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인리스 무지개 빨대

기념일 그리고 지구를 지키는 작은 실천

by 황사공





큰 아이가 첫 돌을 맞던 2018년, 아직 니니네를 시작하기 한참 전의 일이다.


돌 답례품을 뭘로 준비하면 좋을지 고민이 시작됐다.

가족이 많지도 않았고, 거창한 파티를 할 계획도 없었다.

대신 가격대가 조금 있더라도 받은 사람이 '진짜 잘 쓰는 물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고민 끝에 내가 고른 건 USB 포트가 달린 정사각형 멀티탭이었다.

그때만 해도 USB 내장형 멀티탭은 지금처럼 흔한 제품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어느 집이든 멀티탭은 늘 모자라기 마련이니 이건 분명 유용하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디자인도 꽤 신중하게 골랐다. 에너지 효율 1등급 제품으로 고르고, 거기에 짧은 문구를 새겼다.

너는 나의 에너지

날짜와 아이 이름도 함께 넣었다.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에게 그 멀티탭을 건넸고, 이후로 놀러 가거나 모임에서 우연히 그 멀티탭을 마주칠 때마다 괜히 마음이 뿌듯해졌다. 내가 고른 물건이 누군가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모습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 4년 뒤.
둘째 아이의 돌 답례품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같은 고민이 시작됐다.
실용적이고, 시간이 지나도 계속 쓰이고, 내 돈으로는 선뜻 사 지지 않는 물건.


큰 아이 때 멀티탭 답례품의 임팩트가 컸던 탓인지, 주변에서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보조배터리, 화장실용 방수 시계, 소금 그라인더 유리병… 이것저것 후보를 올려두고 한참을 고민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딱 붙잡히는 건 없었다.


그러다 문득 '빨대'가 떠올랐다.
한창 음료를 즐기기 시작한 큰 아이는 하루에도 몇 개씩 플라스틱 빨대를 쓰고 버렸다.

쓰는 순간엔 편하지만, 버릴 때마다 마음 한쪽이 불편했다.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괜찮을 플라스틱 빨대, 그리고 그 빨대를 청결하게 유지하기 위해 써야 하는 비닐까지.

너무나도 편리했지만 너무나도 불필요한 낭비라는 생각을 매 번 했었고, '이걸 다회용으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 시절만 해도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 종이 빨대와 플라스틱 빨대 정도였다.

환경을 생각하는 움직임으로 종이 빨대로 트렌드가 바뀌고 있었지만, 나는 영 마음이 가지 않았다.

종이 특유의 질감과 향이 음료 맛을 살짝 흐리는 것 같았달까.


찾아보니 생각보다 선택지는 다양했다.
다회용 스테인리스 빨대, 실리콘 빨대, 유리 빨대, 접이식 빨대까지.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티타늄 코팅이 된 스테인리스 빨대였다. 색감이 다채로워 더 특별해 보였다.

문제는 국내에 없어서 해외에서 주문해야 했다는 것. 그리고 망설임 없이 빨대를 주문했다.


기다린 지 2주 만에 받은 빨대는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다만 너무 밋밋했다.

그래서 또 마음이 움직였다.

국내의 금속 각인 업체를 수소문해 빨대를 보내고, 둘째 아이의 돌을 기념하는 문구를 새겼다.


OUR LAST STRAW,

NO MORE PLASTIC,

SAVE THE EARTH.


빨대마다 각인과 아이의 이름, 생일을 새겨 넣고 세척솔과 함께 박스에 담아 포장해 스티커를 붙였다.

그리고 소중한 우리 주변의 지인들에게로 보내어졌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이 빨대가 플라스틱을 조금 덜어내는 작은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까지 함께 담아서 말이다.


우리 집에서도 아직 5년이 넘은 이 스테인리스 빨대가 쓰이고 있다. 빨대를 선물 받은 지인의 집에 놀러 가 우리 둘 째의 이름이 박힌 빨대를 보면 그보다 뿌듯할 수 없었다.


답례품은 결국, '물건'이면서 동시에 '마음'이라 생각했다.

아무도 하지 않는 돌 답례품을 만들어 내는 것, 누군가에게는 유난스러운 엄마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나름 세상을 지키는 작은 실천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준비했던 돌 답례품들은

그저 한번 주고 말 돌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잘 쓰이는 선물을 고르고 싶었던 마음,

누군가의 생활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던 마음,

거기에 환경까지 지키고자 하는 나의 욕심을 담아낸 첫 결과물들이었던 것 같다.





그 시절, 나는 한창 육아스타그램에 푹 빠져 있었다.
돌 답례품으로 준비한 이 빨대를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생각보다 반응이 훨씬 뜨거웠다.


“어디서 샀어?”, “나도 갖고 싶다”는 메시지가 연달아 왔다.


온라인이었지만, 매일 육아 고민을 나누던 고마운 친구들이 많았다.
나를 그저 애둘엄마로만 알고 있는 모르는 사람들이 나의 일상에 관심을 가져주고, 내 고민을 나눠주는 경험을 한참 하던 시절이었다.

나름 그 시절의 베프였던 온라인 친구들.

그래서 그들에게도 빨대를 보내주고 싶었는데, 문제는 수량이었다.

가족과 지인들 수량만큼만 만들었으니 부족한 게 당연했다.


어떻게 해야 그들이 서운하지 않게 빨대를 나눠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벤트를 열기로 했다.


그렇게 내 첫 인스타그램 이벤트가, 이 빨대 덕분에 열리게 됐다.

이벤트 게시물에는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렸다.
좋은 덕담과 축하를 남겨준 인친들이 너무 많아서, 나는 결국 빨대를 추가로 더 주문해 나눠주고 말았다.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더 주고 싶었다.


며칠 뒤, 빨대를 받았다는 후기들이 하나둘 올라왔다.

“너무 예쁘다”, “진짜 잘 쓰이겠다”,

“이제 플라스틱 빨대 안 써도 되겠다.”


그 문장들을 보는 순간, 내가 원했던 게 정확히 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고심해 골라온 물건들이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경험을 주었다는 보람,

그리고 내가 전달하고 싶었던 의미가 그대로 전달되었다는 뿌듯함.

그때의 벅찬 뿌듯함은, 꽤 오래 남았다.


그래서 니니네 스위트를 열고 온라인 스토어를 만들었을 때,
나는 이 스테인리스 빨대를 꼭 팔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야심 차게 상품 등록을 마쳤지만, 역시 내 의지만 너무 앞섰던 모양이다.


나와 내 지인에게는 완벽한 물건이었던 그 빨대가,

값을 지불해야 하는 상품으로 등록이 되고 나니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그 몇 년 새 스테인리스 빨대는 다이소만 가도 쉽게 살 수 있는 '보편적인 살림템'이 되어버렸다.

다이소에 가면 두 개를 훨씬 싼 금액에 살 수 있었으니 말 다했지 뭐.

무지개색 빨대는 그리 흔하진 않지만, 성능이 비슷한 제품을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더 비싸게 사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플리마켓에 들고나가면 예쁘다 하며 집어가는 손님들이 종종 있었다.

그런데 온라인에서는 정말 어려웠다. 클릭도, 장바구니도, 결제도 좀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상품선정은 또 처참한 실패를 맛보고야 말았다.


하지만 팔리지 않는다고 상품을 내리고 싶진 않았다.
팔리진 않는다고 해서 물건의 의미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이 빨대는 내게 판매와 무관한 의미가 있는 제품이었다.


빨대를 찾아 헤매고 가져와서 물건을 확인하고 쓸모를 인정받았던 그 시간들을 나는 결코 하찮게 여길 수가 없었다.


그때의 경험은 어떤 식으로든 나를 바꿔놓은 게 분명하다.
모르는 사람들과 물건을 나누며 내 선택을 인정받던 경험,
댓글로 덕담을 건네던 얼굴 없는 사람들,
“좋다”는 한마디가 내 안에서 오래 남았던 순간들.

모르는 사람들과 물건을 나누며 내 선택을 인정받던 경험.

온라인에서 만난 낯선 누군가에게도 내 마음이 닿을 수 있다는 경험.


아마도 그 일이 있었기에 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물건을 팔 수 있으리라는 용기를 얻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 빨대를 스토어에서 내려버리는 순간, 내가 하고 싶었던 방향도 같이 내려놓게 될 것 같았다.

팔리지 않아도, 어떤 제품은 가게에 상징처럼 남아 있어야 한다.


이 무지개 빨대는 니니네가 어떤 마음으로 물건을 고르는지,

어떤 태도로 가게를 이어가는지 보여주는 작은 표지판 같은 존재다.


그래서 지금도 사이트 맨 아래, 조용한 자리에서 여전히 버티고 있다.


판매되는 것보다 이벤트로 뿌려지는 게 더 많은 나의 무지개빨대지만,

그럼에도 장사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진 물건이기에 여전히 가장 소중한 물건 중 하나이다.







장사를 하면서 내가 늘 붙잡고 있는 고민이 하나 있다. 바로 친환경이다.

하지만 친환경이라는 말로 고객의 지갑을 열게 하는 건 정말 어려웠다.
특히 나처럼 메인이 친환경이 아닌, 사탕가게가 곁다리로 덧붙이는 친환경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람들은 달콤한 걸 사러 왔다가, 달콤한 것만 들고 돌아간다.

그게 당연한 일임을 이제는 잘 안다.


그래도 나는 계속 대체 가능한 것들을 떠올린다.
꼭 구매로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대신 누군가의 하루가 아주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는 물건,
무심코 하던 선택을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물건, 그런 친환경을 늘 궁리한다.


그래서 니니네의 생일이 있는 9월이면, 나는 작은 선물을 만든다.
그리고 거기에 꼭, 쓸데없는 듯한 수고를 하나 더 얹는다.
로고를 박고, 이미지를 새겨 니니네의 흔적을 남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 과정이 나에겐 기념이다.

아이의 돌 답례품을 준비하는 것처럼 말이다.


1주년엔 스테인리스 텀블러.
2주년엔 파우치.
3주년엔 에코백.


일상에서 누구나 흔히 쓰는 물건들이다.

하지만 쓸모를 조금 더 고민해 신중히 골라 니니네를 입혀 특별하게 만든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나는 이런 별거 아닌 것들을 좋아한다.
일상에서 가장 오래 남는 건, 특별할 할 것 없는 이런 평범한 것들이니까.


그리고 나는 그 물건들을 판매하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이 소소한 행동에 값을 매기는 순간,

오히려 그 행동의 가치가 가벼워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상품이 아니라 나눔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기념일에만 할 수 있는 다정하고 따뜻한 방식으로.


아무도 크게 챙겨주지 않는 작은 가게의 기념일.
그렇지만 나에게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정말 고마운 날이다.
그 고마움을 어딘가에 조금이라도 돌려주고 싶어서, 나는 해마다 작게 실천하는 중이다.


지구를 바꾸겠다는 거창한 선언은 못 하겠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조금씩 여유가 있을 때 행동해 볼 뿐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말하듯,
이 작은 행성에도 고맙다 조용히 인사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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