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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Oct 07. 2020

남편이 이직을 준비합니다.

가장의 무게



남편이 이직을 준비 하겠다고 한다. 적지 않은 나이이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환경이 더 좋은 곳으로 직장을 옮기고 싶단다. 남편은 오래도록 고민을 했나 보다. 남편의 선택에 지지를 보낸다.


남편이 일을 해 보고 싶은 회사가 있단다. 그 회사의 채용공고를 몇 달이고 들여다보다 일을 해 보고 싶은 부서의 채용이 올라와 남편은 이력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학력이나 경력이 제법 괜찮아 관련 분야에서는 쉽게 이직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도 있었다. 나 역시 내심 남편이 새로운 회사로 이직하길 바라는 마음에 남편이 작성한 자기소개서를 손봐주기도 했다. 남편이 잘 되는 게 우리 집이 잘 되는 것이기도 했지만, 마흔 전에 새로운 도전을 해 본다는 그 용기를 응원해주고 싶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합격 연락이 오지 않았다. 불합격이라는 연락을 받지도 않았지만 합격은 아무래도 물 건너간 듯 보였다.


남편은 적잖이 상심한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직장에 입사하던 당시 10개 회사 중 8군데에서 합격을 통보받았었기에 서류 정도는 가뿐히 넘길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 같다. 5년 전의 그때보다 관련 경력을 더 쌓았기에 구직시장에서 더 선호하리라 믿었는데, 그만큼 많아진 나이와 직급을 간과했었나 보다. 곧 마흔이 다 되어가는 과장급 경력직이 이직을 하기엔 구직시장이 너무 좁아 보였다. 한 번의 불합격으로 남편은 이직하기에는 너무 늦은 건 아닌가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그런 게 아니라 그저 지원한 직무가 딱 들어맞지 않았을 뿐인 거라고, 당신에게 딱 맞는 자리가 다시 나타날 거라고 위로를 해 본다.





결혼 전 나는 먹고살기 위해 직장을 다닌 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즐겁게 일을 했던 편이었고, 이직을 꿈꾼 것 또한 더 신나고 재미난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 나에게 직장은 그저 자아실현을 위한 하나의 도구 같은 것이었기에,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수입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도 크게 없었고, 휴가 때마다 욜로를 외치며 해외여행을 다니곤 했었다. 이렇게 살다가 언젠가는 결혼을 하게 될 것이고, 결혼을 하고 나면 경제적인 문제는 남편이 해결하겠지 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취집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여자들에게 취집은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해 일하지 않고 살림을 하며 문화센터도 다니고 취미활동도 하고 다니는 꿈같은 생활을 의미했지만, 남자들에겐 남편의 경제력에 대해 의존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것 자체가 취집이라는 것을 결혼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또한 얼마나 많은 젊은 남자들이 이 "취집"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지도 말이다.


지금 나의 생활이 나에게는 취집이 아니었지만 남편에겐 취집이었다.

육아를 위한 부부의 선택이었고 커리어를 포기한 나의 희생이라 생각했던 나의 하루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집에서 편히 애나 키우며 놀고먹는 사람의 하루로 바뀌어가는 듯했다. 결혼 초 했던 서로의 합의는 경제적 난관 앞에서 쉽게 잊혔고 외벌이의 무게에 남편은 조금씩 지쳐가는 듯 부쩍 예민해졌다.


공동의 영역이었던 육아도 자연히 내 몫으로 넘어왔고, 완벽하지 못한 살림의 책임도 온전히 내 몫이 되어갔다.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을 하는 것은 그럭저럭 할만했지만, 어느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 일들로 내 하루가 채워진다는 것이 못 견디게 괴로웠다.  



우연히 예전에 같이 일을 한 직장 동료와 연락이 닿았다. 일을 관둔 지 한참이 지나 나는 전혀 몰랐지만, 옛 동료들 사이에서 나는 시집을 잘 가 돈 벌지 않고 집에서 살림이나 하며 지내는 팔자 좋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 맞벌이를 하고 있는 동료들은 나를 부러워한다며, 부러운 뉘앙스로 말을 전한다.


"그래? 전혀 아닌데.. 살림 한번 해보라 해. 나가서 일하는 게 훨씬 편할걸? 나는 일하는 걔들이 부럽기만 해."


아무렇지 않은 듯 대꾸했지만, 마음이 좋지 않다. 나는 일을 안 하는 것이 아니고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일을 못하는 건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이지 결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나가서 돈을 버는 것보다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의 비용이 더 낮아서인 것을 해명하고 싶었지만 그럴 방도가 없었다.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보내야 할 가십일 뿐이겠지만 기분이 착잡해진다. 내가 암만 아니라고 우겨 보아도 세상이 그렇게 본다면 그게 맞는 건지도 모르니까.



여자의 목표는 취집이라 여기는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눈에 비친 나는 그럭저럭 취집에 성공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단 일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그리고 나를 취집 시킨 내 남편은 가장의 무게에 짓눌려 허덕여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끔 남편의 짜증에 뒤섞인 나에 대한 불만족이, 집에서 노는 팔자 좋은 여편네로 보는 듯한 그 뉘앙스가 나를 괴롭게 한다. 꿈을 좇던 예전의 내가, 돈보다 사랑이 우선이라던 예전의 내가 다른 사람인 양 낯설게만 느껴지고, 돈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너무도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아이들이 조금만 더 크면 나도 일을 할 수 있겠지. 나도 다시 돈을 벌 수 있겠지. 지금의 시간 또한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것이라 마음을 다잡아 본다.





고민을 이야기하는 TV 쇼프로에서 너무 일만 하느라 가정에는 소홀한 아빠가 고민인 가족이 나왔다. 그 가족의 엄마는 남편이 앞만 보고 달려 나가는 경주마 같다 얘기했다. 그리고 가끔은 옆도 보고 뒤도 보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 멘트를 들은 진행자 신동엽이 이렇게 말했다.


"남자의 입장에서 변명을 하자면.. 앞만 보고 달리다가 어 어디 있지 어디 있지 찾으면 다 내 등에 타고 있어요."


남편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빠도 남편도 처음인 그 사람 역시 가장의 무게가 버거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너질 수 없기에 참고 버텨내며 하루들을 이겨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때론 혼자 버는 것이 너무 버거워 집에만 있는 내가 원망스럽기도 했겠지. 남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조금은 이해가 된다.


학교를 졸업하고선 단 한 달도 자신을 위해 써 본 적이 없는 남편이다. 남들 다 다니던 해외여행 한번 가지 않고 성실히 본인의 자리를 지키고 가족의 곁을 지켰다. 물론 저금도 착실히 해 둔덕에 우리의 신혼이 조금 여유로웠던 것도 사실이다.

남편은 꼭 한번 캐나다엘 가서 살아보고 싶다 말했다. 넓은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에서 여유를 한번 느껴보고 싶다고 말이다. 캐나다도 유럽도 어지간한 동남아도 다 다녀와본 나에게 젊을 때 돈도 안 모으고 뭐했냐 비아냥 거리면서도 하고 싶은걸 다 하고 살았던 삶을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여행 한 번 가지 않고 늘 성실하게만 살아온 남편이기에 지금 더 지쳐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살 수록 무거워지는 책임감에서 도망갈 방법을 아직은 모르니까.


이직을 준비하는 남편이, 그의 옆머리에 삐죽 솟아오른 흰머리가 어쩐지 서글프다.



그런 남편에게 나도 꼭 알려주고 싶다. 남편의 삶에 편승해 편히 살고자 결혼한 것이 결코 아님을 말이다. 난 취집을 한 것이 아니고 그저 결혼을 했을 뿐이고, 우리가 협의해야만 했던 그 모든 상황이 좋아지고 나면 다시 내 길을 가겠노라고. 그땐 지금보다 조금 수월할 것이라고.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애써 달라고 말이다.


좋아서 한 꿈같던 결혼이 현실적인 삶의 무게로 우리를 짓누르는 결혼 4년 차, 4인 가족이 된 지금의 우리는 매일매일 삐걱대며 그래도 열심히 굴러가는 중이다. 어디로 가는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열심히 가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곳에 닿겠지.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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