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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Sep 26. 2020

호사다마와 새옹지마

10주간의 교육과 함께 찾아온 디스크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한국에서의 준비 과정을 예쁘게 마무리해야 '그리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동화책 마무리가 될 텐데, 아쉽게도 인생은 항상 가장 행복한 때 찬 물을 끼얹곤 한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행복하기만 해야 할 이 기간에 각종 마가 낀 일들도 동시에 찾아왔다. 몇 년간 몸을 잔뜩 긴장시킨 채 일을 하다가 일터에서 벗어나자 긴장이 풀리면서 몸이 아우성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발목 인대가 늘어나 몇 주간 목발을 짚고 생활했고, 잇몸병으로 치과 신세도 졌다.



가장 심각했던 것은 허리였다. 중국어 공부에 매진한 지 한 4주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극심한 허리 통증이 찾아왔다. 회사에서 일할 때도 자세 문제로 허리가 종종 아팠기에 이번에도 근육통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고 물리치료 및 근육이완제/소염진통제로 넘겨보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이번엔 약을 먹어도 통증이 가시질 않았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소견이 좋지 않았는지 MRI를 찍어보자고 하셨고, 결국 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파열은 아니고 돌출이었기 때문에 일단 보존치료 쪽으로 정해졌지만 걱정이 한 움큼이었다. MRI 결과를 받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미 왼쪽 허벅지까지 방사통이 내려오는 좌골신경통이 시작되고 있었고, 이 몸을 이끌고 1년간 외국에서 혼자 생활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동네 병원부터 서울에 유명하다는 정형외과까지 주말마다 병원을 찾아다녔고, 신경주사라는 것도 처음 맞아봤다. 중국어에 '病急乱投医(병이 급하면 아무 의원이나 찾아가 본다)'는 표현이 있는데, 그 말이 딱 맞았다. 이곳저곳 다녀도 좌골신경통과 허리의 불편한 느낌은 없어지질 않아 매일매일 진통제와 소염제를 먹었다. 그러다 한 약사분께서 이런 조언을 해주셨다.


    "우리 아들도 비슷한 증상이 있어서 그러는데, 통증 때문에 힘든 날에만 소염진통제를 먹도록 해요. 매일 아픈 건 아니잖아, 그쵸?"


그때까진 조금만 불편해도 약을 먹곤 했는데, 그 말씀을 듣고는 좀 불편해도 최대한 스트레칭과 바른 자세로 버텨보고, 정말 못 견디겠을 때만 약을 먹는 것으로 했다. 우울해하던 나에게 남편은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


    "좋게 생각해보면, 디스크가 오긴 했지만 회사에 앉아서 일할 필요 없이 중국에서 자유롭게 일정을 짜고 생활할 수 있어. 1년 동안 자유롭게 있다 보면 몸도 많이 나아질 거야."


물론 복귀 후인 지금까지도 디스크는 나와 함께하고 있지만, 1년을 함께 했기에 처음 그를 만났을 때보다는 노하우를 가지게 되었다. 디스크가 파견이 취소되는 원인이 되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다. 오히려 많이 걷는 것이 통증 완화에 좋다는 말을 듣고 한 곳에 앉아있기보다는 더 많이 돌아다니려고 했고, '여자 파견자인데 체력 참 좋다'는 말을 들을 만큼 열심히 싸돌아다녔다. 함께 파견된 동료들에게 디스크 이야기는 꺼낸 적이 없으니 아마 나의 그 활동량에 이런 배경이 있었다는 건 알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이 글의 원래 제목은 '인생은 호사다마일까 새옹지마일까'였다. 그런 이유로 글 첫머리에 '호사다마'라는 성어를 썼던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글을 마무리하는 부분을 쓰려던 순간, 문득 이 성어들이 정말 내가 생각하는 그 의미가 맞는지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어사전에서 이 두 단어를 검색하면 각기 이런 해설을 볼 수 있다.


[호사다마 (好事多)]

- 좋은 일에는 흔히 방해되는 일이 많음. 또는 그런 일이 많이 생김.

- 예문: 호사다마라고 덕산댁은 복남이를 낳고 산후조리가 잘못되었던지 얼마 후 중풍에 걸려 몸져눕고 말았다. (출처 <<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새옹지마 (塞翁之馬)]

- 인간의 길흉화복은 돌고 돈다는 뜻으로,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속담: 인간 만사는 새옹지마


아차, 제목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어에서 두 성어는 모두 그다지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은 듯했고, 그렇다면 '호사다마일까 새옹지마일까'라는 선택 의문문 형태의 제목은 의미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보통 '호사다마'를 액땜이라는 단어와 유사하게 사용했고, '새옹지마'를 인간사 다 그런 것이니 일희일비하지 말자는 다소 체념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전에서의 예문과 동일하게 말이다. 하지만, 두 성어의 출처라고 볼 수 있는 중국에서도 그럴까? 다음은 중국 최대 검색엔진인 바이두(百度)에서 두 성어를 검색한 결과다.


[호사다마 (好事多)]

- 好事情在实现、成功前,常常会遇到许多波折。

 (좋은 일이 실현되고 성공하기 전엔 종종 많은 굴곡을 겪게 된다는 뜻.)


[새옹지마 (塞翁)]

- 比喻一时虽然受到损失,也许反而因此能得到好处。也指坏事在一定条件下可变为好事。

- 한 순간 손실을 입게 되더라도 어쩌면 반대로 이로 인해 이득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을 비유함.


재미있다. 두 성어의 출처는 같았지만, 각국의 언어환경 속에서 두 성어가 가지는 의미는 달라졌다. '호사다마'라는 성어를 우리는 '마귀'할 때의 마(魔)라는 한자로 쓰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마찰'할 때의 마(磨)로 쓰고 있다. 즉, 한국에서는 '좋은 일에는 흔히 '마가 낀 일'이 많이 일어난다(=액땜)'는 의미로 이 성어를 사용하는 반면, 중국에서는 우선 성공을 전제하고, '일이 잘 되기 전에는 당신을 단련시키는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액땜처럼 '재수 없었다고 생각하라'는 의미보다는, '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받아들이는 점이 다르다.


새옹지마도 그렇다. '인생사 새옹지마'처럼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의미보다는, 좋지 않은 일을 겪더라도 오히려 이로 인해 좋은 일이 올 수도 있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강하다. 이는 이 성어의 출처가 되는 고사를 보면 알 수 있다. 고사 속 노인의 아들은 비록 말을 타다 다리가 부러졌지만, 이로 인해 전쟁에 징집되지 않아도 되었고 생명을 보전하게 된다. 중국에서 이 성어는 흔히 여덟 글자로 표현된다. "塞翁失马,焉知非福(변방의 노인이 말을 잃어버린 일이 운이 나쁜 것인지 어찌 알랴?)" 본래는 '새옹실마, 언지비복', 이 여덟 글자가 하나의 성어였던 것이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네 글자로 줄여졌고, 그래서 한자 표현을 바꿔 '새옹지마'가 된 것이라고 추측된다. 중국인들도 이 표현을 사용할 때,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보다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 사고방식을 바꾸라는 의미로 주로 사용한다.



지역전문가 합격, 교육만 마치면 상해로 갈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허리 디스크와 발목 부상 등 각종 악재들이 겹치면서 멘탈이 부스러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완전히 한국인의 관점에서 이 모든 일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결국 내가 불행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오히려 이 프로그램에 더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게 하는 전환점이 되었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의 나는 중국인의 관점에서 그때의 힘든 시간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중국을 괜히 갔다 온 건 아닌가 보다. 인생은 호사다마일까 새옹지마일까? 인생은 호사다마이면서 새옹지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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