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양(沈阳) 지역연구 1일차 (2)
씨타졔의 밤거리 산책을 마치고 우리는 내친김에 숙소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직선거리로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중간중간 구경도 하고 선양 거리도 구경할 겸 걷기로 한 것이다. 도중에 우리를 맞이한 곳이 바로 중산광장(中山广场). 지도로 보면 둥그렇게 생긴 이 광장은 실제로도 원형의 공터이고 그 공터 주위로 선양의 역사적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1913년에 "중앙광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만들어졌다는 이 광장은 국민당 통치 시기에 쑨원, 손중산의 이름을 따 "중산광장"이라는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고 마오쩌둥이 리더가 된 뒤에도 이 중산광장이라는 이름은 유지되었는데, 이 이름이 잠시 바뀌었던 시절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문화 대혁명 시기.
마오쩌둥을 절대권력으로 세우기 위한 문화 대혁명이 진행되던 시기 이곳은 붉은 깃발, 즉 "홍기광장(红旗广场)"이라는 이름으로 개명되었다고 한다. 하여간 빨간색 참 좋아해. 이후 문화 대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뒤 1981년, '국부' 손중산을 기념한다는 의미로 이곳은 다시 중산광장이라는 옛 이름을 되찾았다.
광장 중심을 장식하는 상징물도 시대에 따라 바뀌어왔는데, 본래 광장이 조성되었던 초기는 일본이 이곳을 점령한 시기로, 일본이 이 광장 중심에 옥으로 된 기둥을 세웠다고 한다. 메이지 37년의 전쟁을 기념하는 문구까지 심어서.
이후 국민당 정부가 들어서 이 기둥을 비석으로 바꾸고, "국민지상 민족지상"이라는 문구를 새겨 넣었다고. 이후 공산당 정부로 바뀌면서는 아예 그런 비석은 다 없애고 아예 마오쩌둥의 동상을 세웠다. 그 어떤 말보다 그냥 마오쩌둥의 동상을 놓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고 여긴 듯. 이것이 "중산"광장에 왜 마오쩌둥이 서 있었는지, 그 이유다.
현재 선양 시민들이 밤에 나와서 산책하고 선선한 공기를 즐기는 광장인 이곳의 주변에는 앞서 언급한 대로 일본풍, 유럽풍의 역사 깊은 건물들이 8개나 들어서 있다. 그 모습이 상하이와 비슷하다고 하여 이곳은 선양의 '와이탄(外滩)'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이전에 이곳엔 요코하마 은행, 일본 조선은행 등 금융기구가 모여 있었고, 그에 더해 호텔이나 경찰서, 철도국 등도 있었는데 그 건물들이 아직까지 자리하고 있다. 지금도 그 건물들은 랴오닝 호텔(辽宁宾馆), 공상은행, 공안국(≒경찰서), 초상은행, 화하은행 등 이전과 비슷한 쓰임새로 사용되고 있는 중이다. 그런 점에서 정말 와이탄과 유사하긴 하다. 아쉽게도 사이를 흐르는 강은 없지만.
낮에 왔다면 좀 더 그 건물의 모습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겠다 싶기도 한데, 마오쩌둥 동상과 랴오닝 호텔을 비추는 조명을 보니 밤의 중산광장도 나쁘지 않다 싶다. 광장이 넓고 주변에 시야를 가리는 높은 건물이 안 보여서 그런지 여기서 대형 연을 날리려고 시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쉽게도 실제로 그 연이 하늘을 나는 것까지는 보지 못했지만.
중산광장을 지나 또 조금 걸어가자 육교 너머로 원형의 조명이 보인다. 얼핏 보면 관람차 같이 보이는 모습에 무엇인지 궁금해서 좀 더 가까이 걸어가 봤는데 알고 보니 선양 기차역이었다.
이미 밤이 깊은 시간, 선양 기차역(沈阳站)은 어쩐지 좀 더 어둑한 느낌이다. 어딘가로 가는, 혹은 어딘가에서 온 사람들이 기차역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왠지 저녁 먹으러 갔을 때 씨타졔에서 봤던 험악한 패싸움이 머릿속에 떠다닌다. 낯선 곳에 가면 기차역이나 버스 터미널은 피하라고들 하는데, 우리는 왜 제 발로 그곳으로 걸어갔단 말인가. 지금 생각하면 좀 무모했던 것 같기도 한데, 그땐 '다 사람 사는 동네인데 별 일 있겠나' 싶은 마음으로 갔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크로스백을 품섶으로 끌어당긴 것은 본능적인 조치였을까.
기차역에서 간단히 사진을 찍고 나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재촉한다. 가는 길에 '차 없는 거리' 같은 보행가가 있어 그곳을 지나 돌아가기로 했다. 그 보행가의 이름은 타이위안루 보행가(太原路步行街). 선양에서 두 번째로 번화한 거리라고 하는 이곳은 일본이 점령했을 당시 긴자의 모습을 본떠 조성한 상업구라고 한다. 본래 최신 유행을 엿볼 수 있는 굉장히 번화한 거리라고 하는데, 아쉽게도 우리는 이미 10시가 넘은 시간에 방문한 터라 거리가 매우 한산했고 열어있는 상점도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사실 이런 번화한 상업거리는 어느 도시에건 다 있지 않은가! 지난번 다녀왔던 톈진에도 허핑루(和平路)라는 곳이 이런 분위기였고, 충칭의 해방비(解放碑) 근처도 그랬고, 내가 살고 있는 상하이 집 근처 난징시루 역시 그렇지 않은가. 번화한 상업거리는 어느 도시에나 있고, 사실 대부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기에 그다지 특별한 경험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곳을 첫날 저녁에 방문한 것이기도 하고.
어쨌든, 기왕 이렇게 된 거, 묘하게 입이 심심하니 달다구리 하나 사 먹기로 한다. 타이위안루의 몇 안 되는 열어있던 점포 중 한 곳, 맥도널드에서 아이스크림을. 신메뉴라고 딸기 아이스크림이 있길래 냉큼 사 먹기로 한다. 선선한 선양의 밤, 한산한 거리, 달콤한 아이스크림. 나쁘지 않은 선양의 첫째날이다.
[선양 1일 차 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