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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Oct 03. 2020

카메라 상견례 여행

19년 3월, 교토·오사카 인상(印象) - 교토(京都)

10주간의 외국어 수업을 마치고, 상해로 출국하는 3월 17일이 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출국 준비와 신변 정리 등을 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9월 중 중간 귀국으로 한 번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감안해도 약 반년 동안 친지를 못 보게 되는 상황이니 이 시간은 마지막으로 주어진 자유시간이나 진배없었다. 특히 일전에 '공격포인트는 다른 곳에' 편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지역전문가가 되면 본인도 마음대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동시에, 가족 역시 해당 국가로 여행을 올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개인 정비 시간 동안 가족끼리 '파견 전 마지막 여행'을 가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결혼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았고 아이도 없던 나와 남편 역시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이별 여행'으로 이 여행을 명명하자니 너무 슬퍼 남편은 다른 구실을 하나 붙여주었다. 그건 바로 '카메라 상견례 여행'. 사실 지역전문가 파견이 결정되고 나서, 파견 기간을 좀 더 알차게 보내기 위해 어떤 장비가 필요할지 남편과 많이 상의했다. 대륙의 풍경을 더 멋지게 담아보기 위한 드론이나 생동감 있는 기억의 기록을 위한 GoPro 같은 장비가 물망에 올랐지만, 최종적으로 남편의 시험대 위에 오르자 다 탈락하고 말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무겁고 조작이 어려우니까! 슬프게도 남편은 너무 날 잘 알았다.


하지만 남편이 처음부터 이런 이유를 들어 나의 꿈을 부정했던 건 아니었다. 하나씩 같이 직접 가서 보고 안 되는 이유를 공감하게 한 뒤에 포기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내가 남편을 참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우선 GoPro를 보러 일렉트로마트에 갔다. 서핑이나 익스트림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을 위해 작은 움직임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영상을 찍을 수 있게 만들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기계를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부속품이 많아 무겁고, 배터리가 오래가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드론에는 사실 조금 희망을 걸었지만, 직접 가서 본 결과 의미 있는 영상을 찍기 위해서는 그래도 일정 수준 이상의 제품을 사야 했는데, 그러면 바로 휴대가 불편해지는 단점을 발견했다. 또 여러 버튼을 한 번에 조작하는 데 미숙해 테트리스도 늘 노템전으로 했던 내게 드론 조작은 너무도 복잡했다. 자칫하면 드론을 무겁게 낑낑 들고 산에 올라갔는데, 조작 미스로 드론은 고장 나고 눈물을 흘리며 산에서 내려오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Hi-tech는 내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결론은 디지털카메라를 사는 것으로 내려졌다. 렌즈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장비가 복잡하지도 않고, 휴대하기 무겁지 않은 모델도 많고, 조작이 단순하다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내 인생에 디지털카메라 자체가 처음이라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남편은 파견 전 여행을 그 시간으로 삼자고 했다. 장소는 신혼여행으로 한 번 간 적이 있는 교토와 오사카. 서로의 추억이 담긴 곳에서 예쁜 사진을 찍으며 곧 다가올 다소 긴 이별의 시간을 준비하자는 의미였다. 지금 와서 보니 조금 오글거리지만.


비록 이 매거진의 제목이 '난징시루에 어서오세요'고 중국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기 위한 글들이기는 하지만, 파견 전 여행 역시 그 시기의 기억들 중 하나이기에 번외편처럼 19년 3월 초의 교토와 오사카의 인상(印象)들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한 편에 모두 담아보려고 했지만 짧지만 굵은 여행이었던지라 도시별로 한 편씩 써보기로 하겠다. 교토로 출발!



[오사카 도착 및 교토로의 이동]

19년 3월 8일, 칸사이 공항에 도착해 바로 하루카선을 타고 교토로 향했다. 기차에서 바라본 창 밖 하늘은 무척 맑고 푸르렀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3월 초 교토의 추위였다. 한국의 늦겨울 초봄 날씨 정도를 생각하고 얇은 긴팔 윗옷에 코트 하나를 입고 갔던 우리 부부는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몸에 스며드는 추위에 당황하기 시작한다. 결국 교토역에 도착하자마자 유니클로에 가서 패딩조끼를 사고 말았다. 이 패딩조끼는 우리의 '덜 추운' 여행의 일등공신이었는데, 그 후 중국 생활에서도 나의 동반자가 되었다. 여담으로 이때 교토에서 묵었던 숙소에는 진짜 숯으로 태우는 난로가 있었는데, 무척 따뜻했다. 밤에 돌아와 바깥 의자에 앉아 맥주 한 잔을 하기 딱 좋을 정도로.


[교토 스마트 커피]

첫날은 오후 3시나 되어서야 교토에 도착했기에 많은 곳을 둘러보진 못했는데, 1순위로 가기로 정했던 곳은 교토 3대 카페 중 한 곳이라는 스마트 커피였다. 1932년부터 영업했다는 이 곳은 현지인이 사랑하는 카페답게 약간의 웨이팅을 거쳐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 한국에도 다마고샌드(아랫줄 가장 오른쪽 사진)가 유행하고 있을 때라, 현지의 맛을 봐보자는 의미에서 프렌치토스트, 다마고 샌드, 그리고 남편이 좋아하는 수제 푸딩을 시켜 먹었다. 모두 일본의 진한 커피 맛에 어울리는 디저트였다는 기억이 있다. 윗줄은 내가 찍은 사진이고 아랫줄은 남편이 찍은 사진인데, 지금 보니 확실히 남편이 잘 찍었다.


[551 HORAI 만두]

19년 3월 9일 아침식사로는 교토역에서 우연히 발견한 웨이팅 맛집 551 HORAI 만두를 먹었다. 니쿠만(고기만두)과 슈마이(중국의 샤오마이烧卖에서 온 음식 같긴 한데, 일본식으로 변형되어 중국의 샤오마이와는 전혀 다르다). 한국에서 나와 남편은 웨이팅하는 맛집을 잘 가지 않지만, 여행을 오면 보통 현지인이 웨이팅하는 맛집은 꼭 가곤 한다. 이것은 중국에서도 가볼만한 곳을 찾는 나의 몇 안 되는 기준 중 하나다. 사실 이 만두집이 교토역 편의점에서 적당한 먹을거리를 사서 요기를 하려던 우리를 붙잡은 것도 긴 현지인의 줄이었다. 둘 다 만두를 좋아하기도 했기에 속는 셈 치고 줄을 서보게 되었는데,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HORAI는 도원경을 뜻하는 봉래(蓬莱)에서, 551은 '여기가 최고'라는 뜻의 '코코(일본어로 5 5와 발음이 비슷하다)가 이치(1)방'이라는 일본어에서 왔다고. 본점은 오사카 난바에 위치하고 있는데, 난바의 줄은 교토보다 훨씬 길다고들 하더라.


[후시미 이나리 신사]

3월 9일 오전 일정은 여우 신사로도 유명한 후시미 이나리 신사. 사실 16년 신혼여행으로 교토에 왔을 때 와보려고 했지만, 당시 스케줄상의 문제로 오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던 곳이기도 하다. 입구부터 본당 좌우를 장식한 여우들은 이곳에서 모시는 이나리 신을 지키는 존재라고 하는데, 이 여우가 이 신사를 대표하는 동물이 되어 동상뿐 아니라 사람들이 소원을 적는 목판인 에마(绘马, 세 번째 줄 좌측 사진) 역시 여우 모양이었다. 누가 일본에서 가장 도리이(둘째줄 왼쪽 사진과 같은 주황색 기둥)가 많은 신사 아니랄까봐 걸어도 걸어도 끝나지 않는 도리이를 볼 수 있었다. 여우 에마에는 개인들의 소원을 기탁했다면, 도리이에는 다양한 회사들의 번성에의 열망이 적혀 있었다. 아직까지도 이 도리이가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이곳이 꽤 영험한지도 모른다. 긴 도리이길을 걸은 뒤 본당으로 돌아온 남편과 나는 신혼여행 때 다른 신사에서 했던 것처럼 2020년을 기념한 오미쿠지(신사에서 보는 간이 점占)를 한 후, 다음 목적지로 이동했다.


[쥬니단야의 스키야키]

케이한선을 타고 기온시죠역으로 이동한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스키야키 집을 찾았다. 날이 추웠기에 따뜻한 음식이 먹고 싶었던 것이 첫째 이유였고, 진짜 일본의 스키야키는 어떤지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둘째 이유였다. 유명한 집이었던 만큼 약간의 웨이팅도 있고 가격대도 싸지 않았지만, 일본의 고도(古都)라는 교토에서 스키야키를 먹었으니 꽤 정통 스타일로 먹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부심을 가질 수는 있게 되었다. 사족을 덧붙이면, 일본 여행 중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메뉴판 보는 것이었다. 남편과 나 둘 다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알았고, 가끔 현지어 메뉴판과 번역판이 다를 때가 있어 로컬 메뉴판만 보곤 했는데, 일본 메뉴판은 설명이 너무 많았다. 메뉴판에서 주어지는 데이터 양이 너무 많은데, 모국어가 일본어가 아니었던 우리 부부는 일단 그 데이터를 독해하기 바빴고, 독해가 끝나야지만 무엇이 중요한 내용인지 캐치할 수 있었다. 덕분에 어느 식당을 가더라도 메뉴 주문에 걸리는 시간이 배가되었다. 중국 메뉴판에 비해 너무도 친절하게 설명해주니 감사하게 생각해야 마땅한 것을, 쯧쯧.


[키요미즈테라(清水寺) 가기 전 이노다 커피]

스키야키를 배부르게 먹고 호기롭게 키요미즈테라(清水寺, 청수사)까지 걸어가는 대장정을 시작하였지만, 기온 거리를 걷는 동안 진이 다 빠져버린 우리 둘. 그도 그럴 것이 길이 전반적으로 위쪽 사진처럼 오르막이었다. 이대로 청수사에 가면 기력이 없어 제대로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쉴 곳을 찾다가 들어가게 된 교토 3대 카페 중 한 곳, 이노다 커피. 사실 순전히 발을 쉬게 할 생각으로 들어간 곳이라 사전 조사도 거의 없이 들어갔는데, 바깥 풍경이 너무 푸릇푸릇 봄빛이어서 좋았던 기억이 있다. 드립 커피의 이름이 시적이었다는 점과 디저트가 무척 달았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건 잘 쉬었다는 것.


[키요미즈테라 앞 매화, 같은 풍경 다른 사진]

3월 초 일본 여행이라 사실은 벚꽃을 기대하고 갔는데, 벚꽃은 없고 매화가 막 피기 시작하고 있었다. 키요미즈테라에 거의 도착하자 매화나무가 우리의 눈을 사로잡았기에, 같은 풍경을 가지고 나와 남편이 각각 사진을 찍었다. 왼쪽은 내 사진이고 오른쪽이 남편의 사진인데, 기술과 카메라의 차이로 인해 색감과 화면이 많이 차이가 나지만, 둘 다 예쁘다. 톡 터지려고 준비하는 매화가 귀여웠다.


[키요미즈테라, 청수사]

우여곡절 끝에 청수사에 도착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곳인데 아쉽게도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인 본당은 유지보수 중이라 들어갈 수가 없었고(두번째줄 오른쪽 사진), 다른 곳만 둘러보고 나왔다. 교토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다는 이곳은 물이 맑은 곳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그 이름에 걸맞게 영험하다는 폭포물을 마시는 곳이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기도 했고 미신적인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라 넘어갔지만. 예쁜 해당화와 매화를 볼 수 있어 좋았으나 공사기간으로 그 풍경을 완전히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왠지 일본은 다시 못 갈 것 같아 더 아쉽다.


[교토 거리 풍경]

니넨자카를 걸어 키요미즈테라를 빠져나오자 저녁시간이 다 되었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찍은 사진들. 노을 지는 하늘이 예뻐 찍었던 사진들은 누가 초보 아니랄까봐 사진에 수평이 하나도 안 맞는다. 옛 수도에 걸맞게 가로등이 청사초롱이다. 교토를 보고 경주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부분도 약간 경주랑 닮았다는 느낌이다. 오른쪽은 갑자기 나타난 돌하르방에 놀라 간판을 보니 부침개(치지미) 집이었다는 사진. 외국에서 웬만하면 한국 음식은 먹지 않는 주의라 먹지 않고 간판만 찍었다.


[오코노미야끼집 아라타]

교토 둘째 날이자 마지막 날의 저녁은 오코노미야끼로 정했다.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집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일본 여행 시 맛집 사전조사가 잘 되어 있지 않더라도 구글맵만 있으면 안심해도 좋다. 위치도 정확하고 네티즌들의 평가도 실시간으로 올라와 있으므로 먹고 싶은 메뉴를 정한 뒤 평가를 잘 보고 찾아가면 된다. 일본뿐 아니라 구글맵을 자주 사용하는 대만도 마찬가지다. 로컬에게 인기가 많은 집이라 그런지 우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손님이 현지인이었다. 메뉴는 가장 기본적인 오코노미야끼와 야끼소바. 오사카에서 먹었던 것보다는 못하지만 기린 생맥주가 함께 한 밤이었기에 모든 것이 괜찮았다.



옛 수도(古都) 교토는 여기서 작별을 고하고 다음날이면 오사카로 떠난다. 개인적으론 교토라는 도시를 좋아한다. 나는 한국에서도 강남보다는 홍대/합정/상수를 더 좋아하는데, 교토도 마천루보다는 키 작은 목조 건물이 많고 전통가옥 같은 느낌의 건물도 많아 정서에 맞는 편이다. 신혼여행 때는 아무래도 여행의 특수성에 있어 돌아보지 못했던 명소들이 많았는데, 이번 교토행에서 그곳들을 다 가볼 수 있었다. 청수사의 본당은 아무래도 랜선으로 봐야 할 것 같지만.


여행의 본 목적인 카메라 상견례를 생각하고 그때 찍은 사진들을 다시 돌려보면 웃음이 나온다. 줌인, 줌아웃, 찰칵 밖에 할 줄 모르는 생초보였기 때문에(사실 지금도 별반 다르진 않지만) 눈으로 봤을 땐 예뻤던 풍경들이 사진으로 보니 그저 그런 경우도 생기고, 수평조차 맞추지 못해 멀쩡한 평지가 오르막 내리막으로 바뀌어있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는 화면에 나오는지도 모르고 팔 위치를 잘못 조절해 코트 소매가 나온 사진도 꽤 있다. 하지만 그때의 나의 진실한 기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인 가치가 있다. 전문적으로 사진 찍으시는 분들께는 죄송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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