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나.

아줌마 애엄마 그리고 경단녀

by 황사공



예전에 같이 일을 했던 한 어르신에게 연락이 왔다. 얼굴 한 번 보자시며 아이 때문에 발이 묶인 나를 만나러 먼 우리 동네까지 찾아오시겠다고 한다. 거의 5년여 만의 연락이기에 부탁하실 게 있나 보다 싶었지만, 아직도 나를 잊지 않고 찾아주심에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매일 후줄근한 차림으로 유모차나 밀며 동네를 다니다가 급 미팅 일정이 잡히니 마음이 부산스럽다. 남편까지 덩달아 편히 만나고 오라고 반차까지 내고 아기를 봐준다 한다. 설레고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오랜만의 만남에 나섰다.



예전에 그분이 만들어 놓은 회사에서 초창기 멤버로 함께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직원이 30여 명 남짓이던 시절 입사를 해 300명이 넘는 걸 보고 퇴사를 했으니, 함께 쌓은 추억도 무척 많았다. 업무 분야가 다르다 보니 주로 회식자리에서 그분을 뵈었지만, 술자리에서 쌓은 추억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쌓여있을 정도로 함께 일 한 기간이 길었다. 회사가 커지면서 자연히 누군가는 정리되게 되고, 그렇게 우리는 함께 일군 회사를 비슷한 시기에 떠나 왔다. 그리고 각자 지내온 그 시간 동안 그분은 또 다른 회사를 키우고 계셨고, 나는 두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간단히 서로의 근황을 얘기하고 만남의 목적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셨다. 예상했던 대로 지금 하고 있는 사업에 내가 도울만한 부분이 있는데 함께 해 주지 않겠느냐 제안하신다.

사업의 방향에 대해서도 또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도 두서없이 장황한 대화를 하고 우리는 금세 헤어졌다. 아기를 두고 나온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던 탓이다.






복직을 꿈꾸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헤매고 있었고 아직 거기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받은 제안이라 상당히 고맙고도 또 부담스러웠다.

업계를 떠난 지 4년이 흘렀고, 그간 많이 바뀌었을 텐데 내가 다시 할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어서 오래도록 친하게 지낸 직장 동료들에게 연락을 해 보았다. 지금은 모두 예전과는 조금은 다른 곳에서 각자의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간만의 연락에 반가워할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과는 달리 어찌 조금 시큰둥해하는 기분이 들어 조금 마음이 상했다. 일이 바쁘다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음을 알기에 이해는 하지만 말이다.



"거기 가기엔 너의 능력치가 좀 아깝지 않아? 별론거 같은데..."


내 능력을 높게 평가해주는 듯하지만 뭔가 썩 맘에 드는 반응이 아니다.

그 반응이 반갑지 않은 것을 보니 어쩌면 그들에게 그 일을 해도 괜찮다는 용기를 얻고 싶었던 모양이다.


내가 제안받은 자리가 아주 좋은 자리는 아니었다. 코로나로 가장 타격을 많이 받은 업계이기에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하는 스타트업 회사의 미래가 위태로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을 것이다. 이런저런 업계의 나쁜 상황들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나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알던 시절의 동료들이 아니었다. 아니, 그들에게 내가 낯설었겠지. 처음 엄마로서의 세계에 들어오던 날에 느꼈던 낯섦이 이제 이 곳에서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내가 이렇게나 많이 변했구나 싶다.

묻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바쁘게 굴러가는 그들의 세상을 내가 잠시 멈추게 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지금의 내 위치, 애 엄마이고 아줌마이고 경단녀인 지금의 내 현실을 새삼스레 다시 깨닫는다.



다시 일을 할 수 있을지 남편과 상의를 했다. 재택근무 조건이긴 하지만 아이를 보면서 일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었다. 둘째는 곧 이유식도 시작을 해야 한다. 섣불리 하겠다고 했다가 이도 저도 안 되는 상황이 오는 것이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다. 남편 역시 몇 푼 안 되는 돈을 벌자고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은 반대라고 말한다.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는 우리 집에 맞벌이는 여전히 사치이다. 결국 답을 내지 못한 채 하루가 끝나버렸다.

누가 대신 고민해주고 답을 내주면 참 좋겠다 싶다.





지난주에 나는 가벼운 교통사고를 겪었다. 작은 아이를 태우고 큰 아이를 하원 시키다 아파트 입구에서 직진하는 차에 들이 받혔다. 나는 좌회전을 하는 중이었고 그 차는 직진을 하는 중이었는데, 내가 나온 골목길로 우회전해서 진입하는 차에 가려 직진차를 못 본 탓이었다. 운전경력 10년 만에 난 첫 교통사고가 하필 두 아이를 모두 태우고서라니... 차가 쿵 하고 받히는 순간 머리가 새하얗게 되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나는 거의 멈춤 상태의 서행 중이었던 터라 충격이 크지는 않았다. 아이들도 많이 놀라지 않았는지 울지도 않았다. 많이 주워들은 대로 일단 비상등을 켜고 내려 사고 현장과 차량 파손 부분 사진을 찍었다. 서로 보험사를 부르기로 하고 한쪽 끝으로 차들을 대서 보험사 직원을 기다렸다.


아이들은 멈춰진 차에 오래 타고 있지 않는다. 울고 보채는 애들을 차에 둘 수 없어 차에 있던 아기띠를 메고 작은애를 안았다. 그리고 큰 애도 카시트에서 꺼내 손을 잡고 같이 밖에 섰다.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구경하는 아저씨들이 몇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괜찮냐 묻지 않았다. 사람이 죽고 있었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다더니, 내가 겪고 보니 정말 너무도 차갑고 야박한 세상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자기 아이를 하원 하러 가는 상대방 차주의 지인도 우리 곁을 지나가며 말 한마디 걸지 않았다.


'저 어린애를 둘이나 태우고 부주의하게 사고나 내다니. 쯧쯧.'

'집에서 밥이나 하지 뭔 운전이야. 쯧쯧.'


차가운 주변의 시선에 괜한 피해의식이 스멀스멀 피어나 어쩐지 기가 죽는다.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이 나려는 걸 꾹 눌러 참았다. 아주 넓은 공간이었지만 우리만 동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부서진 차의 깜빡이 소리만 유독 크게 들려왔다.


낯선 세계에 툭 떨어진 이방인이 된 것만 같았던 그날의 내가, 찬 바람을 맞으며 아이 하나는 안고, 하나는 손을 잡고 서있던 그 날의 내가 밤마다 자꾸만 우두커니 솟아 나는 기분이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기분은 썩 유쾌하진 않다. 처음으로 나의 소속이 사라지고 직업에 무직/주부라고 체크하던 날, 소속감이 자존감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깨달았었다.

늘 사회로의 복귀를 꿈꾸지만 사회의 겉만 뱅뱅 돌뿐이고, 무엇이든 경제적인 일을 하고 싶어 주부의 삶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것이 경단녀의 숙명인 걸까? 그 어느 곳에도 정확히 소속하지 못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세상의 모든 것이 어렵고 낯설기만 하다. 신용카드를 만들지도 못하고 통장을 만들지도 못한다. 돈을 쓰면 애엄마가 남편 돈으로 팔자 좋다는 소리를 듣고, 돈을 벌면 애 키우면서 무슨 일을 한다고 그래 라고 한다.

세상은 출산과 육아를 권장하면서도 아이만 키우는 엄마에게 야박하기만 하다.


아이를 키우는 기간이 더 늘어나거나 키우는 아이가 더 늘어나면 마음이 달라질까?

어디에도 포함되지 못한 채 겉도는 엄마의 삶이 괜찮아 지기는 하는 걸까?

차라리 경제적 독립을 해 본 적이 없더라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애엄마로의 삶은 늘 수많은 물음만 던져주곤 했었는데, 그런 생활에도 익숙해져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런 부조리함들이 이번에 다시 떠올랐다.


내가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럼 지금 느끼는 이 억울함과 불공평함에 조금이라도 반박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내가 느끼는 이 모든 불편함은 내 머리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껏 내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아줌마들을 향했던 시선, 애엄마들을 향했던 지난날 나의 불편함들이 나에게로 돌아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꽂힌 것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애엄마가 되기 전엔 기차에서 떠드는 아이들을 미워했고, 평일 점심 유명 가게들을 가득 메운 여자들을 괄시했고, 아기가 아프다며 휴가를 내고 조퇴를 하는 직원들을 못 미더워했었다. 그때의 못난 나의 행동들이 지금의 나를 이토록 괴롭히고 있는 것이겠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그런 일들로 나는 조금 또 자랐겠지만, 어쩐지 선택 장애가 와 그 무엇도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듯하기도 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상한 경험들을 참 많이 한다. 마시라고 해서 먹었더니 커지고 먹으라고 해서 먹었더니 작아지기도 한다. 말도 안 되는 사람들을 만나고 말도 안 되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꿈이었다.


아줌마, 애 엄마, 그리고 경단녀가 살아가는 이상한 나라는 진짜로 내가 살아가야만 하는 나라이다.

누가 나에게 하나밖에 없는 선택지를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너무 이상하다 싶으면 꿈에서 깨어나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앨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