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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Jun 07. 2022

아이가 한글은 뗐나요?

우리 아이 공부 언제부터 시작해야 할까



큰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바쁜 아침에 길에 서 있던 웬 여성분이 느닷없이 질문을 한다.



"아이가 몇 살이에요?"


"6살이에요."


"아이가 한글은 뗐나요?"


"아직이요.."


"이제 한글 하셔야 하는 때 에요! 체계적인 커리큘럼으로.."


"아니요 괜찮습니다. 벌써 공부시키고 싶지 않아요."


"그럼 이거라도 꼭 읽어보시고 언제든 연락 주세요!"



그러고는 학습지 전단물을 나에게 들이민다. 아이 킥보드를 잡아끌고 부지런히 길을 가던 중이라 대충 가방에 밀어 넣고 아이를 마저 등원시켰다. 아이를 유치원에 들여보내고 나서 혹 그녀를 다시 마주칠까 싶어 먼길로 빙 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주머니에 구겨져 들어가 있는 유인물을 꺼내본다. 요즘의 나를 참 불편하게 만드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이 6살이 된 큰 아이의 공부이다.


주변에 있는 큰 아이 또래의 유치원생들은 대부분 학습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보통 5살부터 사교육을 시작한다더니 정말이었다. 학원이다 학습지다 밤늦게까지 숙제하느라 바쁘다는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짠 하면서도 혹 우리 아이가 너무 늦은 건 아닌가 싶어 조바심이 난다.


벌써부터 공부를 시켜야 하는 게 맞는 건가?


수없이 고민을 하며 이것저것 찾아봐도 내 결론은 "아직은 아닌 것 같아."로 끝이 난다. 그러다가도 큰 아이 친구가 또 뭘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금세 귀가 팔랑팔랑 조바심이 나고, 또 혼자 돌아앉아 '그래도 아닌 것 같아' 생각하는 일이 무한 반복되는 중이다.







아이가 5살이 되면 부모는 아이를 유치원으로 보낼지 계속 어린이집엘 보낼지 결정을 해야만 한다. 예전엔 둘 다 같은 곳인 줄 알았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 하다가 부모가 되고 나서야 그 차이를 알게 되었다. 어린이집은 보육 중심의 아이를 맡기면 돌봐주는 탁아소 개념의 기관이고 유치원은 이제 조금 자란 아이에게 교육이라는 걸 시작하는 조금 더 상위 기관이라는 것을 말이다.


실제로 발육이 조금 느리고 낯가림이 심하고 성장이 조금 느린 아이들은 5세까지 어린이집에 다니는 것을 고수한다. 똑같은 5살이라도 유치원에서는 더 많은 친구들이 있고 지켜야만 하는 규칙이 늘어나며 보육교사가 아닌 담임 선생님에게서 개별적 관심을 어린이집에서만큼 받지 못한 채 지내야 한다. 처음으로 달라진 환경에서 아이는 더 빨리 성장하지만, 따라가지 못할 것이 우려되면 늦게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유치원을 보내기로 결심을 하면 또 고민할 것이 많아진다.


어떤 유치원엘 보낼 것인가?


집 가까운 곳이 최고지만 유치원은 주소지 따라 우선 배정되는 시스템이 아니다. 희망 유치원에 지원을 하고 지원자가 많을 경우 추첨을 통해 등록 여부가 결정된다. 3 지망까지 다 떨어질 경우엔 부득이하게 어린이집이나 영어유치원, 놀이 학교 등의 대안을 찾아야만 한다. 내 아이를 맡길 곳조차 사실 내 의지대로 결정할 수가 없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게 씁쓸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하라는 대로 해야지.


유치원은 나름 저마다의 특성화 프로그램이 있다. 영어를 중점적으로 가리키는 곳, 놀이와 체험 위주로 커리큘럼이 짜인 곳, 종교적 특성을 갖춘 곳 등 다 똑같아 보이지만 저마다 조금씩 교육과정이 다르고, 엄마들은 내 아이에게 잘 맞을 곳을 찾아내 입학설명회도 가 보고 상담도 해 가며 어디로 보낼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5살이 된 3월, 각각 유치원엘 입학해 서로 다른 길을 가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그저 놀기만 하던 아이들은 조금씩 달라진다. 엄마들의 프로필 사진이 아이가 그린 그림, 아이가 써 온 편지 등으로 바뀌기 시작하고, 그걸 보다 보면 '아니 벌써 이런 걸 해?'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아직 숫자도 제대로 못 쓰는 내 아이가 너무 뒤처지는 것 같고, 아무것도 안 하는 내가 게으른 부모로 보이기도 한다. 부랴부랴 맘 카페 검색도 해보고 체험 프로그램을 신청해보기도 한다.


그 때문인 것 같다. 5살부터 아이들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생기는 것이 말이다.



하원 시간 유치원 앞은 아이를 데리러 온 보호자들에 태권도, 미술학원, 음악학원, 영어학원 등 각각의 학원 담당 선생님들과 차량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각자 가야 할 곳으로 이동해 타야 할 차에 옮겨 타는 아이들을 보면 어쩐지 안쓰러운 마음도 든다. 아직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엄마가 가라고 하니까 움직이는 착한 아이들일 뿐이니 말이다. 대부분이 맞벌이를 하는 요즘 시대 분위기가 또 한 몫하는 거겠지. 학원을 보내지 않으면 보모를 구해야 하니 효용성 측면에서 학원이 우선시 될 수밖에 없다. 아직은 엄마인 내가 등 하원을 시킬 수 있는 우리 집의 환경이 그나마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5살의 아이에게 교육이라는 걸 시키는 것이 맞는 걸까?


생활습관도 인성도 아직 제대로 형성이 되지 않은 5살의 아이들은 배워야만 하는 것이 너무도 많다. 어른에게 인사하는 법, 혼자 식사하는 법, 친구나 동생에게 양보하는 법,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설명하는 법 등 아이가 온전한 한 사람 분의 역할을 하기 위한 기본 소양을 알려줘야 하는 이 시기에 아이들은 영어를, 한글을, 산수를 함께 배운다. 이 모든 걸 동시에 할 만큼 아이의 뇌 용량이 충분히 크긴 한 걸까?


10월생이라 또래보다 늘 늦던 내 아이를 보면, 무엇인가를 가리킨다는 것 특히 영어, 한글, 수학 등을 가리킨다는 것은 아직도 너무 이른 것만 같다. 하지만 이 작은 아이들이 벌써부터 영어를 읽고 한글을 쓰고 셈을 한다. 6살인 큰 아이의 유치원 내 열댓 명이 되는 아이들 중 한글을 잘 쓰지 못하는 아이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하니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빠른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한 때는 나도 조바심이 나 5살이던 큰 아이를 영어교육을 시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게 얼마나 심각한 실수인지를 자각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두 달을 채 못 채우고 끝낸 영어학습의 후유증으로 아이는 영어 싫어 공부 싫어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그 뒤로 나는 아이에게 공부하잔 말을 거의 하지 않는 중이다.


가만히 내버려 두고 하고 싶은 걸 하며 자라나는 6세의 큰 아이는 이제야 수의 개념을 익혀 순서에 맞춰 나열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본인의 이름과 동생의 이름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높은 확률로 이름을 뒤집어쓰긴 하지만 어찌 됐건 본인의 이름을 읽고 쓸 수 있다. 3살 때 그린다는 머리 몸통 팔다리로 구성된 사람을 아직도 그리고 있고 튀어나가지 않고 색칠하기도 이제야 그럭저럭 해낸다.


조금 늦으면 뭐 어떤가? 앞으로 평생 해야 될 공부가 산더미일 텐데.



6세 아이가 그려낸 변신로봇과 이름






6살의 나는 그저 먹고 놀고 자고를 반복했던 것 같다. 놀잇감을 찾아온 동네를 돌아다니고, 언니 오빠 동네 친구들과 별의별 놀이를 다 만들어했었다. 책을 읽지도 공부를 하지도 않았지만 한글도 셈도 남들보다 빨리 터득했다. 다양한 경험을 하며 놀리다 보면 학습은 자연히 따라온다고 생각하는 게 어쩌면 내 경험으로 인한 나의 오만한 판단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쩐지 아직은 그럴 것이라 믿고 싶다.


틈이 날 때마다 아이와 뒷산을 오르고, 작은 개울에서 도롱뇽을 잡고, 채집망을 들고 온 동네를 쏘다니며 벌레와 꽃과 나무를 관찰하는 하루들. 그 시간들 속에서 세상이 신기해 반짝이는 아이의 두 눈을 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매일매일 느끼며, 아이와 함께 푸르른 나날을 보내고 있다.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해 본인이 해야 할 일을 결정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지금의 내가 신경 쓰고 있는 내 아이의 육아이다.


공부를 조금 못해도 괜찮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 어차피 한국에서 영어 공부해 봐야 원어민 흉내도 내기 어렵다. 한 달에 수십 나가야 하는 학원비를 모아 저 멀리 해외여행이나 한번 나가게 해 주자 싶은 게 지금 우리의 마음이다.

그러고 보면 참 다행이다. 많은 것이 다른 남편과 내가 그나마 아이의 교육에 관해선 비슷한 관점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아이의 이런 자유도 오래가진 못할 것 같다. 요즘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한글은 다 떼고 보내야 한다고 하니 늦어도 내년 이맘때에는 아이는 한글을 붙잡고 나는 아이를 붙잡고 씨름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나면 이제 공부는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는 나날이 이어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공부를 시키는 것은 조금 가혹한 것만 같이 마음이 진정이 된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행복한 6세의 어린이가 되면 그걸로 충분해. 오늘도 흔들리는 나 자신에게 넌지시 되뇌어본다. 아침에 받은 달고나 사탕이나 하원 한 아이에게 먹으라고 주어야지.


오늘은 하원한 아이랑 또 뭘 하고 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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