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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Jul 12. 2021

진심이 그리운 날

힘들 때 가장 필요한 것



내 평생에 가장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듯 한 요즘이다. 힘들 때만 찾게 되는 브런치라 조금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찾을 곳이 이곳 밖에는 없다.


나는 요즘 이사를 앞두고 있고, 5살 2살 두 아이를 집에서 돌보고 있다.


한 줄로 끝나는 근황 설명으로 모든 것이 보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구구절절 무엇이 힘든지 써내려 갈 생각 하니 벌써부터 또 고단하기도 하다. 하지만 어딘가에 내 마음을 풀어야만 살 것 같은 마음에 또 잠깐의 짬을 내어 글을 써 본다.



힘들다는 투정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엔 아주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지낸다.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13개월짜리와 에너지 넘치는 5세를 24시간 돌보는 것은 생각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거기에 허리에 문제가 생겨 치료를 다니다가 둘째가 다치는 바람에 내 치료는 중단하고 애 둘 데리고 둘째 병원으로 매일 출근하고 있다. 거기에 이사가 임박한 탓에 틈틈이 짐 정리도 하고 있다.


몸이 아프니 무엇을 해도 매번 절로 곡소리가 난다. 누가 와서 하루만 아이들 좀 봐주었으면 좋겠다 생각만 하며 진통제와 함께 근근이 하루들을 버티는 중이다.


매일같이 힘들다고 말하는 딸과 동생이 영 못마땅한지 친정과 사이가 부쩍 멀어지 있다. 거리만 멀었는데 요즘은 마음도 거리만큼 멀다.

도와주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과 도와달라 말하진 않지만 먼저 도와주겠다 해주면 좋겠다는 기대가 숨겨진 대화는 자꾸만 겉돌며 서로에게 스크래치를 남긴다.

가뜩이나 건강문제에 예민하던 나의 친정 식구들은 이번 코로나로 인해 모든 활동을 최소화시켰고, 그 최소화의 항목에 출산과 육아와 이사를 진행 중인 나를 포함시켰다. 생에 단 한 번뿐일 딸의 중요한 순간을 코로나를 탓하며 모른척하는 친정이 나는 서운했고, 못해주는 것을 뻔히 알며 자꾸만 요구하는 나를 그들도 불편해하는 듯했다.


어설픈 대화는 서로의 감정만 더 상하게 만들기에 요즘은 자주 연락을 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그 위기를 모면하 있다.


어디서부터 그렇게 잘못된 것일까?

이 모든 사태를 코로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옳을까?


코로나 포비아로 나는 친정을 잃어버렸다.





늘 정직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편이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길 원하는 내 방식에 어쩌면 문제가 있는 건 아가 싶은 생각도 든다.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느끼는 것은 정말 큰 스트레스이다. 특히 명확한 이유를 모를 때는 말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지나치게 솔직했던 나의 모습들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크나큰 피로로 다가갔을지 모르겠다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난다.


직했던 건 언제나 나 혼자였던 건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더더욱 서글프다.



관계 앞에 솔직해지지 않고 피곤하면 회피해버리고 마는 것이 나이 드는 과정인 걸까?


나의 존재가 회피당해지고 있음을 깨닫는 시기가 내가 가장 많이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시기라니. 참 아이러니하다. 내가 힘들면 분명 나를 도와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몇 안되던 관계가 진짜로 다가온 위기 앞에서 두 사라져 버렸다.


"다들 그 시기는 힘들어. 그래도 다 괜찮아질 거야. 조금만 더 버텨."


흔해빠진 조언에 못내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그 속에 내가 너를 도와줄게.라는 의지가 빠져있기 때문이리라.


스스로 이겨내라는 위로 뒤에는 나는 너를 도와줄 수 없다는 뜻이 숨어있다는 것을 예전엔 미처 몰랐던 것 같다. 내가 실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던 시절에 들었을 땐 전혀 느끼지 못했던 숨은 뜻이다.





결혼 전 나는 참 많이 바빴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일정이 무리하게 조정해서라도 늘 달려가곤 했었다. 과중한 업무로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보람차 기꺼이 나를 베풀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겐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관계가 잘 없었. 가족도 친구도 직장도, 나는 늘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대했다.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 다 좋은 일들로 돌아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무엇이 남았나?


결국 모든 개인에겐 자신의 삶이 우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내가 여유가 있어야 타인을 돌아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뜻과 다른 모든 것을 아주 쉽게 배척해버린다는 것을 깨달은 나 자신이 남았다.


결국 나를 끝까지 보듬고 안아주는 것은 내가 새로이 일군 이 작은 가족 뿐임이 너무도 뚜렷이 아로새겨지는 즘이다.





지금의 우리 집은 조금 힘들지만 모든 것이 잘 풀리고 있다. 그 어렵다는 청약에 당첨되어 이사를 앞두고 있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천사 같은 두 아들이 있고, 안정적인 직장에 나름 가정적인 남편이 있다.


지금은 조금 고생스럽지만, 큰 이변이 없다면 우리는 중산층으로 안정적인 가정을 일궈나갈 수 있을 것이다. 좋은 환경에서 아이들은 자라날 것이고, 남편과 나도 점점 여유를 찾게 되겠지. 아마도 그렇게 될 것 같다.


어쩌면 우리 가정에게 가장 힘들 시기로 남을 요즘의 나를 나중의 여유로운 내가 돌이켜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지금의 이 서운함을 다 묻고 다시 웃으며 만날 수 있을까?



사람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시하며 평생을 살아온 나에게 요즘이 유독 들게 느껴지는 건, 그 관계들에 너무 큰 기대를 심어놓았기 때문인 것 같다.

기대가 없었다면 이렇게 속상하지도 않을 텐데.



아무런 기대가 없는 브런치의 댓글에, SNS에서의 소통에 소소하게 감동을 받고 위로를 얻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겠지. 나를 잘 모르는 타인들의 위로와 공감이 오히려 편안하고 고마운 이유 또한 같은 것이리.


타인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 주어진 숙제임을 잘 알겠지만, 예전의 진심으로 가득 찼던 내가 오늘따라 참 많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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