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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May 22. 2021

이 붓을 사기까지

문구점 찾아 삼만리

난징시루엔 문구점이 없다


서예학원을 처음 다녀온 뒤, 숙제를 하려고 붓을 하나 샀다. 뭘 사야 할지 잘 몰라서 타오바오(淘宝)에서 서예용 붓, 벼루, 먹물, 문진, 받침천 등을 세트로 파는 제품을 샀는데, 다른 물건들이야 사실 기능만 할 수 있으면 상관이 없었지만 붓이 영 별로였다. 플라스틱 재질로 된 털인지 먹물을 묻히고 글을 쓸 때 부드럽게 움직이지 않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붓을 좀 직접 보고 사야겠다 싶어서 동네 문구점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바이두지도에서 우리집 위치가 나오게 한 뒤, 주변 검색으로 문구점을 검색했는데 어째 가까이에 문구점이 없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동네가 상해의 청담동, 난징시루였기 때문이다. 청담동에 문구점은 좀 안 어울리지. 임대료도 셀 것이고. 게다가 중국도 온라인쇼핑이 대유행 아닌가. 그래도 한국에 있을 땐 동네에 문구점 하나 정도는 있었는데, 역시 뭔가 인간미가 부족한 동네다.


한참을 스크롤을 내리다 겨우 문구점 비슷한 곳을 발견했는데, 동네는 아니고 도보로 한 30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 신천지 근처 마땅루(马当路)에 하나 있는 것으로 나왔다. 장사를 하는 가게인지 바이두 지도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작은 매장이라 일단 한 번 찾아가보기로 했다.



I'm Here, 신천지


난징시루에 있는 집에서 아파트 뒷길로 나가 황피난루(黄陂南路)를 지나 걸으면 신천지(新天地)가 나온다. 사실 이 동네도 난징시루의 화려함과 별 다를 바가 없어서 여기 어느 구석에 문구점이 있다는 건지 좀 의아하지만, 일단 지도에서 시키는 대로 가보기로 한다. 토요일 오후라 신천지에는 주말 오후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많이 나와있다. 물론 외국인들도 많다. 나도 외국인이긴 한데.. 사려는 물건이 그들과는 좀 다르긴 하지만.



문구점을 찾아 걷다 보니 목걸이 등 악세사리를 파는 매장에 고양이 한 마리가 죽은 듯이 누워 있다. 손님이 없는 매장, 휴대전화만 바라보는 직원, 널부러져 있는 고양이가 묘하게 어울린다. 어쩌면 이 가게의 마스코트일 고양이겠지만 한껏 나른하게 장식장 위에 누워있는 그를 보니 권태가 느껴진다.



여기 도대체 어디에 문구점이 있다는 건지 궁금한 마음으로 걷다 보니 오른편에 드디어 문구점 간판이 보인다. 역시 임대료가 비싼 동네라 그런지 문구점은 약간 반지하 구조로 되어 있다. 안에는 어린 아이와 어머니가 같이 비누방울을 고르고 있고. 어느 나라든 문구점 풍경은 비슷하구나 싶다. 붓을 파는 코너에 가서 드디어 플라스틱 재질이 아닌 진짜 털 재질의 붓을 발견! 붓 위에 쓰여진 글자가 어째 학원에서 쓰던 붓에 써있던 글자와 같은 것 같다. 잘 찾은 것 같군. 그나저나 상해에서 붓 한 번 사기 힘들다. 사는 곳이 난징시루가 아니었다면 좀 나았겠지?




새 붓으로 숙제를 해보자


붓 구매에도 성공했겠다, 주말 시간을 이용해 숙제를 하기로 했다. 붓을 바꿔서 그런지 좀 더 잘 써지는 것 같긴 하다. 아무래도 새 붓이라 길을 좀 들여야 되긴 하겠지만 말이다. 발품 팔아서 붓을 사기로 한 결정은 잘 한 결정인 것 같다. 집 근처 어디까지 나가야 문구점이 있는지도 알게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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