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로 살아간다는 것
그런 밤이 있다.
몸은 몹시 고단한데 잠에 들지 못하는 밤.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새로 이사한 집 화장실 공사가 이른 시간부터 진행될 예정이었고, 낮에는 강연 참석, 저녁에는 친구와의 만남까지 예정되어 있었다.
늘 비슷하게 반복되던 요 최근의 나날들과 비교해보면 무척 복잡하고 바쁜 하루임이 틀림없었다.
모든 일정을 소화해내고 엄청난 피로감을 느끼며 자리에 일찍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대신 오늘 만났던 타인들의 삶이 자꾸만 내 머릿속을 기웃거린다.
쉽게 타인의 삶을 평가하던 시간들이 있었다. 내 삶만 유별나고 특별하다 믿던 나날들. 남의 것은 우스워보였고 쉬워 보였고 한심해 보였다.
그리고 오늘, 내가 살아왔던 그 나날들과 지금의 나의 나날들 또한 유별난 게 하나 없음이 어쩐지 마음속 깊이 다가온다. 왜 일까, 왜 하필 오늘일까.
여자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산다는 것.
나 자신으로 살아가던 지난 모든 시간들과는 확연히 다른 삶인 것은 틀림없는 듯하다.
나 하나만 잘하고 나 하나만 행복하면 된다 믿었던 지난 시간들. 그리고 한 생명을 품고 있는 지금은 인류의 절반이 걸어온 '여자'라는 길 위에서 어쩐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는 듯하다.
결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지나온 시간들. 그리고 아직 보이지 않는 앞으로 가야 할 시간들.
어쩌면 나 자신조차 '여자'로써 살아가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대접받으려 열심히 달려왔던 지난 시간들 속에서 '여자'라는 존재에 대해 낮게 평가하며 살아왔던 것은 아닌가?
갑작스레 모두가 당연하다 여기는 '여자'의 삶을 떠안게 되고 보니 반성하게 된다. 나 자신이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로써의 삶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왔던 지난 나날들에 대해서.
'여자'로써, '엄마'로써 살아가야 할 날들이 곧 시작될 예정이다. 수백 명의 예비 엄마들과 함께 했던 오늘의 공간과 감각은 어쩐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나와 비슷한 시간을 겪고 있을 듯한 요즘의 예비엄마들이 모두 한 '사람'으로써의 자신을 잃지 않길.
나 역시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온 나날들이 있음을, 아직도 꿈이 있음을 결코 잊지 않길.
나보다 앞서 이 길을 걸어간 나의 엄마, 언니, 그리고 친구들이 떠오르는 밤이다.
그리고 그렇게 오늘의 밤이 깊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