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COMPLETE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첫 직장, 그리고 두 번째 퇴사

by 지니



2008년 2월부터 지금까지.

한 회사에서 3개의 부서를 옮겨 다니며 일한 지 9년 하고도 5개월.

스물넷부터 서른셋까지의 내 청춘을 오롯이 내맡겼던 회사를 떠나 어제부터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출근을 하지 않던 첫 월요일 아침, 억수 같은 비가 쏟아져 내려 기분이 좋았습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축축하고 뜨거운 만원 지하철에서 낯선 맨살들과 부닥치지 않고 집에서 편하게 누워있는다는 우월감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가볍게 아침을 먹고 집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봅니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지만 푸르른 녹음이 흐린 하늘 아래에서 빛을 발하고 있어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 저는 비를 참 좋아했었습니다.

여유를 잃고 아등바등 살아가느라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왜 그토록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야만 했을까요?





퇴사를 하던 마지막 날까지 저는 야근을 했습니다.

상사의 터무니없는 요구에 시달렸고, 상반기 결산 보고 자료를 만들었으며, 남겨질 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끝까지 제 몫을 해냈습니다.


회사에서도 그만두는 자에 대한 관용 따위는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내가 빠질 빈 자리을 채울 대체 인력 따윈 없으니 말입니다. 직원은 많지만 제가 떠나기 전 저의 빈자리를 채울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면 전 아직 없어진 게 아니니까요. 마지막까지 저는 제가 하던 일을 끝내 야만 했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만 같지만 뭐가 잘못되었다 말하기 어렵습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그토록 일을 해 주면서도 왜 우리는 이렇게 눈치를 보고 전전긍긍하면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한국의 기업문화가 많이 달라졌다고 하는데, 왜 우리 주변에선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까요?


나만 그런 걸까요? 내 상사만 이상한 걸까요?



조직생활에 대한 수없이 많은 질문과 회의감만 남긴 채 회사를 떠나 왔습니다. 첫 번째 퇴사 때 느끼지 못했던 허무함과 상실감이 두 번째 퇴사에선 밀려옵니다.


유럽.jpg 2011년의 유럽여행 계획



2011년 5월 마지막 날, 첫 번째 퇴사를 했습니다.


그날도 억수 같은 장대비가 내렸습니다. 직장동료들이 모여 큰 환송회를 열어줬고, 쏟아지는 비만큼이나 많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젊었던 저는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고, 회사에서는 저의 모든 뜻을 존중해 주었습니다.

100일간의 유럽 일주를 계획 후 실천하기 위해 회사를 떠나던 그 날,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과 두려움 그리고 직장동료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내 마음은 소용돌이쳤습니다. 한 명 한 명 동료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못해준 것 같아 아쉬웠고 나만 욕심부리는 것 같아 미안했습니다.


젊었던 저는 그렇게 첫 퇴사를 했었습니다. 알코올의 힘을 빌려 모두를 부퉁 켜 안고 엉엉 운 덕에 퉁퉁 부운 눈으로 다음날을 보냈고 장면 장면 전 날 밤의 일이 떠오를 때마다 민망함에 이불 킥을 해댔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진심은 회사에 남았고 저를 오래도록 많이들 기억해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 덕에 다시 입사를 할 수도 있었고요.


그때의 나는 왜 지금은 없는 걸까요?

같은 회사를 그만두는데 왜 이다지도 마음이 다른 걸까요?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했음에도 직장생활이 하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나의 문제일까요?



DSC02437.JPG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지만...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라이프가 유행입니다.


욜로를 꿈꾸며 당당히 회사를 때려치웠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고 다니긴 하지만 사실 그것을 꿈꿀만한 여유조차 최근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시간들, 직장 내에서 무거워진 책임만큼 내 삶을 돌이켜 볼 사치 따윈 없었던 최근의 나날들.. 전혀 내가 꿈꾸거나 바랬던 삶의 모습이 아닌 그 시간들을 뒤로하고 이제야 한 템포 쉬어보려 합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복잡하고 어렵기만 한 지금을 생각해보면, 인생의 방향을 잃고 내쫒기듯 살아온 시간이 너무 길었던 건 아닌가 싶습니다.


수많은 고민과 함께 시작된 백수 라이프. 분명 홀가분하고 행복하지만 그저 현실 도피를 했다는 안도감일 뿐, 문제가 해결되었다 싶은 만족감이 없는 이유는 뭘까요?


직장 생활이 다 이런 걸까요?

한 직장만 다녀서 제가 잘 모르는 걸까요?



한번 돌이켜 생각해봐야겠습니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인지. 이대로 두어도 괜찮은 것인지.


하나씩 얽힌 매듭을 풀어내다 보면 다시 올바른 줄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내 안에 들어와 있는 나쁜 생각들을 모두 끄집어 내 저 멀리 보내버릴 수 있도록, 다시 온전히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먼저 가져야겠습니다. 그동안 놓고 지냈던 글쓰기도 다시 시작해야겠습니다.


모두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시작을 할 모든 준비가 되어 있는 행복한 백수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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