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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Aug 25. 2021

서로의 시간이 다르게 흐를 때

인생도 관계도 모두 타이밍



결혼 전 만났던 인연들에 대해선 묻어두고 지내는 편이지만 가끔 생각나는 누군가가 있다.


졸업도 취업도 빨리빨리 해버린 나와, 군대도 졸업도 가장 늦은 편이었던 그는 사회인 8년 차와 1년 차로 만나게 되었었다.

고작 한 살 차이었던 우리는 많은 것들에 공통점이 있어 정말 잘 맞는 듯했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가 보내온 시간의 차이가 너무 크게 다가왔었다.


나에겐 지겨워져 버린 것들이 그에겐 새로운 것이었고, 내가 걱정하는 눈앞의 미래는 그에겐 까마득 해 현실성이 없는 구름과 같았다.


많은 것들이 맞아떨어져 참 좋았지만, 결정적으로 우리의 시간서로 다르게 흐르고 있었기에 결국엔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둘째를 낳고 한참 바쁘게 키우던 즈음 그의 결혼 소식이 들려왔다. 금 늦었구나 싶은 그의 결혼 소식에 그래도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도 가장이 되고, 또 아빠가 되어 또 다른 느낌의 하루들을 보내게 되겠지. 그와 같은 시간대를 살아온 누군가를 만나 함께 하루들을 살아내겠지.


우리가 헤어진 후의 시간 속에서도 또 각자의 시간은 저마다의 속도로 흘렀었나 보다.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그와 나의 시간은 전혀 좁혀지지 않았기에 그의 또 다른 시작을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었다.


여전히 내가 그보다 조금 먼저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어쩐지 안도이 들도 했다.


삶이란 다 이런 거구나 싶어서 말이다.





결혼과 육아가 선택인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 인기 있는 선택지는 아닌 듯 하지만 말이다.  


결혼을 선택했고, 육아를 선택한 나에게는 똑같은 선택지를 고르고 살아가는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다.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비슷한 것들을 사고 비슷한 것들을 고민하며 서로에게 의지가 되기도 하는 친구들 말이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결코 친해지지 못했을 법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나 역시 마찬가지의 존재일 것이다.


서로가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지만,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공통점 하나로 이토록 쉽게 가까워질 수 있는 인간관계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들과 나는 같은 육아 시간대를 살아내는 중이었다. 슷하게 아이를 키우고 학교엘 보내고 또 졸업을 시키며 황혼에 접어들겠지. 아이들 얼른 키우고 같이 여행이나 다니자며 먼 미래를 함께 꿈꾸는 것이 우리의 몇 안 되는 낙이다. 과연 그 약속이 지켜질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와 동시에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친구들과 멀어졌다. 육아의 길로 접어들지 않은 친구와도 마찬가지다.


아이 때문에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고, 그 시간들이 길어지다 보니 연락마저도 뜸해졌다. 서로가 어떤 하루를 살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하게 되고, 가끔 연락을 하더라도 기본 안부를 묻고 나면 할 말이 없어져 어쩐지 낯선 기분이 들었다. 서로에 대해 시시콜콜 다 알고 있던 예전의 관계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가끔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는 나에게 친구를 뺏아간 남편이 밉다 말하고,

아이를 아직 낳지 않은 친구는 나에게 친구를 뺏아간 아이들이 밉다고 말한다.


집으로 놀러 와 아이랑 같이 놀자고 하고,

아이들을 두고 혼자 밖에 나와 놀자고 한다.


서로 다른 선택지를 고른 우리들의 만남은 쉬이 성사되지 않는다.


그렇게 서로의 시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관계들이 점점 멀어지고 있는 듯 한 요즘이다.


나의 노력으로 이 관계를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기에 우리의 삶이 공유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아쉽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내 삶의 우선순위는 이미 많이 바뀌어 버렸니까.







결혼 전의 내 모습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조금 낯선 기분이 든다.


그때의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별것도 아니구나 싶기도 하다.


이렇게 아줌마가 되어버린 건가 싶고,

어쩐지 삭막해진 듯 한 나 자신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의 시간이 흐르고 흘러 곧 중년에 접어들게 된다는 것도, 아이들이 다 자라 더 이상 엄마를 찾게 되지 않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도, 언젠가 곧 다가올 나의 미래임이 실감이 난다.


꿈꾸던 예전의 내 모습보다 앞으로 나이 들어갈 나의 모습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대인가 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아이스커피를, 비 오는 서늘한 날씨를, 춥고 까만 밤을 좋아한다.


관계는 달라져도 나 자신은 그리 많이 달라지지 말길 바보며, 그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묵묵이 가는 수 밖에... 시원한 커피나 한 잔 더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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