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 이렇게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주방 쪽을 보러 향했는데, 주방 싱크대 윗 서랍장에 큰 글씨로 적힌 종이가 눈에 띄었다.
"화내지 말자."
누가 봐도 엄마의 영역인 그곳에 떡하니 붙여져 있는 다섯 글자. 참 선하게 생겼던 그 엄마는 내가 그 글을 보는 걸 느꼈는지 잠시 머쓱해하는 듯했다. 나도 얼른 눈을 다른 데로 돌려 집을 마저 보고는 감사 인사를 남기고 돌아 나왔다. 그 집은 우리 집이 되지 않았지만 그때의 그 까만 글자가 부쩍 자주 떠오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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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까지 나는 내가 화가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언성을 높일 일은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였고, 그마저도 그냥 친구들과 한잔 하며 웃고 떠들다 보면 금세 잊히곤 했었다. 화내지 않는 평화주의자였던 과거의 나는 지금 사라지고 없다.
엄마가 되고 나니 참 화가 많아졌다. 아기가 어릴 땐 남편에게 자꾸만 화가 났고, 아기가 크고 나니 낮엔 아이에게 저녁이나 주말엔 남편에게 자꾸만 화를 내게된다.
수백 번 말해줘도 똑같이 실수하고 좁은 집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찾아내 사고를 치는 아이에게, 그리고 자기의 스타일을 몇 년째 고집하는 남편에게 자꾸만 화가 난다. 내 뜻대로 되는 일이 거의 없는 하루를 살다 보니 온통 화낼 일 투성이다.
관대함은 여유에서 온다는 것이 너무도 실감 나는, 마음의 여유가 하나도 없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 같은 하루들을 보내고 있는 것 같은 요즘이다.
내 참을성이 고작 이 정도였던가, 내 인성이 이렇게 얕았나 싶어 서글퍼지기도 하지만 잠시 방심하고 돌아서면 어느새 사고 치고 있는 아이에게 1초 만에 "하지 말라고!!!"라고 소리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5세 2세 남아를 키우는 엄마에게 자기반성은 사치스럽기만 한 영역인가 보다.
두 아이를 동시에 재우는 것은 육아 중에서도 꽤나 난이도가 높은 영역이다. 토닥토닥 자장가를 들으며 잠이 들려다가도 형아 말소리만 들리면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는 돌쟁이 아가 옆에서 형아는 자꾸만 혼이 날 수밖에 없는 사고뭉치가 돼버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있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5세의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자꾸 조용히 하라고 혼난다. 그리고 둘째가 잠들 때쯤엔 졸음에 빠져 혼자서 스르륵 잠들고 만다.
혼자 잠드는 큰 아이를 보는 것은 언제나 안쓰럽다.
잠든 둘째를 눕혀놓고 동생의 아기침대에 들어가 웅크린 채 잠들려 하는 큰 아이를 토닥여 주니 내 손을 꼬옥 잡는다. 그렇게 아이는 잠이 들고, 나는 미안함에 눈물을 글썽인다.
너도 아직 이렇게나 작은 아이인데...
육아의 아침은 사랑, 오후는 분노와 대환장, 저녁은 반성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매일 반복되는 사랑 분노 반성의 늪의 한가운데에서 오늘도 허우적대는, 아직도 어설프기만 한 엄마인 것 같아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만 한 요즘의 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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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존재가 자체가 버겁고 나 자신이 사라진 것만 같아 우울하던 육아 초반을 지났더니 화로 가득한 육아 중반이 와버렸다.
이게 육아의 중반이 맞긴 한건 지도, 내가 문제인 건지 모두 다 그러고 사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요즘의 시간들이 나는 참 버겁다.
어제 동네에서 마주친 한 할머니가 유모차에 앉아있는 아이를 들여다보고선 참 이쁘다하시며 지금이 가장 좋을 때라고, 엄마에겐 아이만 키우는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라 하곤 가셨다.
아이들이 크기 위해서 얼마나 더 버거운 시간들을 견뎌내야 하는 것인지 아직 가늠이 되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