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1. PEACE 02화

고통을 대하는 방법

고통을 즐기라는 개소리 따위

by 황사공



새벽부터 부스럭 거리는 사람들의 소리에 오늘도 잠에서 깬다. 알람이 따로 필요 없다. 나를 뺀 모든 사람들은 몹시 부지런 하구나, 싶은 아침이다.

첫 알베르게에서부터 만났던 히데오는 일본인이다. 환갑이 넘은 그는 한국에서 14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어서 한국어에 꽤나 능통하다. 자다 막 일어나 침대에서 스트레칭을 하던 나에게 갑자기 다가오더니 약간은 어리숙한 한국말로 한국 친구에게서 받은 군용 비빔밥이 있으니, 다음 마을에서 함께 먹자며 아침 식사 초대를 한다. 그리고는 먼저 가서 기다리겠노라며 다른 일본인 두 명과 함께 훌쩍 떠나버렸다.

뭐? 먼저 가서 기다린다고?????...

침대에 앉아 늑장을 부리던 내 마음이 갑작스레 급해진다. 후다닥 씻고 짐을 꾸려 서둘러 나서려고 하는 나에게 누군가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어제 숙소에서 만났던 미국인 아주머니이다. 빵을 싸다 된통 당했던 그녀 말이다. 그녀는 처음 보는 남자 순례자와 함께 이야기를 하다 지나가는 나에게 인사를 했다. 나를 보며 눈을 반짝이는 남자 순례자는 포르투갈에서 온 루이스이다. 나를 보며 한국에서 왔냐 묻고선 자신이 알고 있는 한국인 친구 이름을 두어 개쯤 들먹이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아는 이름은 없다. 있을 리가 없잖은가? 한국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말이다.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조급함에 인사만 대충 나눈 채 서둘러 숙소를 나선다. 비가 곧 쏟아질 것처럼 흐린 아침이지만 공기는 상쾌하다.



나와 비슷한 시간에 출발을 한 순례자들을 따라 걷다 금세 다음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에 하나 있는 바는 아침을 먹으려는 많은 순례자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일본인 켄따루와 후미야를 만났다. 그런데 정작 아침식사에 초대를 한 히데오가 보이질 않는다. 분명 그들과 같이 나갔는데 그들고 그의 행방을 몰랐다. 그들 역시 이 곳에서 만나 지겠지 하고 기다리는 중이라 했다. 일회용 비빔밥은 후미야가 가지고 있었지만 우리끼리 먹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일단 다음 마을까지 걸어가면서 그를 찾아보기로 결정했다.

가는 길에 비를 만났다. 가뜩이나 허한 아침이라 기운도 없는데 비까지 오고, 앞서가는 두 일본인들은 걸음이 너무 빨라 나는 자꾸만 뒤처진다.


DSCF0939.JPG 조금만 천천히 가 줄래?



비는 잠시 오다가 말았다. 꺼내 입은 비옷이 무색해졌다.

다음 마을에 도착했지만 우리는 히데오를 만나지 못했고, 결국 마을에 하나 있는 빵집에서 갓 구운 바게트와 햄, 치즈를 사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작은 빵집에서 산 갓 구운 듯한 바게트는 정말 맛있었다.

켄따루, 후미야와 나란히 앉아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다. 어제 처음 만난 이들이 아직 낯설기만 하다.



DSCF0948.JPG
DSCF0947.JPG
이름 모를 작은 마을 벤치에서 만든 샌드위치



낯설고 마음이 불편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샌드위치를 먹고 난 뒤, 후미야가 따로 걷자 얘기를 한다. 보아하니 둘은 이미 이야기가 된 모양이다.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걸 보니 내 눈치를 조금 본 듯하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나 역시 그런 마음이었음을 굳이 말하진 않았다.


21살의 휴학생 켄따루는 세계일주 중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거쳐 이 길에 왔다. 24살의 후미야는 런던에 있는 일본 식료품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여행으로 이 길에 왔다.

왜 하필 이 곳 이냐는 질문에 그들은 그저 돈을 아끼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모국을 싫어했고, 여행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으며 지금 여행 중인 자신들의 모습에 만족해했다. 어리다고 해야 할지 젊다고 해야 할지 애매한 그들의 모습에 어쩐지 마음이 씁쓸해진다. 물론 나 역시 누군가의 눈에는 그런 젊은이들 중 한 명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들은 무엇을 얻고자 이 길을 왔을까?


"너는 여기에 왜 왔니? "

라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다. 보통 처음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서로에게 내뱉는 첫 질문이다.

파울로 코엘료라는 작가를 좋아하는데 그가 이 길을 걷고 나서 인생 전체가 달라졌다는 글을 보고 산티아고를 꿈꿨고 지금 여기에 왔노라, 그리고 나도 내 인생을 바꾸려고 그러노라..라는 대답을 하고 나면 어떻게 인생을 바꾸고 싶냐는 질문이 늘 따라온다. 그것을 찾기 위해 이 길을 걷고 있는 중이라고 대충 대답하고 나면, 뭔가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든다. 나는 대체 왜 이 곳에 와있는가? 대체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 것인가?


사실 그럴듯한 이유를 대고는 있었지만 나 스스로도 그 대답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대답을 하면서도 찜찜한 마음이 든다. 나 자신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어떻게 대답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 것일까. 에 대해 생각하려 노력해 보았지만 도통 진척이 없다. 그저 낯설고 아름다운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살아있음을 느껴가며 한 발짝씩 내딛을 뿐이다.



길을 걷기 시작한 지 3일 만에 발의 통증이 시작됐다. 이틀간의 걷기로 발이 부었고, 한 사이즈 크게 준비한 신발은 이내 작아져 버렸다. 작은 신발 속에서 커져버린 발은 숨을 쉬지 못했다. 통증이 스멀스멀 피어올라온다. 참아본다. 참고선 걷고 걷고 또 걷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신발을 벗어 버렸다. 양말 신은 발로 길을 걸었다. 훨씬 살만하다. 발이 아픈 사람이 나뿐만은 아님을 알려주듯 길 위에는 버려진 신발이 종종 보였다. 나 역시 신발을 벗어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먼저 이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새 신발은 가져가지 말라던 충고를 무시한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 그리고 저렇게 신발을 벗어 놓고 간 사람의 재치에 혼자 미소 지으며, 그렇게 맨발로 가던 길을 계속 걷는다.


DSCF0990.JPG 발에겐 더이상 쓸모없어진 누군가의 신발. 길이라도 알려주렴.



지나가던 사람들이 괜찮냐고 묻는다. 괜찮다고 대답한다. 맨발로 걷는 게 훨씬 편했지만 자꾸만 괜찮냐고 묻는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 다시 신발을 신었다. 그렇게 다시 내 발은 고통 속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괴롭다.


오늘의 목적지인 주비리는 가도 가도 나오질 않는다. 내리막에서 끝날 것 같던 산이 다시 오르막으로 이어지기를 여러 번. 발에서는 불이 나는 것 같지만 어디 한번 해 보자는 마음으로 억지로 참고 걷는다. 그리고 한참만에 드디어 다음 마을을 만났다.




1231864A4EC5CD060D954B
DSCF0995.JPG
DSCF0997.JPG


조그만 개울을 하나 건너면 이름도 낯선 주비리가 나온다. 스페인식 발음으로 주비히라 부르는 이 곳은 조그맣고 아기자기한 예쁜 마을이다. 마을을 돌아볼 새도 없이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사설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그저 당장 신발을 벗고 싶은 마음뿐이다.

마을 입구에서 오전에 헤어진 켄따루를 우연히 만났다. 아침에 못 먹은 비빔밥에 더해 오늘 저녁을 만들어 줄 테니 함께 하자고 하기에 흔쾌히 응했다. 일본인 친구가 해 주는 저녁이라니, 생각만 해도 신난다.

여행자센터 앞에서 아침에 우연히 만났던 루이스와 다시 마주쳤다. 나를 보고 어찌나 반갑게 다가오는지 오랫동안 알고 있던 친구인 줄 착각할 뻔했다. 한국인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는 건지 아니면 그의 한국인 친구를 아주 좋아하는 건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몹시 친절하다. 참 고맙다.


짐을 풀고 조금 쉬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본다. 씨에스타 시간이라 마을은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자판기에서 콜라 하나를 사서 어느 담벼락에 앉아 마셨다.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며 트림을 한번 하고 나니 우주에서 최고로 행복한 순례자가 된 것만 같다.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소소한 일상의 달콤함. 이게 바로 이 길의 가장 큰 묘미인 듯하다.


씨에스타가 끝나고 작은 가게에서 와인 한 병을 샀다. 그리고 켄따루가 초청한 저녁에 참석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그들의 숙소로 향한다. 요리를 좋아하는 켄따루는 이미 무엇인가 신기한 요리를 만들고 있었고, 마당에는 히데오가 전해준 한국의 군용 식량이 햇살 아래 데워지고 있다. 오래간만에 보는 한글이 반갑다.


180D7C504EC5CF0E43C5FF
1732CC494EC5CF6A18C483
오늘의 저녁 메뉴


김 병장 전투식량의 주인인 히데오는 저녁 약속이 있어 함께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 만나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 건강한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


켄따루, 후미야 그리고 독일에서 온 까뜨린과 벨기에에서 온 실까, 그리고 한국인 락과 독일인 모녀 바바라와 헬레나와 함께 한 커다란 저녁식사 자리가 되었다. 넉넉지 않은 와인과 각자 준비한 음식을 조금씩 나눠먹으며 삼일 간의 여정을 너도나도 내뱉기 시작한다.

까뜨린은 첫날부터 발에 심각하게 물집이 생겼다. 뒤꿈치가 거의 다 벗겨져 피가 나고 있는 상태로 이 곳에 도착했다. 휴가로 이 길을 선택한 까뜨린은 자신의 결정에 대한 후회와 불만을 저녁 내내 쏟아낸다.

반면 실까는 웃는 모습이 참 예쁜 행복한 순례자이다. 그녀 역시 발에 물집이 생긴 덕에 12시간을 길에서 보냈지만 처음 겪는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도 즐겁게 풀어낸다.

마음의 차이일까? 목적의 차이일까? 성격의 차이일까?

두 순례자의 발에 생긴 물집은 같았지만 그들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완전히 달랐다. 참 신기하다. 같은 상황을 이토록 다르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눈 앞에서 보고 있는 것이 말이다. 자기계발서에 나올법한 샘플을 눈으로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길 위에서 이렇게 제각각인 사람들을 만나 함께 저녁을 먹고 있는 지금이 너무 신기하다.

해가 떠 있을 때 시작한 저녁은 어둠이 밀려오고 나서 끝이 났다. 한참을 웃고 떠들다 조용한 숙소로 돌아와 보니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은 이미 잠자리에 든 후였다. 저녁 열 시, 내 기준에선 아직은 너무 이른 시간 이기도 한 데다가 너무 왁자지껄한 곳에 있다 온 덕에 붕 떠 있는 마음이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그래도 내일을 위해 억지로 누워 잠을 청해 본다.


"드르렁 ~.. 드르렁 ~ "


심각하다. 정말 심각하게 코 고는 소리가 내 위에서 울려 퍼진다. 귀마개도 소용이 없다. 여섯 개의 이 층 침대를 가득 채운 다른 순례자들의 한숨 소리와 뒤척이는 소리가 이어진다. 다들 잠을 못 이루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내 움직임이 그의 코골이를 잠시나마 멈추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몸을 들썩여도 보고 위에 있는 코골이의 침대 바닥을 쳐 보기도 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다. 다시 잠이 들려 노력해보지만, 정신이 점점 또랑또랑해 지기만 한다. 그래. 이런 게 카미노지.

그렇게 한 시간쯤 흘렀을까? 정적과 코골이, 한숨소리가 반복되던 어느 깊은 새벽... 갑자기 코골이남의 옆, 그러니까 옆 침대의 이층을 쓰고 있던 여자가 베개를 코골이남에게 집어던지며 씨그럽다 소리쳤다. 당황한 남자가 잠에서 깨어났다. 여자는 이 방에서 너만 코를 골고 있고 너무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다 소리를 지른다. 남자는 미안하다 말하고 돌아 누웠다. 그렇게 방에는 정적이 잠시 흘렀지만 잠시 후 또다시 코골이는 시작됐다. 드르렁드르렁...... 드르렁... 그리고 이번에는 베개 폭격이 코골이에게로 날아간다.


"Shut up! Please get out!!" 예민할 대로 예민해진 여자가 베개를 던지며 소리를 질렀고, 화가 난 남자는 일어나서 스페인어로 소리를 지른다. 여자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고, 아래에서 자던 아빠가 일어나 딸을 달래주기 시작한다. 아빠와 함께 이 길을 온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결국 그 가족은 방을 나갔다 진정하고 다시 들어오는 듯했고 동이 트기도 전에 방문을 쾅 닫으며 떠나버렸다. 가뜩이나 코골이 덕에 모두가 잠을 설치고 있었건만 그들의 매너 없는 행동에 모두가 잠에서 깨고 말았다. 코골이 남은 미안했던지 모두에게 사과를 했고, 그의 친구들인 유쾌한 순례자들은 익살스러운 흉내를 내며 그를 놀려댄다. 피곤했지만 그들의 몸놀림이 너무 웃겨 모두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즐거운 아침을 맞이했다.


snoring , 카미노에서 첫 번째 배운 영어단어이자 이 길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 중 하나이다. 정말 코골이가 없는 밤이 손에 꼽히기에, 매일 우리는 코골이가 없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 방에서 잠을 자는 데다가 또 모두가 지칠 대로 지쳐있는 길이기에 조용하고 평화로운 밤은 거의 없었다. 코골이는 어디 가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밤의 불청객이지만, 본인이 원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제어가 가능한 것도 아니니 무엇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저 코골이를 만나지 않기를 비는 수밖에. 호주에서 온 예민하던 그녀도 아마 나중에는 적응해서 그저 무덤덤하게 코골이를 받아들였으리라 생각해본다. 나 역시 그러했으니까.


새로운 사람들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발의 통증, 잠 못 이루는 고통과 같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고통들도 알아가기 시작한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마음으로 쉽게 제어가 되지 않는 고통들 앞에서 이성은 쉬이 마비된다. 생각이 육체를 지배할 수 있다고 누가 그랬던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설렘보다 처음 겪어보는 고통들에서 비롯된 괴로움이 더 크게 다가온다. 대체 우리는 무엇을 얻고자 이 고통을 감수하고 이 길을 얻는 것일까? 나는 지금 잘 하고 있는 것일까?







keyword
이전 01화PEACE. 산티아고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