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Burgos
아침이 밝았다. 간밤에 일층에서 새벽까지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과 코를 고는 같은 방 순례자 덕에 잠을 설쳤다. 인나 언니는 6시 무렵부터 일어나서 나설 준비를 하더니 깜깜한 어둠 속에서 먼저 출발했다.
나는 동이 슬슬 터 오기 시작하는 일곱 시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은 방을 쓴 순례자들 대부분이 출발하고 없다. 이 방에서 나는 혼자 남았지만 까뜨린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외롭지 않았다.
일층으로 내려갔다. 역시나 까뜨린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2km 정도 가면 나오는 마을의 레스토랑에서 간단한 아침을 먹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숙소 밖에서 어제 만나지 못했던 후미야와 케샤를 만났다. 직전 마을에서 묵었던 그들은 이곳에서 아침을 먹으려 하고 있었다. 일곱 시에 출발한 그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부지런한 순례자들이다.
날씨가 꽤나 흐리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듯하다.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다음 마을로 향했다.
2km 정도의 거리를 걷는 데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어제 많이 걸은 덕에 오늘은 20km만 걸어도 됨에 감사하며 우리는 다음 마을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열댓 명의 순례자들이 그곳에서 비를 피하며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 후미야와 함께 있지 않았던 켄따루가 혼자 비를 피해 레스토랑 앞 놀이터에서 빵을 먹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함께 차를 마시자고 청하고, 그에게 따뜻한 핫초코 한잔을 사줬다. 학생의 신분으로 여행을 하기에 그는 늘 넉넉하지 않았기에 항상 최대한으로 아꼈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그는 오늘도 절약 또 절약을 하고 있었다. 어쩐지 우울해 보이는 그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니 그냥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예의 바른 일본인 답게 핫초코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 무슨 일이냐고 묻고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어리고 과묵한 우리의 친구는 그저 웃으며 괜찮다 말한다. 그리고는 혼자 있고 싶노라며 먼저 길을 나섰다. 늘 후미야와 함께 걷던 켄따루 였는데 후미야가 케샤와 함께 걷게 되면서 자연히 혼자 걷게 된 듯했다.
나와 다른 그였지만, 어쩐지 그는 관계의 허무함 혹은 인생의 외로움에 대해 느끼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혼자 두는 것이 지금의 그에게는 최고의 약이리라 생각하며, 저녁에 만나게 되면 잘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조금의 빵과 커피를 여유롭게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섰다. 마을을 벗어나니 살짝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비로 인해 미끄러운 흙길에 돌까지 많아 걷는 것이 조금 힘들다. 내 뒤를 까뜨린이 따르고 있었다. 그녀와 나, 오로지 둘 뿐. 레스토랑에서 만났던 그 순례자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우리밖에 보이지 않는다.
산 정상에 이르니, 알 수 없는 신기한 동그라미들이 돌멩이 들로 그려져 있었다. 미스터리 서클 같은 건가? 대체 누가 이렇게 반듯한 원들을 만들어 놓은 걸까? 마치 커다란 나무의 나이테 위에 서 있는 듯, 산 정상은 한없이 평평했고, 원은 반듯했다.
산 정상이라 믿기엔 너무 넓고 편편했던 정상을 지나자 내리막길이 나타났다. 내리막길은 꽤나 가팔랐고, 그 옆으로는 해바라기 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우중충한 날씨가 해바라기의 노랑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땅덩어리가 좁은 대한민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광활함, 그리고 노란 해바라기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의 낯섦이 새삼스럽게 다시 느껴진다.
부르고스는 큰 도시였다. 우리가 카미노를 걸을 때 대도시를 다섯 개 지나게 되는데, 그중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가 부르고스, 즉 우리가 오늘 갈 곳 이었다. 대도시로 가까워지고 있음은 길에서 바로 느낄 수 있다. 도로가 늘 가까이에 있고, 차들이 많아진다. 대부분 아스팔트 길을 걸어야 했고, 도시의 매연을 고스란히 맡을 수밖에 없다. 공항을 지나쳤고, 공장지대도 지나쳤다. 한동안 숲 속과 산길만 걷던 터라 이런 낯선 환경이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고, 자주 보이는 스페인 도시민들이 두려웠으며, 긴 발걸음은 지루했다.
까뜨린과 나는 그저 걸었다. 땅만 보고 걸었다. 걸어도 걸어도 줄어들지 않는 시간과 거리에 놀라가면서, 우리 말고 다른 순례자가 전혀 보이지 않음에 의아해하면서, 그리고 낯선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스페니쉬들의 시선을 느껴가며 함께임에 다시 한번 감사했다. 외모가 너무도 다른 두 명의 이방인은 그렇게 서로에게 큰 위안이 되고 있었다.
아무리 걸어도 쉴 만한 곳이 나오지 않았고, 허기지고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어떤 공장 부지 근처의 쌓여있는 벽돌 위에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오늘따라 순례자들이 너무도 보이지 않아 우리가 잘못 가고 있는 건 아닐까 조바심이 들었다. 하지만 늘 우리는 조그만 카미노 화살표를 찾을 수 있었고, 오직 화살표에 의지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복잡한 도시에 진입했고, 많은 사람들과 많은 건물들을 지나 우리의 목적지인 시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걸었던 카미노 중 가장 단조롭고 또 힘들었던 코스가 아니었나 싶다.
알베르게에 도착해보니 우리 친구들 몇몇이 보였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오늘은 알렉산더의 마지막 날이었기에 우리는 모두 이 곳 알베르게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다. 행여나 잘못 찾아왔을까 꽤나 걱정을 했는데, 모두 만나게 되어 정말 다행이었다.
침대를 배정받고 호스피탈 레로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올라갔다. 최근에 리모델링 한 크고 깨끗한 알베르게였다. 무려 오층짜리 알베르게에는 수백 개의 침대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만큼의 순례자도 있었다. 침대를 배정받고 보니, 내 침대 아래에 눈에 익은 가방이 보였다. 루이스와 헤어진 뒤로 만날 수 없었던 산드라를 그렇게 그곳에서 다시 만났다. 우리는 한참을 끌어안고 반가워했으며, 서로에게 따뜻한 눈빛을 보냈다. 늘 그렇듯 말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모두가 알렉산더의 송별회를 위해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다. 7시에 알베르게 로비에서 다 같이 만나기로 약속하고 까뜨린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물집을 위한 약들이 필요했고, 우리에겐 내일 먹을 식량도 필요했다. 그 날은 또 하필 토요일이라 문을 연 약국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겨우 문을 연 약국을 찾아 약들을 사고, 문을 연 슈퍼마켓을 찾아 내일 먹을 식량도 샀다. 산드라가 내일부터 우리와 함께 걷기를 원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의 몫까지 넉넉하게 샀다.
부르고스 대 성당으로 유명한 이 큰 도시는, 골목길 구석구석이 하나의 예술품 같이 아름답게 정리되어 있었다. 오래된 도시에 걸맞은 잘 다듬어진 건물들과 반들반들해진 돌길들은 이 길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관광을 위해 이 곳을 왔다면 꽤나 많은 볼거리가 있어 열심히 돌아다녔겠지만, 순례자의 입장에서 지나가는 마을로 들른 우리에게는 그렇게 돌아다닐 여력이 없었다. 우리의 다리는 더 이상의 걷기를 허락하지 않았고,
우리는 골목 사이 계단에 앉아 그저 스페인의 저물어 가는 시간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되어 알베르게로 향했다. 그곳의 로비에서는 벌써 우리 친구들이 와인을 한잔 마시며 떠들고 있었다. 오늘 우리는 두 명의 새로운 친구를 얻게 되었다. 폴란드에서 온 토마스, 그리고 슬로바키아에서 온 다니엘라. 토마스는 폴란드에서 온 케샤가 오늘 길에서 만난 친구였다. 그리고 다니엘라는 숙소에서 까뜨린과 내가 만난 친구였다. 토마스는 이 곳을 혼자 왔고, 다니엘라는 함께 있던 친구를 어제 보내고 오늘부터 혼자가 되었다고 했다.
같은 길을 걷는 이유 하나로도 친구가 되기엔 충분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고, 알려고 애쓰지 않았으며, 그저 서로 지금 함께 있음에 감사했다.
모이고 보니 일행이 꽤나 많다. 아마 이 즈음의 카미노에서는 가장 큰 그룹이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는 늘 저녁마다 모였으며, 와인을 마셨고 신나 있었다. 일부 순례자들은 이 젊고 씨끄러운 순례자들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을 것이다. 다른 모든 순례자들이 우리 중 한 명을 보면 늘 너의 그 친구들은 어디 갔냐고, 모두 같이 온 거냐고 물어볼 정도였으니, 우리가 얼마나 소란스러웠을지 짐작이 되지 않는가?
나는 이런 소란스러움을 조금 피하고 싶었다. 루이스가 그리웠다. 그가 없는 일행은 나에게 그저 무의미한 소란스러움이었다. 하지만 사흘 뒤에 있을 안토넬로와 히데오 상의 생일 때 까지는 무조건 함께 하겠노라 모두 약속을 한 터라 그때까지만 이들과 함께 하겠노라 혼자 마음을 먹곤 했다. 너무 고맙고 좋은 친구들이지만 지금 내게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안토넬로의 저녁을 위한 식당을 찾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댓 명의 순례자들이 한 번에 저녁을 먹을 만한 큰 레스토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중 누구도 스페인어를 할 줄 몰랐다. 그나마 스페인어와 가까운 이탈리아에서 온 안토넬로가 이리저리 물어가며 레스토랑을 찾았다.
극적으로 한 레스토랑을 찾아 순례자 메뉴를 먹었다. 스페인 음식은 보통 세트 메뉴로 구성이 되어 있어 첫 번째 접시, 두 번째 접시, 디저트 이런 식으로 따로 나온다. 애피타이저, 메인디쉬, 디저트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인당 하나씩 제공되는 메뉴이기에 각각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시키면 된다. 인원이 많다 보니 주문을 하는 것 또한 엄청 힘들었다. 안토넬로가 우리 모두의 주문을 대표해서 얘기했고, 우리는 자신의 메뉴만 말한 채 각자 이야기하느라 바빴다. 안토넬로는 정말 착한 이탈리아노이다.
안토넬로를 좋아하는 까뜨린에게 그의 옆에 찰싹 같이 붙어있는 프렌치 아나이스는 꼴불견이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알렉산더와 함께 오늘 떠날 예정이었기 때문에 까뜨린은 아나이즈에게 오늘만큼은 관대하게 굴기로 마음먹었다.
유럽에 있는 많은 국가의 사람들은 프랑스인을 싫어했다. 그리고 독일인도. 한국, 중국, 일본을 놓고 보았을 때 우리가 서로를 싫어하는 것처럼 유럽에도 국가 간의 감정이라는 것이 있는 듯했다. 예전에 꽤나 많은 나라들을 정복해 악명 높았던 프랑스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프렌치 특유의 거만함이 있다고 하며 프렌치를 멀리하는 사람도 많았다. 내가 처음 만났던 파리지앵 페르난도와는 다르게 아나이즈는 나에게도 뭔가가 비호감이었다. 다 같이 먹는 이런 저녁에서도 자신의 속도대로 밥을 먹고 주문을 하는 그녀는 우아하고 기품 있는 프랑스인이었다.
첫 번째 접시를 끝내고 두 번째 접시가 서빙되는데, 하나의 음식이 주인을 찾지 못했다. 안토넬로와 종업원은 이 것을 시킨 사람이 누구냐고 한참을 찾아 헤맸고, 꿋꿋이 샐러드를 먹던 아나이즈는 그저 침묵을 지키더니, 자신만 두 번째 접시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식하고 나서야
"난 아직 샐러드를 다 먹지 않았어요. 조금 기다려주세요."
라고 말해 모두를 기겁하게 했다. 사실 기겁한 건 나, 까뜨린, 케샤, 안토넬로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다들 그녀의 엄청난 이기심에 깜짝 놀랐으리. 다만 그것을 표현한 것이 우리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럽인들의 습성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나에게 까뜨린과 케샤는 말해줬다. 저게 바로 프렌치라고 말이다.
어떻게 보면 유치한 지역감정일 수도 있는데, 이런 것은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 역시 그녀의 행동을 편들어 줄 수 없었다.
저녁을 거의 끝내갈 즈음, 굴 리가 한 가지 황당한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이 각각 자신의 국가(nation song)를 부르자는 것이었다. 까뜨린은 기겁했고, 굴리는 이미 노래를 시작했다. 굴 리의 뒤를 이어 이탈리아노 넷이서 함께 노래를 불렀고, 일본, 폴란드, 홀란드, 프랑스, 뉴질랜드까지 노래를 마쳤다. 남은 것은 독일과 한국. 이미 가게 안의 모든 사람들은 우리에게 집중을 한 상태였고, 모두가 코리아를 외치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곳에서 애국가를 노래하게 될 줄이야! 평소의 나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나는 한국에서 온 한 순례자가 아니고 한국인의 대표로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노래를 하지 않으면 나라를 지키지 못한 기분이 들 것만 같아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그 넓던 레스토랑이 이토록 조용했던가?
아마 노래를 부르던 나에게만 이 곳이 너무도 조용하고 내 목소리는 너무도 크게 느껴졌으리. 알 수 없는 감정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북받쳐 올라왔다. 얼굴은 화끈거렸고, 손은 긴장감에 떨려왔다. 노래를 다 부르고 와인을 한잔 들이켰다. 박수를 쳐주는 그들에게 미소를 지어주고 나니 뭔가 가슴이 뿌듯해져 왔다.
나는 한국인이었고, 스페인 한 도시의 레스토랑에서 국가를 불렀다. 갑자기 엄청난 애국자가 된 기분이었다. 올림픽에 출전해서 애국가를 부르는 국가대표의 기분이 이러하지 않을까? 외국을 나가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났다. 적어도 오늘 이 자리에서 만큼은, 나는 애국자 일 것이다.
까뜨린은 결국 국가를 모른다는 이유로 노래 부르기를 거부했다. 독일의 국가를 듣지 못해 아쉬웠지만 본인이 싫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녀를 제외한 우리는 각각 애국자가 되어 몹시 들떠있는 저녁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알렉산더의 마지막 밤을 신나게 보내고 있었다. 알렉산더는 우리 모두와 함께 사진을 찍었고, 우리는 아직 어린 그에게 삶의 축복이 가득 담긴 기도를 보냈다.
만남과 이별, 이제는 꽤나 익숙해졌다. 이 길 위에서 만난 인연에 대해 미련을 갖지 말아야 함을 배우고 있었고,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했고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됨에 감사해야 함을 배우고 있었다. 아마 18살의 그에게도 이번 카미노는 큰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이런 곳을 경험한다는 것이 부러웠다. 앞으로 펼쳐질 그의 인생에서 이번 경험이 아주 큰 영향을 미칠 것임은 분명해 보였다. 그의 젊음이 부럽다.
레스토랑을 나온 우리는 다 같이 기념사진을 찍고, 누군가가 들고 나타난 맥주를 어둠 속에서 나눠 마셨다. 다 비슷한 또래, 모국어가 따로 있지만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우리들이 이렇게 함께 낯설디 낯선 스페인의 밤을 보내고 있었다. 이들을 만난 게 됨에, 이들과 소통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낮의 고통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인 저녁에는 사라진다. 지독 시리 혼자인 낮과 지구 모두가 하나가 되는 밤, 늘 혼자이고 또 함께인 곳, 그곳이 바로 카미노, 이 기적 같은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