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인생과 우리의 지금
대학시절 전공 공부를 정말 어려워하던 친구가 있었다.
사실 흥미보다는 점수에 맞춰 대학과 과를 결정하던 분위기 때문에 대학에 진학은 했으나 막상 그 공부를 해 내지 못하던 친구들은 흔히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그중 하나였고, 만만찮은 공학과 그보다 더 만만찮은 대학 수학에서 길을 잃고 시험 때마다 자괴감에 빠지기 일쑤였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미적분학과 공업수학을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이며, 이렇게 사는 인생이 옳은가에 대한 열띤 토론만 줄곧 해댔던 것 같다. 그 와중에서도 정말 전공 공부를 싫어하던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친구는 술 마저 약해 술을 마신 다음날이면 술에 패배한 자신의 어제를 돌이켜보며 또 한 번의 자괴감에 빠지곤 했었다. 술을 잘 마시는 것이 하나의 능력(?)으로 인정받던 시대였다. 그렇게 술과 함께 대부분의 대학시절을 보낸 우리들은 저마다의 방황 끝에 대부분 전공과 무관한 일을 하며 조금씩 현실에 정착을 해 가는 듯 보였다. 그리고 각자의 인생이 바빠 서로 SNS로만 간간이 소식을 듣는 사이가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으로, 직장으로, 고시 준비로, 해외유학으로 저마다의 진로를 정했을 때 P는 갑자기 간호대학으로 다시 입학을 했다. 지금보단 낫지만 그 시절 또한 나름 취업난이 심각했기에 전공을 바꿔 다시 진학을 하는 경우는 흔히 있었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간호대학을 간 P는 알바로 아마추어 모델일을 시작하더니 간호사와 모델일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둘 다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방황을 하는가 싶더니 서른에 돌연 모든 것을 관두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대학시절에도 이미 한번 다녀왔던 호주였지만 더 나이가 들기 전에 꼭 다시 가고 싶다며 과감히 떠나버렸다. 서른에 그런 결정을 할 수 있는 P의 용기가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한참을 있다 돌아온 P는 갑자기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이리저리 다니는가 싶더니 갑자기 이태리로 요리 유학을 떠났다. 이태리에서도 여기저기 다니며 요리를 배우는가 싶더니 어느새 다시 한국에 돌아와 살짝 외진 번화가의 뒤안길에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작은 가게였지만 사장이 된 P는 열심히 하는 듯 보였고 조금씩 입소문이 나는가 싶더니 어제는 방송에 나오기까지 했다. 와우!
젊은 파스타 장인으로 인정을 받으며 작지만 알차게 가게를 운영해내고 있는 P의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보다 보니 내 마음이 다 뿌듯했다. P의 고군분투를 아는 한 사람으로서 그녀의 지금이 참 값지게 느껴졌다. 누구보다 많은 방황을 했던 그녀였지만 그 방황이 지금의 그녀를 있게 한 건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철없다는 소리를 들으며 지내온 P의 지난날이 다 보상받는 듯 해 내가 다 감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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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미래는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 시절 손가락질받고 철없다 소리를 들어가며 방황하던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방황과 안정을 저울질해가며 지금을 살아내고 있다. 누군가는 성공한 듯 잘 나가 보이고 누군가는 당장 내일이 걱정될 만큼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기엔 아직 너무도 이르지 싶다. 그런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가장 흔히 저지르는 오지랖 중에 하나가 타인의 삶을 평가하고 어쭙잖은 조언을 내뱉는 것인 듯하다.
편의점 알바를 하며 작가를 꿈꾸는 친구에게, 계약직을 전전하면서도 여행으로 돈을 모두 써버리는 친구에게, 요리가 싫다며 아기에게 모든 음식을 사서 먹이는 친구에게 조언이랍시고 해 대는 간섭이 얼마나 폭력적 일지 생각해 볼 일이다.
시간이 더 많이 지나 유명 작가가 된 그 친구가, 여행에서 새로운 인생을 발견한 그 친구가, 음식에 대한 파워블로거가 된 그 친구가 미래에서 나를 비웃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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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이야기지만 성공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꿈과 소신을 잃지 않고 살아온 결과로 성공을 쟁취했다. 성공이라는 기준은 굉장히 주관적인 것이겠지만 스스로의 인생에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때, 그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라 불릴만하다 생각한다.
후회 없이 사는 것. 해 보지 못한 아쉬움에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고 최대한 적극적으로 도전해보는 것. 도전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겠지만 도전 없는 성공은 있을 수 없다.
주변에 유독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잘 다니던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보험설계사가 된 사람도, 외국계 회사를 다니다 일 년 만에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돌아서서 세계일주를 떠나고 책을 출판해 라이프 코치가 된 사람도, 퇴사 후 취미로 떡을 만드는 법을 배우다 떡 카페를 차려 사장님이 된 사람도 한결같이 하는 말은, 일단 해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지금이 예전의 삶보다 더 행복한 것은 확실하다고 했다. 그 행복 뒤에는 모두의 만류를 뿌리치고 해 내는 의지와, 그보다 더 앞서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자의식이 있었다.
나의 만족을 위해 시간을 보내는 것, 그 시간들이 모여 만들어진 그들의 지금은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았을 때 '참 잘살았네.'라고 스스로에게 얘기해줄 수 있는 삶이 바로 성공이 아닐까.
자신의 지금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얼마나 될까?
지금의 나는 내 삶에 만족하는가?
인생을 마무리하는 즈음에 내 삶을 돌이켜 보았을 때 성공했다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아는 누군가의 성공이 내 마음에 와서 푹 박힌, 나의 지금과 미래를 생각해보게 되는 뜻깊은 11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