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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Apr 03. 2021

상해의 봄 날씨는 30-15

2019년 5월 7일, 상해 날씨 맑음. 상해의 봄 날씨를 형용할 때 중국어로 '만삽십감십오(满三十减十五)'라고 하는데, 30까지 꽉 차면 15만큼 줄어든다는 뜻으로, 30도를 찍는 순간 그다음 날 온도는 그 절반으로 뚝 떨어진다는 말이다. 한국식 표현으로 꽃샘추위라고 번역하기에는 그 기준이 되는 기온이 너무 높고, 그야말로 하루는 반팔만 입어도 될 정도로 따뜻하다가 갑자기 그다음 날엔 트렌치코트를 입어야 하는 날씨다.


온도가 널을 뛰는 것처럼, 5월 상해의 하늘은 아주 가끔 흐리다가도 몇 분 지나면 금세 맑은 하늘을 내비치는 변화무쌍함을 가지고 있다. 등굣길 하늘이 푸르러 기분 좋게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며 수업을 듣고 나면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기도 하고, 봄비가 퍼붓다가도 금세 하늘이 개 버린다거나 하는 모습 말이다. 마음에 여유가 있으니 그 변화무쌍함도 싫지 않다. 푸른 하늘이 보일 땐 당황하지 않고 바로 카메라 어플을 켠다.



캠퍼스 안에는 곳곳에 공강을 즐기는 학생들과 봄을 즐기는 지역 주민들이 혼재되어 있다. 상해의 5월은 1년 중 습도와 온도가 딱 적당한 몇 안 되는 기간이다. 내 마음이 그래서 그런지 보이는 사람들마다 표정이 행복해 보인다.



학원 근처에 있는 쉬쟈후이 천주교당(徐家汇天主堂). 푸른 하늘과 천주교당 건물의 이국적인 색채가 잘 어울려서 홀리듯 문 앞까지 왔다. 청 광서제 때인 1910년에 완공되었다는 이곳은 현재까지도 미사가 진행되고 결혼식도 가끔 올리는 곳이다. 이렇게 예쁜 곳이 문화 대혁명 때는 훼손되어 과일창고 같은 것으로 쓰였다니, 중국 정말, 대단하다.



놀랍게도 같은 날의 풍경. 맑은 하늘 아래의 우캉대루를 보고 싶어서 찾아갔는데 아쉽게도 포기해야 했다. 지하철을 타고 샨시난루(陕西南路)에서 내려 산책을 하는데 보이는 궈타이영화관(国泰电影院). 건물이 특이하게 생겼다 했더니 1930년에 세워진 아르데코(装饰艺术派) 양식 건물. 문화 대혁명 기간에는 인민 영화관으로 이름을 바꿨다가(그래도 이번에는 건물의 성질이 달라지진 않았네), 이후에는 지금의 이름을 다시 되찾았다. 한 주에 한 번은 무료 상영을 하는 등 공익활동에도 앞장서는 영화관인데, 그 외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아직도 그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이 멋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발견한 식당. 이름은 니엔까오 리(年糕李), 한국어로 하면 '떡 리'... 하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건 그 중국어 이름이 아니라 그 밑에 조그맣게 쓰여 있는 영어 'KOREAN BISTRO'. 집 근처에 무려 한식당이 있었단 말인가! 따중뎬핑에서 찾아보니 부대찌개, 떡볶이 등을 파는 곳인 것 같은데 생각보다 중국인에게 인기가 많다. 평점도 좋은 편이고. 중국에서 웬만하면 한식은 먹지 않는다는 주의라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가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아직 폐업하지 않고 잘 열려 있는 식당인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학교 수업을 듣다가 지루하고 졸려서 위챗 모멘트에 아침에 찍은 상해의 예쁜 하늘 사진을 올렸다. 몇 달 전만에도 한국에서 찌들어 살던 내가 상해에서 이런 하늘을 보고 살고 있는 데 대한 감회를 가득 담아. 모멘트가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에 있을 때 함께 일했던 중국인 동료들이 댓글을 단다. "그렇게 그리우면 얼른 돌아와서 일해!" 에이, 그건 아니지~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열심히 수업 듣기 싫어서, 펑요췐에 사진이나 올리련다~ 오늘 상해의 온도는 또 30-15지만,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늘 기쁨이다. 한국에 있을 때, 아침에 출근하는 길에 종종 하늘 사진을 찍곤 했다. 그런 사진을 볼 때 마음이 안정되고, 하늘이 날 위로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늘의 푸른 하늘은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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