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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Apr 10. 2021

상해의 5월, 월계화와 함께

상하이 진산식물원(辰山植物园)

휴강이다! 뭐하지?


2019년 5월 9일 목요일, 드디어 자체 휴강이 아니라 진짜 휴강을 맞닥뜨렸다. 이유는 학교에서 주최한 봄나들이 행사가 딱 그날 진행되어 수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속 학급과 관계없이 어학당 수업을 듣는 모든 유학생이 (참가비만 내면) 참가할 수 있는 행사였는데, 생각보다 꽤 많은 학생들이 참가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경우, 1박을 하는 일정이 좀 부담스러웠고 일정 중 익스트림 스포츠 같은 것이 있어 취향에 맞지 않아 가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내게는 '학교 사정에 의한 휴강'이 생겨버린 것!


대학 졸업 후 너무 오랜만에 갑자기 맞이한 휴강 사태에 전날 밤까지도 다음날 무엇을 할지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상해 안에서, 그것도 평일에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 커튼을 치니 밖은 너무나도 맑은 하늘의 봄 날씨. 문득 상해 교외에 가볼만한 퀘스트 중 이런 날에 딱 어울리는 목적지가 있음을 생각해냈다. 그건 바로, 송쟝구에 있는 진산식물원(辰山植物园)! 바이두 지도에서 검색해보니 대중교통으로 편도 한 시간 반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다. 주가각(周家角)도 다녀왔는데, 이 정도 못 갈까? 용기가 생겼다. 빠르게 채비를 하고 카메라를 챙겨 집을 나선다.


어디 가냐옹?


진산식물원(辰山植物园)이 어딘데?


2010년에 대중에 개방된 이 식물원은 중국 화동지역에서 가장 큰 식물원이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온실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정~말 크다. 이 말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 봐도 봐도 또 다른 구역이 나오고, 이제 다 봤나 싶으면 갑자기 온실이 나타나는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 드라마 <겨우, 서른(三十而已)>에서 중샤오친(钟小芹)이 열기구를 탄 곳, 구쟈(顾佳)가 서른 번째 생일 파티를 한 곳 모두가 바로 이 식물원인데, 실제로 열기구를 탈 수 있는 체험 같은 건 없다고.


내가 살던 곳에서 대중교통을 타고 식물원으로 가려면 우선 지하철 12호선 난징시루(南京西路) 역에서 탑승해서 쟈샨루(嘉善路) 역에서 9호선으로 갈아탄 뒤, 동징(洞泾) 역에서 일단 내려야 한다. 내린 뒤 옆 앞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진산식물원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지하철로 약 50분 정도 가고, 버스로 한 15분 정도를 가는데, 음.. 난이도는 주가각보다는 높고 치바오(七宝)보다는 낮다고 해야 할까? 나는 평일에 갔었는데 버스 안에 봄나들이 가는 아주머니들이 굉장히 많이 타셔서 버스가 아주 혼잡의 극치였던 기억이 있다. 게다가 날도 더운 편이라 도착하기도 전에 진이 빠졌다. 어찌 됐든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진산식물원. 일단 표를 사서 들어간다. 표값은 30위안(한화 약 6천 원).



가는 날이 장날, 월계화 축제!


다행히 힘든 것은 딱 거기까지다. 입장만 하면 오는 길의 힘들었던 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잊힌다. 왜냐하면 주위 풍경이 너무나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딱 5월에 맞는 풍경이다. 게다가 사전 조사 없이 와서 몰랐는데 딱 이 기간에 식물원에서는 월계화 축제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월계화를 주제로 한 구역이 아예 따로 마련되어 있었는데, 색색의 월계화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사실 꽃을 보고 '예쁘다'는 생각만 하지, 이름이 뭐고 품종이 어떻고 하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지라 월계화라는 꽃이 어떤 꽃인지 몰랐는데, 막상 보니 어디서 많이 본 모양이다. 이거 장미 아닌가? 찾아보니 동양의 월계화가 서구로 넘어가 개량되어 오늘날 볼 수 있는 다양한 품종의 장미가 되었다는 것 같다.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크게 보면 가족인 셈이다. 중국어로 월계화는 위에지화(月季花), 장미는 메이구이화(玫瑰花)로 따로 분류되고 있다.


여러 월계화 중에서 나의 눈을 가장 사로잡았던 품종은 아래 사진의 꽃. 아직도 정확한 품종이 무언지는 모르지만, 꽃잎의 색이 여러 색의 조화로 되어있는 점이 다른 품종과는 차별화된 매력으로 보였다.



아까 같이 버스 타고 온 아주머니들이 단체로 사진을 찍거나 하는 등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평일의 식물원은 대체로 조용했고, 간간히 커플들이 수줍게 꽃을 보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너무 커플로만 가득하면 혼자 온 게 서러워질 텐데, 그렇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혼자 왔다는 것을 의식할 새도 없이 꽃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사진첩은 이미 오늘 찍은 사진으로 그득하다.



식물원에 웬 폭포?


슬슬 다른 꽃도 좀 보고 싶다, 고 생각할 때쯤 월계화 구역이 끝나고 다른 식물들이 있는 구역이 보이기 시작했다. 명색이 식물원이라 뭔가 식물의 분류 기준을 잡고 그 기준대로 구역을 나누어 키우고 있는 것 같았는데, 약용식물 코너나 식용식물 코너 등이 있는 게 좀 재미있었다.



식물원 안에는 식물도 많았지만 인공적으로 만들어둔 호수나 연못 같은 것들도 그 규모가 굉장히 컸다. 호수인지 연못인지 알 수 없는 물 위에는 연꽃이 소담하게 피어 있고, 흑조와 물새들이 날아다닌다. 정말 화동에서 가장 큰 식물원이라는 소개 문구에 걸맞게 어딘가의 국립공원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규모다.



이날 식물원에는 나와 아주머니들 외에도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나온 듯한 아이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평일이라 그런 것 같다. 덕분에 이날 식물원 안내 방송으로는 상해 모 중학교에서 온 개똥이 소똥이 말똥이 이름이 다 불렸다. 벤치에 앉아서 가판대에서 산 컵라면을 먹고 있는 그들을 보고 있으니 배가 좀 꼬르륵거린다. 결국 지나가다 카페테리아 같은 야외 식당을 발견해 고기랑 야채 빠오즈(包子) 각 한 개를 사서 먹었다. 맛은?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만두 맛!


책가방 던져놓고 어디 갔니 얘들아~


사람 구경, 풀 구경, 나무 구경을 하며 걷다 보니 표지판에 이곳에서 보이는 게 어째 좀 생소한 글자가 적혀 있다. '폭포(瀑布)'. 아니, 식물원에 웬 폭포? 그리고 그것이 정말 있었다. 본래 탄광이 있었던 자리인데,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는 모습을 눈여겨본 한 교수의 노력으로 폭포로 재설계하여 인공적으로 이 장관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가까이서 보면 정말 폭포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돌아가는 길, 다시, 지하철


이렇게 좋은 구경을 한 날은 집에 가는 날이 오히려 좀 더 힘들다. 물론 힘들여 갔는데 좋은 구경을 못했을 때가 가장 억울하지만, 좋은 구경을 한 경우는 또 그것대로 괴로운 면이 있다. 나는 그래도 다행히 이른 시간에 치고 빠져서 식물원에 사람이 슬슬 많아지려고 할 때쯤 빠져나와 괜찮은 편이었지만, 오후 늦게 이곳에 오게 되면 구경 다하고 돌아가는 길에 퇴근 러시 아워를 만나 지옥철을 경험할 수도 있다. 한국이든 중국이든 러시 아워는 힘들다. 더구나 그것이 2시간 넘게 이 넓은 부지를 도보로 돌아다닌 후 복귀하는 길이라면 더 그렇다.


어쨌든, 진산식물원은 지금까지 교외에 있다는 이유로 가봤던 주가각, 치바오와 비교했을 때 전혀 손색없는, 오히려 더 자연친화적이고 치유되는 느낌을 받은 공간이었다. 식물원이고, 내가 평일에 갔으니 다소 편향된 평가일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공간이 주는 편안한 느낌과 가보기 전엔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 그리고 눈길 닿는 곳마다 보이는 아름다운 꽃들과 식물들만으로도 이곳에 가볼 이유는 충분하다.


사실 상해 시내에도 식물원은 있다. 상해남역(上海南站) 근처에 있는 상해식물원(上海植物园)이 그것이다. 진산식물원을 가기로 결정하기 전, 나는 주가각 때의 지옥철 때문에 살짝 주저하면서 그 목적지를 이 도심에 위치한 상해식물원으로 바꿀까 꽤나 고민했었다. 하지만 웹상의 많은 중국 네티즌들이 그 규모나 식물 종류의 다양성 등을 이유로 진산식물원을 더 추천했고, 그래서 왕복 세 시간이라는 부담스러운 거리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가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결정에 나는 꽤나 만족했다. 상해에 체류하는 시간이 충분하고 식물원을 가보고 싶다면, 꼭 가보시기를! 하지만 가게 된다면 역시 평일이 좋겠다.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아침에 일어나니 햇빛이 찬란하고, 학교도 오늘 하루 휴강이라, 정말 충동적으로 상해 진산식물원에 갔다. 마침 월계화 축제를 하고 있어서 풍경이 참 예뻤다. 게다가 목요일이라 사람도 많지 않았고.. 정말 잘 한 선택인 것 같다! 셀카봉을 들고 오지 않은 게 좀 후회되는데.. 진산식물원은 정말 컸고, 탄광 화원에는 심지어 폭포도 있었다. 한 번 갈만함! 다만 시내에서 거리가 좀 돼서, 지하철을 타고 간다면 좀 힘들 수도 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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