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의 일상에 들어가는 패키징

그냥 포장이 아닌 또 하나의 브랜드 전략

by 황사공




스레드에는 참 많은 자영업자들이 있다.

내가 자영업자라 그런 피드만 더 보이는 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다양한 사장님들이 있어서 늘 많은 것을 배우고 또 위로를 얻는다.


어느 날 스레드를 보다가

장사가 너무 안 돼 힘들다는 한 소품샵 사장님의 푸념을 보았다.


때마침 큰 아이의 생일 선물이 필요했던 터라

나는 그 사장님네 소품샵에서 아이 선물을 이것저것 담았다.

국내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일본 캐릭터 봉제인형과 피규어들이라

나도 모르게 기대가 커졌다.


구매했다고 스레드에 살짝 인사도 남기고 물건을 기다리면서는

'친구들 것까지 조금 더 살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뭐, 받아보고 좋으면 또 사면되지 하고 마음을 접어두었다.


이틀 뒤, 핑크색 예쁜 택배 박스가 도착했다.

로고가 박힌 핑크색 박스를 본 순간 기대가 확 올라갔다.


'아 이사장님은 박스까지 만드셨네. 제대로 하시는구나!'


댓글로 이야기를 몇 번 나눈 터라 친밀감이 높았던 탓에 괜히 내가 만든 박스처럼 기대감이 더 커졌다.

그리고 박스를 열어본 순간, 기대했던 마음이 정말로 와르르 무너졌다.



그 예쁘던 핑크색 박스 안에는 내가 주문한 피규어들이 있었다.


문제는, 그 피규어들이 얇디얇은 기본 비닐 포장에만 담긴 채
박스 안에서 마구잡이로 굴러다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각각을 다시 예쁘게 재포장해 주길 바란 건 아니었다.
깨질 만큼 약한 제품도 아니었고, 추가 포장이 꼭 필요해 보이는 물건들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싼 가격이 아닌 피규어들이 박스 안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모습은

내가 선물로 신중히 골라 담았던 물건들의 가치마저 덩달아 떨어뜨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분이 상했다.
물건은 내가 고른 그대로의 상품이었지만,

선물을 준비하던 내 설레는 마음 자체가 무시당한 듯 한 마음이 들어

물건조차 좋아 보이지 않았다.


박스 안에는 스친 사장님이 특별히 넣어준 듯한 스티커 뭉치도 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첫인상이 무너진 뒤라 그 스티커를 발견했을 때는
이상하게도 크게 고맙지 않았다.


물건이 별로였던 건 아니다.

다만 받는 순간의 경험이 선물을 선물답지 않게 만들어버렸다.


사실 그 사장님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포장재를 낭비하지 않고 지구를 지키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아무렇게나 담겨 배송된 물건은

상품의 가치를 지켜주지 못하는 무신경함으로 느껴졌다.

친구들 선물을 더 사려고 했던 마음은 사라졌고,

그렇게 그 사장님은 재구매의 기회를 놓쳐 버렸다.


고객이 사고자 하는 건 그저 단순한 물건,

그냥 사탕뿐만이 아닐 수도 있다.


선물을 위한 경험,

내 마음을 알아주는 배려처럼 느껴지는 세심한 것들.

그런 것들이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재구매로 연결된다는 것을 그날 깨달았다.


구매하는 순간부터 받는 순간까지 이어지는 일관성 있는 배려.

그게 상품을 담는 패키징이다.


그냥 단순히 포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패키징, 특히 상품 판매를 위해 설계된 커머셜 패키징은

어쩌면 상품의 가치를 더 올려주기도 하고,

한 순간에 떨어뜨리기도 하는 아주 중요한 단계임이 분명하다.






내가 파는 물건의 패키징을 고민할 때는 최소 아래 다섯 가지 요소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1. 가치를 지키는가?

패키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상품을 보호하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게, 눌리지 않게, 흐트러지지 않게 상품을 지켜내야 한다.

상품이 가진 가치를 고객이 열어보기 직전까지 유지해 주는 것.

그게 안 되는 패키징은 물건이 아무리 좋아도 그 가치를 떨어뜨린다.


2. 목적이 보이는가?

이 패키지가 선물용인지, 집에 두고 먹는 간식용인지, 휴대하는 용도인지 한 번에 읽혀야 한다.

같은 상품이라도 목적에 따라 고객이 기대하는 경험은 완전히 달라진다.

선물인데 선물처럼 보이지 않거나,

편하게 두고 먹을 간식인데 너무 부담스럽게 꾸며져 있으면

고객은 구매를 망설인다.


3. 손이 편한가?

열기 어렵고 닫기 어렵고, 보관하기 어렵고 들고 다니기 불편하면

패키징은 예뻐도 금방 외면받는다.

특히 반복구매를 만들고 싶다면 익숙한 사용이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리필이 된다거나, 재보관이 편하거나, 휴대하기 좋거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패키지가 결국 살아남는다.


4. 브랜드가 한눈에 남는가?

패키징은 고객이 브랜드를 기억하는 표면이다.

로고가 크고 화려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작아도 괜찮다.

다만 딱 한 가지라도 "아! 이건 그 브랜드 거였지!"라는 요소가 있어야 한다.

색이든 라벨의 방식이든 문장의 말투든.

브랜드 자체의 정체성을 담아 두어야 오래 살아남는 브랜드로 성장한다.


5. 다시 사고 싶게 만드는가?

패키징은 한번 구매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다음 구매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야 한다.

받았을 때의 기분, 선물했을 때의 반응, 사용했을 때의 만족도까지.

제품에 대한 만족도 자체도 중요하지만 패키징만으로도 어느 정도 이 경험을 충족시킬 수 있다.




결국 커머셜 패키징은 상품을 더 멋지게 보이게 하는 장치가 아니라

고객의 다음 행동을 유도하는 전략으로 생각해야 한다.


사실 별거 아닌 듯 보이지만 초보 사장님들은

패키징 때문에 꽤나 골머리를 앓는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하신 거예요?"

"이런 상자, 포장, 스티커를 어떻게 다 생각하셨어요?"

"이런 재료들을 모아 놓은 사이트가 있나요?"


남의 완성된, 멋들어진 상품들만 보다 보면

그저 대단해 보이고

내가 해보려 하면 어렵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완벽한 패키징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내 상품에 맞는 패키징을 찾기 위해 그저 막연하게


'어떻게 해야 완벽한 상품이 될까?'

부터 시작한다면 답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이 질문이다.


이 물건은 어떤 사람에게 가서 어떤 용도로 쓰일 것인가?


예를 들어 천연 수세미를 판매하는 사장님이 있다.

천연 수세미는 모양도 울퉁불퉁해 포장부터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일단 이 수세미가 판매될 용도부터 고민을 해보자.


1. 내가 직접 사용

2. 행사 기념품

3. 집들이 선물


이렇게 용도가 먼저 나누어지면 패키징 고민 단계는 한층 단순해진다.


심플하게 OPP 투명 비닐 포장에 에코라벨링을 붙일 것인지,

크라프트 포장재로 감싸서 마끈으로 리본 마무리 할 것 인지,

앞치마와 함께 박스 포장 할 것인지.


용도가 정해지고 나면 패키징에 대한 고민은 한결 심플해진다.


거기에 친환경을 강조하여 그린/크라프트 콘셉트로 갈 것인지,

모던함을 강조하여 화이트/블랙으로 갈 것인지,

봄 시즌에 맞춰 핑크/연두로 갈 것인 지 등의


컬러-톤까지 맞추고 나면 부자재를 찾는 과정이 짧아진다.


그 뒤에는? 내 제품의 사이즈에 맞는 OPP봉투, 포장박스, 택배박스 등을 준비하면 되는 것이다.






처음에 파우치 캔디 하나로 시작했던 니니네 스위트는

자일리톨로 만든 수제사탕이라는 핵심 가치는 유지한 채

목적에 따라 변경한 패키징으로 상품의 차별화를 주고 있다.


휴대하기 쉬운 파우치캔디부터

선물하기 좋은 유리병사탕,

거기에 조금 더 심플하고 부담 없이 선물 가능한 큐브캔디,

집에 놓고 먹기 좋은 리필팩,

여럿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좋은 미니봉지사탕까지.


막대사탕도 동일하다.

3개입 미니 답례품부터,

7개가 들어간 레인보우 막대사탕,

개별밀봉포장된 21개의 대용량 막대사탕에,

파티나 행사에 놓고 먹기 좋은 파티팩 70개입까지.


그렇게 한 종류의 캔디는 대여섯 가지의 패키징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상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종류가 이렇게나 많아진 이유는 단순하다.


고객이 원하는 장면이 달랐고,

그 장면에 맞는 저마다의 경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목적에 따라 그에 걸맞은 상품으로 바꿔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것.

물건을 판매하는 사장이라면 결국 늘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한 번 팔고 마는 상품을 원하지 않는다.
오래오래 고객의 일상에 남아 자연스럽게 재구매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이 구매한 사람에게도,
선물 받은 누군가에게도 무리 없이 닿을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부지런히 고객의 일상 가까이를 따라간다.
패키징은 결국 고객의 일상을 놓치지 않기 위한 우리의 방식이니 말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패키징은 없다.

고객의 반응을 보고 사용을 관찰해 가면서 더 나은 방향으로 고쳐가면 된다.

그렇게 새로운 패키지를 탄생시켜도 되고,

기존 패키지를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해도 좋다.


그저 패키징을 조금씩 바꿨을 뿐일지라도,

그 변화는 브랜드의 성장을 만들어 낸다.


고객의 일상에 조금씩 조금씩 자리를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패키징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분명한 이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