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COMPLETE

화를 부르는 그 이름, 상사

어딘가 이상해져 버린 직장생활

by 지니




왜 그토록 화를 내면서 직장을 다녀야 했을까?



직장인이 된 모습을 꿈꾸던 시절이 너무 까마득해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확실한 건 이런 직장생활을 기대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든든하고 신뢰 가는 상사와 다정한 선배, 열정 넘치는 동기들과 다 같이 의기투합하여 실적을 올리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는 그런 모습을 꿈꾸었던 것 같다. 아마 다들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꿈깨라. 그런 직장은 없다.

(아니 드물다... 아마 드물걸..?)



보고 자료 작성과 상사를 설득시키는 일이 전체 업무의 팔 할을 차지하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상사의 마음을 읽어내서 그의 입맛에 맞는 제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주요 업무가 된다.

(그럴 거면 내가 너지 왜 나는 나이고 너는 너인가?)


똑같은 일을 해도 상사의 기분에 따라 피드백이 달라지고, 그 피드백에 따라 울고 웃는.. 그게 바로 직장인이다. 그 마저도 업무에 국한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데, 업무와 무관한 나의 아주 개인적인 부분들에 대해서도 배려 없는 피드백이 쏟아질 때, 간신히 붙들고 있던 멘탈은 안드로메다로 떠나기 십상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나 자신을 온전히 지켜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일이 있었다.


전 날, 새로 발표해야 하는 기획안 마감작업으로 새벽 2시까지 야근을 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무것도 모르는 본부장이 갑작스러운 회식을 제안했고, 회사 내 정치도 중요한 팀장은 팀원 전원을 데리고 회식에 참석했다. 당연히 전 날 새벽까지 일을 하고 또 새벽같이 출근 한 우리들은 술이 들어갈 리가 만무했다.

가식적인 웃음과 형식적인 아부가 난무하는 시끌벅적한 회식 분위기가 즐거울 리도 없고, 그저 빨리 끝나서 집에나 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고기나 주워 먹고 있을 때... 웃다 만 팀장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니들 다 동태 눈까리 같아. 똑바로 안 해? 어? "


...


(동태들은 집에 가고 싶습니다만... )


새벽까지 일을 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지만, 팀장에겐 본부장에게 점수를 조금이라도 더 따는 것이 직원의 피로보다 중요했다. 물론 이해는 한다마는... 동태 눈까리는 좀 심하지 않은가?


어떤 눈이 동태 눈까리 같은 것인지.. 동태처럼 보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그저 바짝 메마른 한 마리의 동태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이런 인신공격은 뭐라 대꾸할 수 조차 없다. 뭐라고 대꾸할 것인가?


저 동태 아닌데요..???.... 흠... 화가 나지만 별수 없다. 후우... 그저 한숨이나 쉬어 본다.




업무적으로도 피곤한 일은 매우 많다.


미래를 예측하는 예상 시뮬레이션 발표가 있을 땐, 어지간해서는 화를 참기가 어렵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내가 역술인 됐지 왜 직장인 하나?)


하지만 우리는 주어진 문제를 풀어야만 하기에, 최선을 다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예측 한 시나리오를 구상해낸다. 예측 시나리오를 뒷받침할 만한 충분한 근거 자료를 마련하고 회의 때 쏟아질 질문들에 대비한다. 하지만 회의실 분위기 조차 예측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5분 앞을 모르는데 5개월 앞을 어찌 안담... 하...)


"음. 너무 주관적인 예측 아닙니까? "

"그래서 ~~ 개년 자료를 분석했고 ~~ 기준에 따라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 기준이 애매한 것 같은데... 그런 기준을 잡은 이유는 뭔가요?"

(!ㅇㄹ@##%%^ㅀ소&^&*&*ㅁㅇㄹ#$%#$^%^ㅓㅗㄴㅇ허)


"예전에 그랬다고 해서 올해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있나요?"

(@#ㄲ$#%^%&^*&*&^*$#%@#$#!#$#^**(ㅗㅎ!ㅎㅃ$쏘ㅛ#)


"경쟁 상황을 너무 자의적으로 해석하신 것 같은데.. 경쟁사가 우리보다 못한다고 판단한 근거는 뭐죠? "

(!@#%#$%#%^%$&#$%^&&*%^ㄲㅎㄹ언ㅇㄹ오ㅛㅓㅇㄹㄲ뚀헗ㅉㄸㅇ호ㅓㅓㅓㅏ)



뭐 이런 식의 한심한 질의응답을 하다 보면 정말 어이없기도 하고 뭐 하는 건가 싶고 그렇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가 싶고 이럴 거면 과제를 왜 낸 건가 싶고.. 문제를 풀잔 건지 말잔 건지 의아해지면서 자괴감이 들기 십상이다. 게다가 이런 회의는 쉬이 끝나지 않는다. 몇 시간을 쓸모없는 논쟁으로 허비하고 나서 '다음 주에 다시 하죠.'로 마무리되어 버리곤 한다.



모두가 괴로운 이런 날엔 끝나고 또 한잔을 해야 하고, 한잔을 하면서 욕을 하다 보면 또 화가 나고, 그러면 또 과음을 하고 다음날 숙취로 고생하고... 이런 게 회사 생활의 과반을 넘는 현실이 우울하고 괴로웠다.





물론 모두의 회사생활이 이런 건 아니라고 믿는다. 결코 그러해서는 안된다. 나의 특수한 환경과 리더십 모르는 나의 못난 상사들이 만들어 낸 아주 작은 한 조직의 상황일 뿐, 일반적이거나 보편적이진 않을 거라 믿는다.

(설마 모두가 이렇게 회사를 다니는 건 아니겠지...)



내가 마지막으로 3년간 일을 했던 부서는 여러모로 최악이었다. 개인의 희생은 당연했고, 성과는 모두 팀장의 몫이었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를 일들이 갑작스레 쏟아지기 일쑤였고, 충분한 공감을 형성하지 않은 채 업무는 지시되어졌다. 나름 대기업으로 구분되는 회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충격적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서 반박하거나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고, 지친 직원들이 그저 회사를 떠날 뿐이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 일부 몰지각한 상사들의 무례한 언행들로 수없이 많은 직원들이 상처를 받고 직장생활에 회의감을 느끼며 힘들게 들어온 회사를 증오하게 되어버린다는 것에 있다. 직장생활이 간신히 견디어 내는 하루하루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조차 마지막에는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냈다.


회사를 떠나게 되면서 남겨진 동료들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었지만,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듣고자 하는 사람이 없는데 말하고자 하는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어지간해서는 화가 나지 않는 일주일여를 보내면서, 그토록 쉽게 부르르 떨고 화를 내던 지난 삼 년간의 시간이 너무도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리고 여전히 매 순간 화를 내며 지내고 있는 나의 전 직장 동료들을 볼 때면 더더욱 그러했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이라 믿고 서로를 위로하며 버텨내던 시간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두 부질없는 것이었다. 사람은 쉬이 변하지 않고 권력을 맛본 자는 권력에 취하기 십상이라 점점 더 자신의 뒤는 돌아보지 않음을 간과했다. 허황된 긍정으로 버텨내던 시간들은 폭풍우가 몰아칠 때마다 한없이 나약해져만 갔다.


과연 이 조직에서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끝까지 버텨서 우리가 얻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정신과 상담까지 받아가며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존경받는 리더십에 대한 글들은 참 많이 떠돌아다닌다. 하나같이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내용들이다. 그런 리더는 아직 만나본 일이 없다. 실제 회사에는 얼마나 거지 같은 상사들이 많은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다. 이상한 사람도 너무 많고 이해가 안 되는 사람도 너무 많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동화에 나오는 일들이 어쩌면 현실과 비슷한 것 같다. 때론 제멋대로인 데다가 엉망진창인 진짜 세상이 동화보다 더 이상해 보인다. 동화에만 있을 것 같던 여왕도 어쩌면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른다. 소리 지르고 목을 자르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던 그런 여왕. 그리고 그 여왕 아래에서 쩔쩔매는 카드병정들. 동화 속에서는 이상하게만 느껴지던 세상이 어쩐지 그리 낯설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앨리스가 해피엔딩이었던가?


아 모든 것이 꿈이었지. 맞아 모든 것은 꿈이었었다.



앨리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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