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낮잠을 자는 평화로운 오후에 갑작스레 벨이 울렸다. 택배가 왔나 하고 화면을 들여다보니 처음 보는 낯선 아주머니가 서 계신다.
"누구세요?" 했더니 뭐라고 하는데 낮잠에서 깬 아기가 우는 바람에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부녀회나 관리사무소 쪽에서 뭐 사인을 받으러 왔을 거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문을 열었더니 대뜸 절에서 나왔다고 시주를 부탁한다. 어렸을 적 종종 엄마가 쌀을 나눠주는 것을 봤던 터라 '요즘 코로나 때문에 절도 먹고살기 힘든가 보네.'라고 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곤 쌀을 한주먹 담아 드렸다.
"아휴 젊은 사람이 이런 거 주는 거 드문데.. 집에 절에 다니시는 분이 계세요?"
"네. 엄마가 절에 다니세요. "
나일론 불교 신자인 엄마를 대충 들먹이곤 마무리하려 하는데 이 분은 절대 그럴 마음이 전혀 없으신 듯 다음 말을 자연스럽게 이어 나간다.
"덕이 많으시네요. 어머님의 덕이 딸에게도 오고 또 덕을 이렇게 베푸시니 자식들이 다 잘 풀릴 거예요. 집에 혹시 뱀띠, 소띠, 닭띠가 누가 있나요?"
"소띠랑 닭띠가 있어요."
"닭띠가 누구..? 이 집 닭띠가 복이 아주 많아요. 복을 타고났네."
"아 저희 큰 아들이요. 네 살이에요~"
나는 덥석 미끼를 물었고, 아주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술술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우리 집 닭띠는 아주 큰 복을 타고나서 사람이 잘 따르고 관운이 있어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다며 기분 좋은 이야기를 해 주신다. 그리고 이 집에 있는 소띠는 그릇이 아주 큰 사람이라 어딜 가나 인복이 따른다며 관상부터 사주까지 아주 훌륭하다고 부스스한 꼴의 아줌마를 추켜세우신다. 그리고 조상님들 여러 명이 우리 집을 굽어 살피시는데 급이 높은 분들이라 집안이 다 잘 풀릴 거라며, 아주 듣기 좋은 말만 계속 꺼내 주신다. 쌀 한 줌과 바꾸기엔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고는 올해 소띠 닭띠가 삼재니 초라도 하나 켜 두자며 다음 단계로 넘어가신다.
그렇구나. 초를 켜야 하는구나... 아차 싶은 마음과 함께 문을 열어 준 나 자신이 미련하게 느껴졌지만 이미 늦어버린걸. 여기까지 와서 매몰차게 아주머니를 돌려보낼 재간이 없어 집에 현금이 별로 없다는 궁색한 변명과 함께 지폐 한 장을 내밀었더니 흰 봉투에 돈을 넣고는 나와 남편, 아이들의 사주를 끼적이신다. 남편과 둘째 아들이 아주 사이가 좋을 거라는 덕담도 곁들이며 말이다.
마지막으로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말에 어쩐지 연락처까지는 알려주면 안 될 것 같아 그냥 이름만 올려달라고 하고는 어디 절에서 나오셨냐 여쭈었다.
"선불사라고 저기 먼 곳에 있는 절이에요. "
광주든 천안이든 가평이든 구체적인 지명을 들먹이셨음 더 좋았을 걸... 어딘지 모를 아주 먼 곳에 있을지 없을지 모를 선불사의 법당 안에 우리 가족의 안녕을 비는 초가 켜 질 것인지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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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이모 생각이 떠올랐다. 분당에서 다니던 직장이 갑자기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되어 회사 근처에 있던 이모집에서 일 년간 하숙을 했던 적이 있었다. 이모의 큰 딸인 언니는 같이 살고 있었고 아들은 지방 연구소에서 일을 하고 있어 방이 한 칸이 비었던 덕이다. 그리고 이모에게 오빠의 사주가 아주 좋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어느 날 지나가던 스님이 가게에 들어와 물을 한잔 청하며 이 집 아들의 사주가 너무 좋아 크게 성공할 것이라는 예언을 해 주었다는 내용이었는데 어쩐지 수십 년도 더 지났을 그때의 이야기가 나의 오늘과 같게 느껴진다. 우리 집 벨을 누른 건 스님이 아니라 곱게 차려입고 흰 마스크를 쓴 젊은 중년의 여성이라는 게 다르지만 말이다.
그 사주가 너무너무 좋다는 사촌오빠와 어쩌다 보니 근처에 살게 되어 요즘 꽤나 자주 만나고 있다. 오빠의 두 아이들이 입던 옷과 신발, 장난감을 물려받고, 오며 가며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함께 놀게 하느라 말이다.
오빠의 삶은 아주 좋아 보인다. 대기업에서 근무 중인 오빠와 제약회사 팀장인 언니, 그리고 두 아들이 함께 전원주택을 지어 살고 있는데 그 집은 천방지축인 우리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집이다. 장난감이 넘쳐나며 층간소음 걱정 없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큰 잔디밭도 있다. 거기에 넘치지는 않아도 부족함 없는 양가 어른들까지 더해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이는 오빠네를 보면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 같아 살짝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다. 부족함 없이 넉넉한 삶,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삶을 선사해주고 싶다 생각하면서 말이다.
사주가 너무너무 좋았던 오빠의 인생은 큰 문제 하나 없이 전반적으로 잘 풀려나갔다. 좋은 학교를 가고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와이프를 만나 멋진 아이들을 키우는 것. 아주 좋은 사주의 삶이란 이런 것일까?
어릴 땐 사주가 좋으면 정말 큰 사람이 된다 믿었다. 대기업의 사장이 된다거나, 국회의원이나 연예인처럼 이름만 대도 전 국민이 알게 되는 그런 일이 생기는 줄로만 알았다. 나 역시 사주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기에 삶에 대해 막연히 기대하며 살았던 것도 사실이다. 언젠간 유명해 지거나 부유해지겠지 하고 말이다.
사주 좋기로 소문난 사람이 또 한 명 더 있다. 손주의 이름을 지으러 시부모님이 오래 다닌 절의 노승을 찾아갔을 때 스님이 남편의 사주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보다 좋은 사주는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아빠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주 좋은 이름이라 지어주신 게 지금 큰 아이의 이름이다. 점수로 매겼을 때 100점 만점에 96점이라는 아주 좋은 사주의 남편은 지금 나와 함께 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평범하고 흔한듯한 이름으로 그렇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회사를 다니며 아주 평범하게 말이다.
사주가 너무너무 좋은 삶이 이런 것일까? 특별히 잘되는 건 없어도 큰 탈 하나 없는 삶. 그저 그런 평범하고 문제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사주 좋은 사람들의 특권인 걸까. 그저 가족이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요즘을 생각해보면 문득 삶에 대한 기대치가 나이를 먹을수록 소박해지는구나 싶기도 하다. 내가 나이를 먹어가긴 하는구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ㅡ
불쑥 나를 찾아왔던 그 미스터리 한 보살님은 나에게 곧 선몽이 찾아올 예정이니 꿈을 허투루 보지 마라며 떠나셨다. 오늘의 이 만남 자체가 큰 복이고 큰 인연이므로 쉬이 생각하면 안 된다 했다. 내 머릿속에 뜬구름을 띄운 채 현관문을 닫기가 무섭게 자다 깬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애매하게 문 앞에 서서 이야기를 듣던 그 긴 시간 동안 가만히 혼자 잘 놀던 아기가 갑자기 울다니. 정말 보살의 몸을 빌린 부처님이 다녀가신 걸까??라는 말 같지도 않은 상상을 하다 울어 젖히는 아기를 안아 올렸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쩐지 사기를 당한 듯하기도 하다. 절에서 나왔으면 스님이 나왔을 텐데 하고 말이다. 그냥 커피 사 먹은 셈 치고 촛값은 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