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리네 민박을 보면서 다시 생각해본 꿈
100일간의 유럽여행을 시작했던 27살, 첫 도착지인 영국에서 한인민박에 묵었었습니다.
영국도 한인민박도 처음이라 어리둥절해하던 나에게 한국인 민박집 사장님은 정말 타지에서 만난 친구만큼 큰 힘이 되었었습니다. 심지어 나이도 저보다 몇 살 많지 않았던 그 젊은 사장님의 매력에 푹 빠져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민박집 운영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대기업을 다니다 때려치우고 영국으로 유학을 왔던 사장님은, 열 평도 안 되는 좁디좁은 플랫(오피스텔)을 임대하는 대신 살짝 외곽에 있는 큰 집을 빌리기로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혼자 지내기 적적한 터라 남는 방들을 렌트해주기 시작하면서 민박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한인민박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살인적인 영국 물가에서도 학비를 내고 생활비를 쓰고도 이전 직장에서 받던 월급만큼을 번다던 그 언니 사장님의 생활이 너무 멋져 보였고, 하마터면 그대로 눌러앉아 민박집 스탭이 될 뻔도 했었습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민박집 사장님에 대한 막연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
여행 중 몇 번의 한인민박과 호스텔, 게스트하우스를 더 경험하고, 저마다의 장단점을 느끼며 한국으로 돌아왔고, 민박업에 대한 동경은 잠시 접은 채 일상생활로 빠르게 돌아갔었습니다.
그 뒤로 에어비앤비 등의 숙박 방식이 유행처럼 번져나갔고, 게스트하우스도 붐이 일면서 개인 숙박업은 어느덧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사업의 형태로 발전해 있었습니다.
최근 <효리네 민박>을 보다가 보니 예전에 꾸었던 꿈이 절로 떠오릅니다. 시골 한적한 곳이나 해외 어딘가에서 민박집을 운영해 보면 어떨까 했던 꿈.
이효리와 이상순의 알콩달콩 소소한 일상을 엿보고 있자면 마치 내 것인 양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집니다. 물론 나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삶이겠지만, 그들과 손님들의 모습에서 사랑과 꿈이 느껴져 내 마음도 두근대는 것 같습니다. 민박업이 가지고 있는 미덕을(가장 좋은 쪽의 미덕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이 프로그램 덕에 예전에 잠시 꾸었던 꿈을 다시금 끄집어 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현실 도피를 위한 이상적인 꿈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깨끗한 시트를 갈아주고 낯선 곳에 대한 꿈과 설렘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하룻밤 편히 쉬어가는 곳을 만들어 내고 싶었던 마음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듯했습니다.
내가 가보지 못한 낯선 곳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삶을 알아가는 그런 삶. 매일매일 달라지는 사람들이기에 정을 주기도 어렵고 또 금세 잊히는 허무함도 있겠지만, 다양한 여행자들의 꿈을 들어주고 또 거들어주는 일은 정말 멋진 일인 것만 같았습니다.
내가 만들어 놓은 한두 평짜리 작은 방과 그 속의 더 작은 침대 매트리스 위에서 꾸어질 수많은 꿈들을 생각하면 그 꿈이 내 꿈인 양 설레는 마음이 듭니다. 그때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꼭 민박집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꿈을 응원해주는 일, 혹은 누군가에게 꿈을 만들어주는 일은 민박집이 아니어도 많지 않을까요? 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을 앞으로 해 보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꿈꿀 수 있는 포근한 매트리스가 되는 일, 그렇게 잊었던 꿈을 찾아내어 다시 꾸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