일종의 운명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딱히 그럴싸한 이유를 찾기가 어려웠으니까.


순례자용 여권과 순례자의 상징인 조가비 껍질을 가방에 달고 낯선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오늘 나는 8km를 걸을 것이다. 9kg짜리 배낭을 메고서 말이다.


그렇게 나는 종교 없는 순례자가 되었다.



생장피드포르. 가는 길, 기차 역, 순례자 사무실




피레네 산맥을 오르기 시작했다. 8월의 피레네는 그림같이 푸르르고 또 눈부시다.


시작하는 지점에서부터 운이 좋게도 한국인을 한 명 만났다. 군대를 갓 제대한 그는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집을 떠나와 이 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시작해 아시아, 아프리카를 거쳐 유럽까지 온 용감무쌍한 한국인 대학생을 만나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있다는 위로. 모국어로 대화할 수 있다는 그 편안함이라니. 혼자이고 싶어 이 길을 찾은 나에게 누군가와 함께하게 되어 느껴진 안도감은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졌지만, 누군가와 한국어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실로 눈물겹게 고맙게 느껴진다.


휴학생인 그나 백수인 나에게 있어 불투명한 미래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모국을 떠나 이 곳에 있지만, 미래를 향한 공허함과 불안함은 여전히 한국을 향하고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막연한 불안이 힘겹게 피레네 산맥을 오르던 내 어깨 위에 더해져 한없이 몸이 내려앉는다. 뜨거운 8월의 햇살 아래에서 나누기엔 너무 무거운 고민이다. 그래도 이 길의 끝에선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서로 위로해가며 아름다운 피레네를 조금씩 올라본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산 없나니.



8월의 피레네 산맥




처음 만난 알베르게는 낯설고 신선했으며 여느 처음과 같이 두려웠다. 이 곳에서 머물러 가는 서른 명 남짓의 순례자 모두에게 처음일 이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두 명의 한국인을 포함한 독일, 스페인, 프랑스, 일본 등 다양한 국적의 제각각인 연령대의 사람들. 많은 것이 달랐지만 오늘 카미노를 시작했다는 것 하나는 모두 같다. 그리고 대부분이 비슷한 이유로 이 길을 찾아온 듯했다.


"왜 이곳에 왔니?"

"그래 너도 그렇구나."

"그래 나도 그래."

"우리 끝까지 잘해보자."


따뜻한 눈빛과 미소로 주고받는 대화였지만, 비슷한 기대를 품고 비슷한 불안 속에서 이 곳에 있는 우리들에게는 부족함이 없었다. 같은 마음 앞에서 언어는 한낱 수단일 뿐임을 실감하며 편안하고 따뜻한 첫날의 저녁이 저물어 간다.


첫 숙소. 아직은 낯선 순례자들





왜 이 곳을 왔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시작의 두려움이 사라지고 나니 또다시 막연한 의문이 내 머릿속을 채운다.


왜 나는 이 곳에 있는 것일까?


물론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긴 여행을 선택함에는 많은 이유가 있었다. 적성에 맞지 않았던 일, 권태로움에 빠진 지 오래인 연인, 스스로 돌보지 않아 망가진 건강까지.

나를 보살피고 삶을 재정비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모두를 설득하고 떠나 왔지만, 사실 재정비보단 현실도피에 가까웠던 결정이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즈음의 나는 하루하루를 버텨내기에 급급해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삶을 부유하고 있었고, 작은 먼지가 되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가 꿈꾸고 그려왔던 삶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사는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라 자책했다. 멋진 인생을 살고 싶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미 없었고, 꿈조차 꾸지 않은 지 오래였다. 그렇게 내가 별 볼일 없이 살고 있다는 것을 남들에게 들키기 싫었다. 그래서 선택한 도피였다.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오겠다 호언장담하며 쿨하고 멋있는 척 떠나왔다. 그랬기에 나는 무엇인가가 달라져야만 한다.


하지만 정말 모르겠다.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 아직은 모르겠지만, 분명 900km의 이 길의 끝에서 나는 무엇인가를 찾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낯선 방, 낯선 침대, 낯선 소음들 속에서 잠을 이룰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육체의 피로 앞에서 낯섦에 대한 정신적 두려움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꿈 한번 꾸지 않은 채 깊게 잠을 자던 새벽 6시, 누군가의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고 오늘 만날 하루에 대한 설렘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침으로는 빵과 버터, 그리고 커피가 준비되어 있었다. 어제저녁을 함께했던 사람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오전을 버티게 해 줄 소중한 빵을 나눠 먹는다. 옆 테이블에선 나와 같은 침대 아랫칸에서 잠을 잔 미국인 아주머니가 빵을 휴지에 싸고 있다. 아침으로 준비되어 있던 빵은 넉넉지 않아 보였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 듯하다.


나의 첫 번째 아침을 함께 한 친구는 독일에서 온 모녀였다. 그녀는 공무원이었고 13살짜리 딸의 방학을 맞이하여 함께 카미노에 왔다. 아직 어린 바바라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 질문을 하면 수줍게 웃고는 엄마에게 독일어로 말을 하고, 엄마가 우리에게 다시 영어로 이야기를 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첫 번째 아침을 만끽하고 있던 중, 갑자기 누군가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빵을 챙기고 있던 미국인 아주머니에게 호스트가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 지나치게 화를 내는 호스트에게 미국인은 돈을 내겠다고 했고, 그는 싸 놓은 모든 빵을 지금 이 자리에서 다 먹으라 외쳤다. 무서운 표정으로 계속 소리를 지르는 호스트 앞에서 아주머니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손을 덜덜 떨고 있었고, 보다 못한 누군가가 호스트를 데리고 나가며 사건은 우선 진정되었다. 하지만 아침 7시부터 깜짝 놀란 가슴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모두가 함께 먹어야 할 빵을 챙긴 아주머니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그렇게까지 화를 내야 했을까? 게다가 이것은 한 사람의 마음에만 상처를 입힌 것이 아니었다. 그 날 그곳에 있던 30명의 사람들이 카미노에서 맞는 첫 번째 아침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호스트가 그 많은 사람들에게 카미노의 첫날 아침부터 이런 불쾌감을 줘야만 했을까?


누가 더 잘못했는지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한 사람이 누군가 혹은 여럿의 하루를 온통 망쳐져 버린 것은 분명해 보인다.

주변을 살펴보면 너무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서 깜짝 놀라곤 했었다. 이 곳이라고 별반 다르진 않나 보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들 화를 내고 살아가는 것일까? 나의 감정을 표출하려는 이기심이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하는 마음보다 크기 때문에 그토록 쉽게 사람은 화를 내는 이기적인 존재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배려의 부족. 이 시대에서 권장되는 태도가 배려가 아님은 분명하기에 누구를 나무랄 수는 없지만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그 뒤부터 나는 조식 따위 몰래 챙기지 않게 되었다.


'그대에게 잘못이 없다면 화를 낼 필요가 없다. 그대가 잘못했다면 화를 낼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화를 내지 않고 세상을 볼 수 있다. - 간디



이른 아침의 피레네 산맥은 안개와 양들로 가득하다. 10미터 앞도 분간하기 힘든 안갯속에는 딸랑거리는 방울소리와 내 숨소리 그리고 내 발자국 소리만이 존재하는 듯하다. 앞으로도 뒤로도 아무도 없다. 아니,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볼 수가 없다는 게 맞을 것 같다. 뿌옇게 피어오른 안개는 시야를 정말 완벽하게 가려주고 있다. 소들 그리고 양들과 나란히 걷다 보니 어쩐지 혼자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들이 두려워진다.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는 세계에 혼자 떨어진 기분이랄까. 너 여기서 대체 뭐 하는 거야? 여기 우리 구역이거든?이라고 소리를 지르며 갑자기 떼로 나에게 달려들 것만 같다. 참 우스운 두려움이다.

내 숨소리와 방울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한 발짝 한 발짝 걷는다. 꽤나 가파른 길이지만 아침의 선선하고 상쾌한 공기와 쉴 새 없이 딸랑거리는 양들의 방울소리가 주는 에너지로 신나게 걸어진다. 양들이 쳐다보는 길 옆 으슥한 곳에서 처음으로 볼일까지 보고 나니, 뭔가 정말 자연 속에 있는 듯한 기분에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그래, 양들도 다 길에서 볼일을 보는데 나라고 안될 건 뭐람!


프랑스에서 시작해 어디가 국경 인지도 모른 채 스페인 땅을 걷는다. 여기가 스페인인지, 한국인지, 프랑슨지 알아챌 수가 없다. 그저 어디에나 있는 아름다운 산일뿐이다.

아직 내가 얼마큼 걸을 수 있는가에 대한 감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목적지만을 바라보고 걷기를 여덟여 시간,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처음으로 19km가 되는 길을 걷고 나니 다리가 꽤나 아파온다. 이 곳 알베르게는 수백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을 만큼 거대했고, 또 최근에 리모델링이 되어 시설이 깨끗했다. 짐을 풀고 잠시 쉬다가 알베르게를 돌아다녀 본다. 어제 만났던 진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더 멀리 갔나 보다. 그리고 알베르게에 있던 작은 도서관에서 한국어로 된 책을 한 권 발견했다.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 이 길을 먼저 다녀간 누군가가 놓고 갔음이 분명한 내용의 책이다. 스물일곱의 앙드레 지드가 썼다는 이 여행기는 아름다운 문장들로 가득했다. 자연에 대한 경탄으로 채워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아쉬움이 차 오른다. 너무도 아름다운 문장들이 읽혀 내려감이 아쉽고, 책 장이 넘어가는 속도보다 시간의 속도가 빠름이 아쉽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날이 지나간다.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 가듯이 바라보라.

그리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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