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선 부디 행복하세요.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유독 코로나 확진자가 빈번히 발생하는 느낌이다.
이번에도 또 인근 소아과 발 코로나가 온 동네를 초토화시키는 바람에 아이 둘과 함께 집에 갇힌 꼴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9개월 된 작은 아이는 감기에 걸렸다. 콧물로 시작해 고열, 기침으로 이어진 둘째의 첫 투병을 5살 큰 아이와 함께 겪어내는 중이다.
그렇게 찾아온 토요일, 작은 아이의 병간호로 이틀 밤을 거의 지새운 나는 부쩍 예민해져 있었다. 허리도 아프고 손목도 아팠다. 고질적인 육아의 통증이지만 하루 24시간을 아이 둘에 시달리다 보니 모든 게 원망스럽기만 하다. 이런 상태에서는 곧잘 부부싸움을 하게 된다.
주말이면 쉬고 싶어 하는 남편과, 주말엔 육아를 도와주길 바라는 나의 바람은 주말마다 자주 충돌한다. 코로나와 미세먼지로 발이 묶인 요즘은 더 그렇다. 좁은 집에서 넷이 복작대며 대충 끼니를 해결하며 아이들과 씨름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사라지고 만다. 둘째의 감기와 또다시 시작된 코로나로 4일간 집 밖엘 나가지도 못한 첫째가 짠해서 일요일에는 첫째와 함께 둘이서 집을 나섰다. 세 시간을 아이와 작은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니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몸이 말이 아니었지만, 둘째의 이유식을 챙기고 가족의 저녁을 챙겨야 했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100%를 넘어서는 듯했고, 기어이 그 날 저녁 나는 폭발하고야 말았다.
부부싸움은 뭐... 흔해빠진 이야기라 말하는 것조차 피곤하므로 그냥 넘어간다. 정말 쓰고 싶지 않은 주제이다. 하지만 이번이 조금 달랐던 건 남편이 나보다 더 화를 못 참았다는 거? 늘 들은 체 만 체 대꾸도 잘 안 하며 능글맞게 넘어가던 남편은 이번에는 나와 함께 헐크로 변신했다. 그 와중에 내 휴대폰이 떨어져 박살이 나 버렸고, 그 모습을 본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아빠의 무서운 모습에 아이는 많이 놀랜 듯했고, 오히려 침착해진 나는 아이들을 챙겨 방에 들어와 문을 잠가버렸다. 그리고 다시는 상종하지 않으리라 굳게 굳게 다짐을 하며 밤을 거의 지새웠다. 분노와 슬픔이 교차하는 밤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어제 정리하지 못한 채 문을 잠가버려 저녁 먹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식탁과, 아이들의 장난감이 널브러진 거실로 나왔다. 아침부터 다시 화가 솟구쳐 올랐지만, 집을 깨끗하게 치운 뒤 아이들과 함께 사라져 주겠다 생각하며 집을 하나 둘 치워나갔다.
어디로 떠나는 게 좋을지 생각해보았지만 암만 생각해도 갈 곳이 없었다. 친정은 너무 먼 데다가 가봤자 욕만 먹을게 뻔해 보였고, 어디 바다라도 보러 갈래도 감기 걸린 젖먹이와 5세 꾸러기를 혼자 감당하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집 근처 호텔이라도 잡아 아이들과 호캉스라도 해야겠다 생각했지만 아이들 케어를 하려면 취사가 돼야 해서 어려울 것 같았고, 에어비앤비로 취사가능 숙소를 찾아보니 적어도 두어 시간은 가야만 했다. 그렇다고 아이 둘을 데리고 모텔을 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너무 속상하고 또 우울해졌다. 혼자 자유롭게 다니던 예전이 그리웠고, 내 팔다리를 잡고 늘어져 있는 천사 같은 아이들이 버겁게만 느껴졌다. 그냥 혼자 도망가서 잠이나 실컷 자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젖 달라 안으라 울어대는 둘째와 심심하다 아이스크림 달라 떼쓰는 첫째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휴대폰이 안되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더더욱 없었다. 밥 차리기도 싫어 대충 시켜먹으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고, 숙소를 예약하려 해도 피씨에 인증서 따위를 옮겨두지 않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출근한 남편에게 도와달라고 하기도 싫었다. 그나마 PC카톡이라는 게 있어서 세상과 단절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게 다행이었달까.
어디로든 가고 싶어 가끔 만나는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안 그래도 자기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던 참이란다. 그 말이 어찌나 반갑던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함께 떠나는 계획을 신나게 세워보았지만, 아이 둘과 떠나는 것은 계획부터 녹록지 않았다. 둘째의 코 밑에 고여있는 누런 콧물과 내장이 끊어질 듯한 기침소리를 들으며 나는 떠나는 것을 진짜로 포기했다.
나의 이기심이 또 아이들에게 졌다.
늘 졌었지만 오늘의 패배는 어쩐지 조금 서글프다.
결혼을 해 보지도 않은 그 언니는 나의 오만가지 나쁜 감정을 모두 들어주었다. 그리고 어쭙잖은 충고와 다 그러고 사는 거야 시간이 약이야 따위의 어설픈 위로가 아니라 진심으로 공감해 주었다. 이 언니가 이렇게 다정한 사람이었던가? 자주 연락도 못하고 지내던 타인의 작은 호의에 이토록 감사한 걸 보니 그간 참 외롭고 힘들었었나 보다. 코로나로 세상과 단절된 채 아이들만 보며 나는 어쩌면 조금 미쳐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엉망이 되어버린 나의 마음을 다 쏟아내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며 허기가 찾아왔다. 그리고 온종일 나의 모난 감정을 다 받아내 준 그 언니는 내가 아이들을 보는 새 우리 집으로 피자 한판을 보내주었다. 누군가의 배려가 이토록 눈물겹게 고마웠던 적이 내 생에 또 있었던가? 휴대폰도 없이 아이들과 집안에 갇힌 처참한 지금의 내가 혹 아이들만 챙기고 저는 배곯을까 걱정돼 보내 준 피자였다.
그리고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먹은 피자 중 가장 맛있는 피자였다.
ㅡ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며칠 전, 한 통의 부고를 받았다. 예전에 함께 일하던 한 동료의 비보에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너무도 예상치 못한 죽음이었고, 너무도 비극적인 죽음이었다.
내가 일했던 영화업계는 코로나의 가장 직격탄을 맞은 업종 중 하나이다. 근근이 모두들 버텨가겠거니 했었지만 현장은 내 짐작보다도 더 처참했던 모양이다. 한 때 함께 건배를 외치며 불콰진 얼굴로 밝은 미래를 노래하던 누군가가 세상의 반대편으로 가버렸다는 것이 영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가 일하던 그 시절에도 수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꿋꿋이 그리고 거침없이 다음을 준비하던 분이었는데... 도통 믿어지지가 않는 비보이다.
2021년에는 흥행하고 싶다던 프로필이, 해외 영화제에서 찍은 프로필 사진이 기본 이미지로 바뀐 모습을 보니 그의 부재가 진짜인가 싶다.
줄줄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들이 올라오는 페이스북을 보니 진짜인가 싶다.
지난겨울도 참 슬프더니 올봄도 참 슬픈 영화계이다. 떠나온 지 한참이지만 아직도 닿아있는 듯 마음이 저며온다. 내 앞에서 칭얼대는 두 아이를 달래며 선 채 휴대폰 속 바쁘게 움직이는 그들의 타임라인을 바라보는 것에 묘한 기시감이 든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묵직한 납덩어리가 내 명치에 내려앉은 듯 갑갑한 기분이다.
그 무게에 내 안의 무엇인가가 가라앉아버렸다.
며칠째 우울감이 가시질 않는다. 멀리 있는 내가 이럴진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어 염려되는 마음에 아주 오래간만에 안부 연락도 여기저기 해 보았다. 모두가 꿋꿋이 버텨주길 바라는 나의 진심이 조금이라도 전해지길 바라면서 말이다.
아마 그 날부터였던 것 같다. 자꾸만 쳐지기만 해 육아도 살림도 모든 것이 힘들어진 것이 말이다.
나는 타고난 오지라퍼였다.
새해면 여기저기 인사를 보내 대고 같이 일하던 직원의 강아지의 생일까지 챙기던 아주 오지랖 하나는 태평양이라는 소리를 듣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육아에 치여 살다 보니 내가 사는 세상이 변해버렸다.
정이라 생각했던 타인을 향한 관심과 배려들은 불편한 오지랖으로 치부되는 듯 어쩐지 부끄러워져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버렸다. 세상이 정 없게 변해버린 것인지 내가 그렇게 변해버린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누군가의 오지랖이 선사한 피자 한 판이 너무 고마워 눈물이 다 날 뻔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나는 제대로 뭘 먹질 못했다. 달고 짠 고칼로리의 피자 한 조각에 몸과 마음에 온기가 스며든다.
피자를 먹다 며칠 전 세상을 떠난 그분 생각이 났다. 피자를 보내 준 사람도 세상을 떠난 그분도 모두 함께 열심히 같은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그에게도 당신의 끼니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수 있었을까? 별생각 없이 나에게 피자를 한 판 보내준 그 마음에 내가 받은 감동이 저 밑 지하실에 침잠돼 있던 나를 끄집어냈듯이 말이다. 그의 최근을 모르지만 어쩐지 아주아주 외로웠을 것만 같아 마음이 아려온다.
다시 오지라퍼가 되어야겠다. 나의 작은 관심이 누군가에게는 감동이 될지도 모르니까.
흥행 걱정 없는 곳에서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세요.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