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볕이드는창가 Sep 18. 2021

‘중산’광장에 서 있는 마오쩌둥

선양(沈阳) 지역연구 1일차 (2)

손중산의 자리에 마오쩌둥이


씨타졔의 밤거리 산책을 마치고 우리는 내친김에 숙소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직선거리로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중간중간 구경도 하고 선양 거리도 구경할 겸 걷기로 한 것이다. 도중에 우리를 맞이한 곳이 바로 중산광장(中山广场). 지도로 보면 둥그렇게 생긴 이 광장은 실제로도 원형의 공터이고 그 공터 주위로 선양의 역사적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1913년에 "중앙광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만들어졌다는 이 광장은 국민당 통치 시기에 쑨원, 손중산의 이름을 따 "중산광장"이라는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고 마오쩌둥이 리더가 된 뒤에도 이 중산광장이라는 이름은 유지되었는데, 이 이름이 잠시 바뀌었던 시절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문화 대혁명 시기.


마오쩌둥을 절대권력으로 세우기 위한 문화 대혁명이 진행되던 시기 이곳은 붉은 깃발, 즉 "홍기광장(红旗广场)"이라는 이름으로 개명되었다고 한다. 하여간 빨간색 참 좋아해. 이후 문화 대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뒤 1981년, '국부' 손중산을 기념한다는 의미로 이곳은 다시 중산광장이라는 옛 이름을 되찾았다.


광장 중심을 장식하는 상징물도 시대에 따라 바뀌어왔는데, 본래 광장이 조성되었던 초기는 일본이 이곳을 점령한 시기로, 일본이 이 광장 중심에 옥으로 된 기둥을 세웠다고 한다. 메이지 37년의 전쟁을 기념하는 문구까지 심어서.


이후 국민당 정부가 들어서 이 기둥을 비석으로 바꾸고, "국민지상 민족지상"이라는 문구를 새겨 넣었다고. 이후 공산당 정부로 바뀌면서는 아예 그런 비석은 다 없애고 아예 마오쩌둥의 동상을 세웠다. 그 어떤 말보다 그냥 마오쩌둥의 동상을 놓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고 여긴 듯. 이것이 "중산"광장에 왜 마오쩌둥이 서 있었는지, 그 이유다.



현재 선양 시민들이 밤에 나와서 산책하고 선선한 공기를 즐기는 광장인 이곳의 주변에는 앞서 언급한 대로 일본풍, 유럽풍의 역사 깊은 건물들이 8개나 들어서 있다. 그 모습이 상하이와 비슷하다고 하여 이곳은 선양의 '와이탄(外滩)'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이전에 이곳엔 요코하마 은행, 일본 조선은행 등 금융기구가 모여 있었고, 그에 더해 호텔이나 경찰서, 철도국 등도 있었는데 그 건물들이 아직까지 자리하고 있다. 지금도 그 건물들은 랴오닝 호텔(辽宁宾馆), 공상은행, 공안국(≒경찰서), 초상은행, 화하은행 등 이전과 비슷한 쓰임새로 사용되고 있는 중이다. 그런 점에서 정말 와이탄과 유사하긴 하다. 아쉽게도 사이를 흐르는 강은 없지만.


랴오닝호텔과 중산광장


낮에 왔다면 좀 더 그 건물의 모습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겠다 싶기도 한데, 마오쩌둥 동상과 랴오닝 호텔을 비추는 조명을 보니 밤의 중산광장도 나쁘지 않다 싶다. 광장이 넓고 주변에 시야를 가리는 높은 건물이 안 보여서 그런지 여기서 대형 연을 날리려고 시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쉽게도 실제로 그 연이 하늘을 나는 것까지는 보지 못했지만.




기차역을 지나 어둑한 거리를


중산광장을 지나 또 조금 걸어가자 육교 너머로 원형의 조명이 보인다. 얼핏 보면 관람차 같이 보이는 모습에 무엇인지 궁금해서 좀 더 가까이 걸어가 봤는데 알고 보니 선양 기차역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원형의 무언가가 바로 기차역


이미 밤이 깊은 시간, 선양 기차역(沈阳站)은 어쩐지 좀 더 어둑한 느낌이다. 어딘가로 가는, 혹은 어딘가에서 온 사람들이 기차역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왠지 저녁 먹으러 갔을 때 씨타졔에서 봤던 험악한 패싸움이 머릿속에 떠다닌다. 낯선 곳에 가면 기차역이나 버스 터미널은 피하라고들 하는데, 우리는 왜 제 발로 그곳으로 걸어갔단 말인가. 지금 생각하면 좀 무모했던 것 같기도 한데, 그땐 '다 사람 사는 동네인데 별 일 있겠나' 싶은 마음으로 갔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크로스백을 품섶으로 끌어당긴 것은 본능적인 조치였을까.


멀리서 봤을 땐 화려했지만 막상 가까이 가니 무서웠던 기차역


기차역에서 간단히 사진을 찍고 나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재촉한다. 가는 길에 '차 없는 거리' 같은 보행가가 있어 그곳을 지나 돌아가기로 했다. 그 보행가의 이름은 타이위안루 보행가(太原路步行街). 선양에서 두 번째로 번화한 거리라고 하는 이곳은 일본이 점령했을 당시 긴자의 모습을 본떠 조성한 상업구라고 한다. 본래 최신 유행을 엿볼 수 있는 굉장히 번화한 거리라고 하는데, 아쉽게도 우리는 이미 10시가 넘은 시간에 방문한 터라 거리가 매우 한산했고 열어있는 상점도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사실 이런 번화한 상업거리는 어느 도시에건 다 있지 않은가! 지난번 다녀왔던 톈진에도 허핑루(和平路)라는 곳이 이런 분위기였고, 충칭의 해방비(解放碑) 근처도 그랬고, 내가 살고 있는 상하이 집 근처 난징시루 역시 그렇지 않은가. 번화한 상업거리는 어느 도시에나 있고, 사실 대부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기에 그다지 특별한 경험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곳을 첫날 저녁에 방문한 것이기도 하고.


어쨌든, 기왕 이렇게 된 거, 묘하게 입이 심심하니 달다구리 하나 사 먹기로 한다. 타이위안루의 몇 안 되는 열어있던 점포 중 한 곳, 맥도널드에서 아이스크림을. 신메뉴라고 딸기 아이스크림이 있길래 냉큼 사 먹기로 한다. 선선한 선양의 밤, 한산한 거리, 달콤한 아이스크림. 나쁘지 않은 선양의 첫째날이다.




[선양 1일 차 일정]



매거진의 이전글 안녕하세요, 건조한 도시 선양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