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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Sep 25. 2021

선양(沈阳) 지역연구 2일차 (1)

9·18 역사박물관과 베이링공원(北陵公园)

외면해선 안 되는 역사


지난 9월 18일, 중국 웨이보에는 아래 오른쪽에 보이는 것과 같은 이미지를 포스팅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국가의 치욕을 잊지 말고 우리 스스로 강해지자'는 표어를 담은 이미지 중앙에는 돌로 된 비석과 같은 조형물이 보이는데, 이는 바로 오늘 글에 소개될 선양의 9·18 역사박물관의 입구에 있는 장식물이다. 웨이보에 이 포스팅이 많았던 이유는 바로 올해가 9·18 사변이 일어난 1931년으로부터 9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난징에 가면 난징대학살 관련 박물관을 가야 하듯, 선양에 왔으면 이곳, 9·18 역사박물관은 들러야 한다. 난징에서처럼 선양에서도, 둘째날 오전에 바로 이곳 일정을 잡았다. 흔히 '만주 사변'이라고도 불리는 9·18 사변은 일본이 중국 동북부 지역, 즉 만주 지역을 침략하여 만주국을 성립한 사건으로,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에 이르는 일본의 침략전쟁의 시초가 된 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난징 대학살과는 또 다른 의미로 중국에게 크나큰 아픔을 남긴 사건이다. 한국 역시 비슷한 역사적 경험이 있기도 하고, 난징과 선양의 역사를 다루는 시각이 어떻게 다른지가 궁금하여 방문하게 되었다. 중국인들에게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는 곳이라 그런지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이곳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도 꽤 많았다. 난징 대학살 박물관처럼 이곳도 입장료는 없다.



박물관 입구에서 출입문까지 가는 공터에는 앞서 이미지에서 봤던 이곳의 상징인 조각상과 9·18 사변을 절대 잊지 말자는 의미의 종이 서 있다. 난징 대학살 박물관 입구에는 사건의 참혹함을 느끼게 해주는 석상들이 서있는데, 선양은 전시장 안쪽에 그런 느낌의 전시물들이 많고, 오히려 입구 밖에는 참혹함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석상보다는 사건을 절대 잊지 말자는 의미의 오브제들이 많이 있다.



박물관 관람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굉장히 자극적'이라는 생각이었다. 난징 대학살 관련 박물관을 갔을 때보다 이곳을 관람한 후 일본에 대한 분노가 더 커졌달까. 난징보다 훨씬 더 대규모로 자행된 일이어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전시 내용에서 훨씬 더 큰 분노가 보였고, 일본이 중국에서 한 일들에 대해 글자 그대로 '가감 없이' 보여주려고 하는 면이 느껴졌다. 전시장 밖에서 느꼈던 어떤 완곡한 느낌보다, 실제 전시물은 훨씬 더 직설적이었고 참혹했다.


일본은 만주 지방을 침략한 후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를 데려다가 괴뢰 정권을 세우고 위만주국을 성립한다. 아마 영화 <마지막 황제>를 봤다면 꽤나 익숙한 역사적 사실일 것이다. 그 뒤로 이 위만주국을 앞세워 다양한 일들을 감행하는데, 그중에 많이 알려진 것이 아마도 '마루타'일 것이다. 실제로 많은 중국인들이 일본의 생체 실험에 이용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생체 실험, 세균 실험 등과 관련된 부분 역시 전시 내용에 직접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실제 이 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어느 누군가가 보아도 일본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 분노를 느낄만한 내용들이다. 


난징과 선양의 박물관 두 군데를 모두 다녀온 뒤 생각한 건, 그 전시의 구성이 참 다르다는 것이었다. 난징은 전시 시작부터 사건의 참혹함과 잔인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두었지만, 마지막엔 세계 각국이 중국에 보내줬던 도움들을 강조하고, 평화의 시대로 가자는 의미의 조각상으로 마무리하게 했다면, 선양의 서술은 다소 다르다. 밖에서 봤을 땐 온건한 느낌으로 보이지만, 사실 내면은 격정적인 분노가 가득하다. 이것이 어떤 지역적인 특색을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사건에 대한 정서의 차이를 반영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청나라의 시작을 연 자가 잠든 곳, 베이링공원(北陵公园)


청나라의 마지막 모습을 담았다고도 볼 수 있는 9·18 역사박물관을 나와 이번에는 청나라의 문을 연 개국 황제 홍타이지와 그의 부인이 묻혀있는 곳, 베이링공원(北陵公园)으로 향한다. 실제 청나라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는 후금의 1대 지배자는 누르가치였지만, 청나라를 개국한 창업 군주는 이곳에 묻혀있는 홍타이지다. 현재는 200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홍타이지와 그 황후의 능, 청 소릉(昭陵)을 포함한 능원(陵园)을 공원으로 조성하여 개방하고 있는데 그것이 베이링공원(北陵公园)이다. 입장료는 공원과 황릉을 포함한 입장권 기준 50 위안, 우리 돈으로 만 원 조금 안 되는 가격이다.



공원 입구를 들어가면 넓은 면적의 호수와 광장을 포함한 능원이 나오고, 거기서 또 조금 더 들어가면 홍타이지의 무덤인 소릉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기온은 다소 높았어도 날씨가 화창하고 공기가 쾌적해서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꽤 있었다. 공원에는 나들이 나온 사람들을 위한 각종 먹거리와 놀거리가 있었는데, 뻥튀기를 파는 곳이 한국의 공원을 떠올리게 했다. 



공원 중심에 있는 넓은 호수는 허화후(荷花湖, 연꽃 호수라는 뜻)라는 그 이름에 맞게 수많은 연꽃을 피울 준비에 한창이었고, 조금 더 들어가니 꽃으로 된 바다, 화하이(花海)가 펼쳐져 있었다.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붉은 꽃이 잔뜩 피어있었고 그 곁에서 사진을 찍는 중년의 여인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항상 느끼는 건데, 이런 곳에서 중국인들은 항상 진심이다. 붉은 꽃에 어울리는 사진을 찍기 위해 일부러 붉은 옷을 캐리어에 챙겨 와서 갈아입는 사람도 볼 수 있었다. 



꽃의 바다를 한참 보다 보니 저 멀리 황금색으로 빛나는 무언가가 눈에 띈다. 가까이 가보니 황금색을 칠한 용이었다. 황제가 묻혀 있는 곳이라 그것을 상징하는 용인 건지, 아니면 어떤 풍수학적인 이유가 있어 만들어둔 조형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손도 쫙 뻗고 있고, 입에는 여의주까지 물고 있었다. 황금색의 용이라,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상징을 모아놓은 것 같아 아마 지금껏 무척 사랑받았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중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공원의 풍경에 익숙해질 때쯤, 공원의 일부라고 하기에는 다소 이질적인 문이 하나 등장한다. 마치 '이곳부터는 너희들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청 소릉의 시작을 나타내는 경계선이다. 얼핏 보기에는 난징에서 봤던 명 효릉의 느낌과도 유사해 보이는데 황제를 나타내는 색상들이 주는 유사함이고, 자세히 보면 건축물의 디자인이나 디테일 등이 명나라의 그것보다 더 복잡하고 화려한 편이다.



몇 겹의 문을 모두 통과하고 나면, 낙타와 코끼리, 말 등을 돌로 조각해둔 조각상들이 등장한다. 이곳에 묻힌 사람의 지위의 고하를 상징하는 것들이다. 이곳을 지나면 팡청(方城), 즉 본격적인 황릉이 있는 구역이 나타난다. 우리가 갔던 날에는 이 팡청에 유난히 많은 까마귀가 보였는데, 무덤에 까마귀까지 보이니 묘하게 을씨년스럽고 오싹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래 사진에 점으로 보이는 검은색이 모두 까마귀다.



정방형으로 보이는 배치된 묘역의 건축물들, 사람들이 마음을 담아 던진 지폐와 동전들로 가득한 제단, 어마어마한 크기의 돌로 된 비석까지, 청나라를 만든 개국 군주에 대한 후세의 존중의 의미를 은연중에 느낄 수 있었다. 한족 스타일의 건축물과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되다가도 교묘하고도 넌지시 달아둔 만주족 느낌의 건물 장식을 보니, 소수의 위치에서 절대 다수인 한족을 지배해야 했던 만주족이 그 시작이 되는 장소에서까지 고유의 문화를 놓고 싶지는 않았던 마음이 드러나는 듯했다.



이곳 청 소릉은 선양 고궁(沈阳故宫)과 함께 200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사실 와보면 생각보다 대단한 것은 없다. 베이징이나 난징의 축소판 같은 느낌도 얼핏 든다. 그러나 뒤에 있을 선양 고궁에 대한 글에서도 이야기하겠지만, 선양이라는 도시가 청의 시작이었던 점, 그리고 그 시작점에 만들어진 개국 초기의 건축물이라는 점이 주는 특별한 느낌이 분명히 있다. 물론 쾌적한 날씨와 인구밀도가 높지 않다는 점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준다. 소박하고 수더분하지만 단단하고 올곧은, 그런 느낌이 이곳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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