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서법 수업
2019년 5월 8일, 시범 강의 후 뭔가에 홀린 듯 정식 수업을 등록하고 맞이하는 첫 서법 수업이었다. 수업 시작 시간 약 10분 전에 학원에 도착한 나는 웬 아주머니와 할머니, 아저씨까지 교실 밖에 앉아있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아마 전 타임의 강의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쭈뼛거리며 비어있는 간이 의자에 앉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기서 함께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이분들이 나와 함께 수업을 듣는 동학들인 줄 알았다.
시간은 흘러 수업은 끝나고, 교실에서 아이들이 뛰쳐나올 때 나는 알게 되었다. 이들은 나의 동학들이 아니라, 앞 시간 수업을 듣던 '선배님'들의 보호자였음을. 수업이 끝난 것을 기뻐하며 나오는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해주는 엄마, 아빠, 할머니들. 학원 복도는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나는 다시 쭈뼛거리며 교실로 들어섰다.
나를 가르쳐주실 선생님의 성은 오(吴) 씨로, 우라오스(吴老师)라고 불렀는데, 후난이었는지 안휘였는지 아무튼 상해가 고향은 아니셨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께서 붓글씨를 배울 수 있게 해 주셨고, 재능도 있어 이 길로 오시게 된 것 같았다. 말씀하시는 중국어에 약간의 사투리 발음이 섞여 있어 가끔 못 알아들을 때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친절하셨고 자세하게 알려주셨다.
교실에 들어가니 일단 이렇게 연습용 종이와 붓, 먹물이 세팅되어 있었다. 갑자기 긴장이 훅 된다. 선생님께서 책꽂이에서 교재를 가져다주셨다. 내가 배우기로 한 건 한자 글씨체의 가장 기본이 되는 해서(楷书). 흘려 쓰는 글씨체를 배우고 싶어도 일단 모범적인 글씨체를 먼저 배워야 응용이 가능할 것 같아 선택한 글씨체였다. 결론적으론 해서 외의 글자체를 배우진 못했지만...
자리에 앉아 교재를 펴고 잠시 살펴보는 사이에 동학들이 모두 도착했다. 분명 성인반이었는데 막상 수업을 듣는 사람 중 성인은 나를 포함 3명 정도이고, 나머지 4~5명의 동학들은 모두 아이들이다. 초등학생 저학년. 그러나 학원은 나보다 오래 다닌 아이들. 전체 동학들 중 붓글씨를 배우는 사람은 2~30% 정도이고, 나머지는 다 펜글씨를 배운다. 아무래도 당장 학교 필기를 예쁜 글씨로 하기 위해서는 즉효가 되는 펜글씨를 배우는 케이스가 많은 것이다. 성인 중 펜글씨를 배우는 동학은 학교 선생님이 많았다. 아이들 앞에서 본인이 판서를 해야 하는데, 글씨를 잘 쓰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있는 모양이었다.
선생님께서는 한 명 한 명 돌아가며 각자의 진도에 맞게 수업을 진행해주셨는데, 먼저 직접 글씨를 쓰는 모습을 보여주시고, 주의해야 할 점 등을 말씀해주신 후 해당 학생이 직접 연습 용지에 써보는 동안 다른 학생을 봐주러 가셨다. 오늘 수업을 듣게 된 학생 중에는 내가 제일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것 같았는지, 내 자리에서 가장 먼저 시범을 보여주셨다. 시범강의를 들었지만 막상 붓을 실제로 잡고 글씨를 써본 적이 거의 없는 터라 붓을 쥐는 법과 힘을 주는 법 모두 새로 익혀야 했는데, 선생님의 시범을 볼 때는 그렇게 쉬워 보이는 것이 왜 막상 내가 하려니 이렇게 어려운지.
첫 수업에 내게 주어진 과제는 가로 획(横)과 세로획(竖)을 배우고 그걸 응용하여 一, 二, 三, 工을 쓰는 것. 학교 다닐 때 미술 시간에 서예를 배울 때도 선 긋는 연습을 가장 먼저 했던 것 같은데, 똑같은 원리로 선을 긋는 연습을 가장 잘할 수 있는 글자를 첫날 배우는 것이다.
결론은? 세상에, 작대기 하나, 작대기 둘, 작대기 셋을 긋는 게 이렇게 어려운지 그날 처음 알았다. 붓을 쥐고 팔을 움직이는데, 분명 머릿속은 선생님이 방금 보여준 대로 쓰고 있는데 어째 눈에 보이는 글씨는 지렁이가 되고 올챙이가 되고 있는지. 심지어 단순히 선을 긋는 것만 생각해선 안 되고 획 간의 간격이나 끝처리, 대칭감 등을 모두 고려해야 했다.
선생님께서 빨간색으로 시범을 보여주신 연습 용지에 분명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글씨를 썼는데 다 쓴 종이를 보니 지렁이, 달팽이, 올챙이. 내가 아는 모든 생명체가 뛰쳐나올 것 같은 이 자유분방함! 내가 칸을 다 채운 걸 보고 선생님께서 검토해주러 오셨는데 쥐구멍이 어딨나 찾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정말 놀라운 건 선생님께서 이 지렁이와 올챙이 사이에서도 '그나마' 잘 쓴 글자를 찾아내 체크 표시를 해주셨다는 점이다. 세상의 모든 선생님, 존경합니다. 내가 쓴 그 하잘것없는 글씨를 하나하나 꼼꼼히 보시며 체크해주시고, 부족한 부분은 다시 짚어주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욕이 샘솟았다. (칭찬에 무척 약한 편)
수업을 몇 번 들으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정말 잘 쓴 글자를 보시면 선생님께서는 '체크' 표시가 아니라 '별' 표시를 해주셨다. 첫 수업에서 난 '별표'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으니 그 말은 그날 내 글씨는 그야말로... 음, 여기서 더 이상의 표현은 생략한다.
一, 二, 三. 컴퓨터로 보니 이렇게 단순한 글자인데. 그날 이 세 글자는 내게 세상에서 제일 쓰기 어려운 글자로 둔갑했다. 가로 획 하나를 긋는 데도 여러 단계의 동작이 필요했는데, 우선 붓을 수직으로 잘 들고 종이에 한번 찍은 다음, 힘을 약간 빼고 오른쪽으로 슬슬 움직인다. 이 과정에서 힘을 점점 빼다가 중간을 넘어서는 순간 다시 힘을 조금씩 넣는 강약 조절이 필요하다. 그리고 끄트머리에 다다르면 위쪽으로 약간 붓을 올리고 다시 힘을 주어 찍은 다음 슬슬 돌려 마무리를 해주어야 한다. 말로 풀면 쉬워 보이는데 평소에 붓을 자주 잡지 않는 사람이 들은 대로 글자를 쓰려고 하면 결국 눈앞에 보이는 건 지렁이요, 올챙이다.
자신의 한계를 맛보는 고통의 수업이 끝날 때쯤 선생님께서 연습용 종이에 오늘 배운 글자를 쭉 쓰더니 숙제라며 내주셨다. 숙제라니! 숙제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선생님께서 붓도 추천해주셨다. 얼른 타오바오로 붓글씨 도구 세트 사야겠다.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붓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겠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一二三을 맛보고 집에 오는 길, 하늘이 유난히 맑다. 집에서 빨래를 돌리고 창밖을 보는데 저 멀리 동방명주(东方明珠)가 보인다. 하늘이 맑긴 맑네. 3월 말 4월 초 미세먼지가 거짓말 같은 5월이다. 자, 이제 붓글씨 도구 세트 사보자!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一二三工. 붓을 들고 글씨를 쓰는 것은 정말 정말 어렵다. 선생님이 심지어 숙제도 내주심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