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양(沈阳) 지역연구 2일차 (3)
흡사 전쟁 같았던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선양 고궁(沈阳故宫)으로 향했다. 선양이 가지고 있던 수도로서의 지위를 보여주는 곳이다. 2004년 베이징에 있는 자금성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은 청나라 2대 황제까지 머물던 황궁이었고, 이후 청이 베이징으로 천도한 이후에는 황제가 동북지방에 머물 때 있던 황궁으로 쓰였다고 한다. 인당 60 위안의 입장료를 내면 들어갈 수 있는데, 표 뒷면에 선양 고궁의 상징적인 건축물 대정전(大政殿)과 황제와 황후의 캐리커쳐가 그려져 있었다.
선양 고궁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작다', '소박하다'라는 단어다. 개인적으로는 북경에서 다녔던 인민대가 떠오르기도 한다. 같은 고궁(故宫)이라는 이름을 가진 베이징의 고궁과 비교하면 선양의 고궁은 상대적으로 굉장히 아담하다. 속된 말로 '원조'라서 그런가? 쓸데없이 크게 지어서 과시하겠다는 느낌도 없고, 한족을 규모로 압도하겠다는 허세 같은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북경에서도 청화대, 북경대보다 인민대가 좋았던 것처럼, 나는 선양의 고궁을 와본 뒤로는 베이징보다는 선양의 고궁이 좋다.
또 떠오르는 것은 고궁 곳곳에 보이던 편액들이다. 한자 표기와 함께 만주족 고유 문자가 적혀 있었다. 지나가던 중국인 여행객 무리와 동행하는 가이드의 말을 엿들어보니, 선양 고궁은 편액의 오른쪽부터 한어 - 만주어 순으로 표기되어 있다면, 베이징 고궁은 편액의 오른쪽부터 만주어 - 한어 순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옛사람들은 오른쪽부터 글을 읽었으니, 베이징에 있는 고궁이 그 전통 문자를 훨씬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의미로 느껴지는데, 어쩌면 선양에 있을 때보다 베이징에 갔을 때 청나라 지도층이 훨씬 한족을 의식하지 않았나 싶다.
선양 고궁의 또 다른 특징은 자유분방함이다. 베이징 고궁이 오히려 한족을 의식해 형식에 조금은 구애받고 만들어진 반면, 선양의 고궁은 만주족이 가진 특유의 건축 문화를 잘 살리도록 만들어졌다. 어떤 곳에서는 강남의 기암괴석도 보이고, 처마나 도색 등에서도 기존 한족들의 건축물과는 다른 모습이 보인다. 한족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선양 고궁하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앞서 말한 상징적인 건축물인 대정전(大政殿)이다. 이곳은 상징적인 건축물이기도 하지만 대표적인 건축물이기도 하다. 왜냐고? 전 선양 고궁을 통틀어 이 건물이 가장 화려하고 예쁘기 때문이다. 그 말인즉슨, 이곳을 만든 사람들이 이 건물만큼은 눈에 띄게 짓고 싶어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곳 대정전을 이렇게 화려하게 짓고 싶었던 이유, 그것은 이곳이 황제의 즉위식이나 군사 출정, 황제의 조서를 내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베이징의 천단(天坛)과 다소 흡사하다.
황궁 가장 안쪽에 후원처럼 꾸며놓은 정원이 있어 잠시 머물렀다. 곳곳에 피어 있는 색색의 월계화도 물론 아름다웠지만, 그보다 건물의 금색, 붉은색과 정원의 초록색, 연두색이 이루는 색의 조화가 아름다웠다. 조용하고 한적한 황궁 한 구석, 이따금 하늘을 나는 새들과 떠가는 작은 구름이 선양 고궁에 대해 이날 내가 느낀 모든 것을 대변하는 듯했다. 이렇게 한적하고 좋은데 이곳 후원에 왜 사람이 없는지 생각해보니, 이곳을 보러 온 소위 관광객들은 다들 화려한 대정전에 모여 사진을 찍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대정전과 이곳 후원은 마치 베이징과 선양 같다. 한쪽은 화려하고 누구나 경탄하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무척 의식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수수하고 소박하고 존재감이 뚜렷하진 않지만 다른 이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나는 선양의 고궁이 좋다. 소박하지만 올곧고 자기만의 색깔로 빛나고 있는 그 모습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