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 다른 가족의 발아래와 또 다른 가족의 머리 위에 낀 채 우리만의 하루들을 보내는 중이다. 아파트에선 필연적으로 층간소음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아이를 가진 집이라면 늘 가해자가 된 마음으로 아랫집을 만날까 전전긍긍하며 지내는 숙명을 얻게 된다.
엘리베이터는 가장 무서운 공간이다. 아랫집 사람들의 얼굴을 모르기에 혹 우리 아래층의 버튼이 눌러지진 않을지 늘 조마조마하다. 아랫집 분들을 만나게 되면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죄송하다 해야 할지 모른 체해야 할지 혼자 괜스레 걱정만 해 대다, 마침내 이사온지 3개월여 만에 아랫집 분들을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아.. 안녕하세요. 저희 아랫집에 사시네요 ^^;; "
첫 만남은 너무 당혹스러워 간단한 인사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의 아랫집에는 아주 고상해 보이는 노부부가 살고 계셨다. 두 분이 풍기는 분위기가 너무 멋들어지다 생각했던 첫 만남이었다.
첫 만남 이후로 우리는 꽤나 자주 마주쳤다. 특히 멜빵바지와 베레모를 즐겨 입으시는 백발의 할아버지와 일주일에 한 번은 마주쳤는데, 세 살짜리 아기가 놀이터에 놀러 나가는 시간과 할아버지가 산책하는 시간이 겹쳤던 모양이다. 늘 인자하신 얼굴로 다 괜찮다 너무 이쁘다 하시며 아이의 손에 과자를 쥐어 주시는 할아버지를 보며 좋은 이웃을 만나게 됨에 감사해했다.
거기에다 참 다행스럽게도 우리 윗 집에는 아이가 살고 있지 않았다.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조용히 살아주는 9층 분들에게도 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얼굴은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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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가 터지고 아이는 어린이집엘 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맘때 즈음, 윗 집으로 새로운 가족이 이사를 왔다. 이사를 온 지도 전혀 몰랐지만, 어느 날부터 갑자기 늦은 밤 발 망치소리가 온 집을 울려대기 시작했고, 우리는 새로운 가족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새로 지어진 아파트라 층간소음 완충재가 깔려 있어 소음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그저 좋은 이웃을 만났던 나의 오판이었다. 주로 밤늦은 시간부터 시작해 새벽까지 쿵쿵대는 윗 집의 소음에 신생아를 케어 중이던 나는 새벽마다 깜짝 놀라기 일쑤였고, 놀란 가슴에 잠 못 이루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동안 우리 아이도 더 많이 자라 집에서건 밖에서건 쿵쿵대며 뛰어다니는 4살이 되어있었다. 통제가 불가능한 망나니가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데다가 종종 집으로 또 다른 망나니 친구들이 놀러 오기까지 하다 보니 절로 아랫집으로 전해질 소음이 걱정되었다. 매트를 더 깔고 뛰지 못하게 하고 까치발 드는 법을 알려줘도 그때뿐... 집 안에 갇힌 4살짜리 아이들은 에너지가 모두 발바닥에서 나오는 양 쿵쾅거리며 온 집을 헤집고 뛰어다녔다.
윗 집의 소음으로 인한 괴로움과 동시에 아랫집에 대한 미안함이 커졌다. 맛있게 잘 익은 복숭아와 사과를 들고 아랫집에 찾아가 사과의 인사를 드렸더니 자기네들도 아들 둘 키워서 안다며, 이 정도는 괜찮으니 염려하지 말라 듣기 좋은 말을 또 해 주신다. 그러며 같이 인사 간 큰 애를 보고 한 마디 덧붙이셨다.
"너 늦게 자더라~ 일찍 자야 많이 크지. "
아이는 웃었지만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이제라도 인사를 드리러 오길 참 잘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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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집에서 나는 소음은 다양했다. 발망치로 추측되는 쿵쿵 쿵쿵부터 정체모를 드르륵드르륵 거기에 일정한 리듬으로 울리는 크크크크킁 크크크크킁 소리까지. 걷는 것뿐만 아니라 안마의자 운동기구 등 까지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그 모든 것들이 밤 12시 이후에 울린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청각이 예민한 나는 매일 밤 울려대는 소음에 정신쇠약에 걸리기 일보 직전이 되었다.
"윗 집에 올라가서 조용히 좀 해달라고 할까? 너무 괴로워.."
"층간소음 싫으면 아파트 살면 안 되지. 공동주택 살면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하는 부분이야. 그리고 네가 너무 예민한 것 같아. 난 그 정도로 듣기 싫지는 않은데~. 좀 편하게 생각해봐."
층간소음에 대한 남편의 입장은 나와 사뭇 달랐다.
나 하나만 불편한 고통이라니그냥 참아야 하나보다 싶어 한숨만 날 뿐이었다.
유독 피곤하고 잠을 못 이루던 어느 날 밤, 또다시 쿵쿵대는 소음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구구절절 장문의 편지를 써서 윗 집 현관문 사이에 끼워두고 내려왔다. 이미 새벽 한 시가 넘은 터라 남편은 잠들어 있었고, 늦은 밤의 멜랑콜리에 휩싸인 나를 무엇도 말리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괜한 짓을 했나 싶어 후회도 되고 창피함도 들어 편지를 떼려 얼른 올라가 보았는데 이미 편지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이틀 뒤, 우리 집 현관문에도 반듯하게 쓰인 편지가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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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윗집 사는 사람입니다.
저희가 피해를 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저와 제 와이프가 평일에는 저녁 늦게 귀가를 해서밤에 소리가 많이 들렸던 것 같네요.
평소에 인지하고 있지 못하던 부분이었는데 편지를 보고 생각해보니... 맨발로 다닌 부분과 청소기 사용건 인 것 같아요.
슬리퍼 사용과 청소기는 12시 전 까지만 사용하도록 할게요.
혹시나 추천해주실 만한 청소기가 있다면 부탁드려요.
의도하지 않게 층간 소음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계속해서 소리가 크게 나면 다시 얘기해주세요.
다른 개선책도 생각해볼게요.
*
너무도 공손하게 쓰인 편지에 놀라고 그 내용에 또 놀랐다. 밤 12시 넘어 청소기라니... 아무래도 공공주택 거주에 대한 기본 에티켓을 입주 시 의무 교육으로 추가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거기에 청소기를 추천해달라니... 뭔가 너무 허탈하고황당해 웃음이 나왔다. 청소를 왜 그 시간에 하냐고, 그냥 로봇청소기를 사서 낮에 돌리시라는 답장을 쓰는 나를 남편이 말린다.
"그러지 좀 마~ 답장을 또 쓰지 않아도 충분히 조심할 거야. 로봇청소기 사라는 건 오지랖이야. 알아서 하게 둬."
어디까지가 해도 되는 조언이고 어디까지가 오지랖인지에 대한 기준은 늘 어렵다. 나는 꼭 답장을 쓰고 싶었지만 말리는 남편 덕에 미루다 보니 타이밍을 놓쳐 답장을 보내지 못했고, 윗 집의 소음은 좋아지는 듯하다 요즘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참 우습게도 일면식 없는 윗집이지만 문 앞에 붙여진 그 쪽지 덕에 그들에 대한 관대함이 생겨났다. 신혼부부가 늦게 집에 와서 뭔갈 좀 해보려는데 야박하게 아무것도 하지 마라 하기도 좀 그랬다. 애매하게 나름 다정한(?) 손편지를 주고받은 덕에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까 싶어 괜스레 불편한 마음만 커져버렸다. 그냥 다시 올라가서 인사를 해버리면 속이 편할 것 같은데, 요즘 같은 시대에 그렇게 하면 현관문 앞에서부터 쫓겨날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몇 년 전에 신혼집으로 이사하던 날, 떡을 돌려야 한다는 친정엄마의 성화에 시루떡을 들고 집집마다 돌았다녔더랬다. 윗두 집 옆집 아래 두 집 총 5집을 들렀는데 문을 열어준 집은 단 한집뿐이었다. 놀랍고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그 경험 덕에 이번이사에는 이웃에게 인사를 하러 다니지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단 한 번도 이사 왔다는 인사를 받아보지 못했다. 지금이 그저 그런 세상이 된 듯하다. 엄마가 살았던 것과는 다른 세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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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요즘이다. 싸움은 예사고 똥을 뿌리기도 하고 때론 죽이기도 하니 무섭지 않을 수가 없다.층간소음 복수용 아이템을 판매하기도 한다. 그런 흉흉한 소식들에 이웃 간의 따뜻한 정은 집안 가장 구석진 곳으로 숨어버리고 말았다. 이사를 와도 또 이사를 가도 서로 전혀 알지 못한다.
사생활이 그 무엇보다 우선시되고 중요시되는 시대를 살다 보니 가끔은 내 어린 시절의 이웃사촌들이 그립다.
맛있는 게 생기면 다 같이 나눠먹고, 어느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금세 다 같이 모이고, 늘 현관문이 열려있어 지나가면서 크게 인사를 드리고 하던 그 시절이 말이다.
그 시절엔 비밀이 없었다. 한 집이 부부싸움이라도 하면 온 동네 소문이 다 나던 시절이었는데, 요즘은 누가 죽어 나가도 알지 못한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듯하다. 나 역시 이웃을 만나는 게 두려운, 정 없는 이웃이 되어있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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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윗 집은 공룡이 돌아다니고 있는 중이다. 밤 12시가 다 되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청소기는 요즘 안 돌리는 것 같다.
혹시라도 언젠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게 된다면 로봇청소기를 사용해 보라고 꼭 이야기해 주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