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양(沈阳) 지역연구 마지막날
중국 대륙에서는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칭송받지만, 대만에서는 매국노 취급을 받는 논란의 인물이 있는데, 선양에는 그가 살았던 생가가 존재한다. 장씨수부(张氏帅府)가 바로 그곳이다.
이곳은 동북지방 군벌 출신이던 장쭤린(张作霖)과 그의 아들 장쉐량(张学良)이 살던 집으로, 다른 이름으로는 대수부(大帅府)라고 불린다. 수(帅)라는 글자가 중국어에서 '멋있다'라는 형용사 외에도, '장군'이라는 의미가 있으니 '대장군의 저택'이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사실 이 두 사람이 '장군'으로서 역할을 했던 곳은 공산당이 아니라 국민당, 중화민국이라는 사실이다.
본래 국민당 밑에서 일하던 아버지 장쭤린이 일본의 공격으로 사망하게 되자 아들 장쉐량은 일본에 대한 반감을 크게 갖고 있었다. 그런데 항일전선의 형성보다는 공산당을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던 장졔스에 반발하여 장쉐량은 서안사변(西安事变)을 일으키게 된다. 이 일로 국민당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고, 동시에 공산당은 불리하게 돌아가던 전세를 역전할 수 있게 된다. 공산당에서 장쉐량을 칭송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다만 대륙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공신(千古功臣)'으로까지 칭송받는 이 사람의 삶은, 사실 그리 반짝반짝 빛나는 인생은 아니었다. 서안사변으로 인해 장졔스의 명령으로 연금 생활을 하게 되었고,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연금 생활이 그의 인생의 거의 절반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를 칭송해주는 대륙에서는 정작 청년시절 외에는 얼마 살지도 못했다. 어찌 보면 대륙에서의 칭송보다 그 자신이 진정 원한 것은 대만, 국민당의 용서가 아니었을까?
아무튼, 다시 이곳 장씨수부로 돌아와서, 이곳의 입장료는 '선양 금융박물관'과 함께 관람할 경우 50 위안, 한화로 8천 원 정도 되었다.
아무래도 이 지방 군벌의 저택이었던 만큼, 넓은 부지 안에 동양식, 서양식의 각종 건물들이 채워져 있었다. 물론 그동안 약간의 보수 과정은 거쳤겠지만 원형을 보존하기 위한 유지보수라고 생각했을 때 확실히 굉장히 화려한 저택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일부 건물 안에는 장쉐량의 일생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서술해놓은 전시도 진행되고 있었다. 물론 전시의 흐름은 찬양 일색이었다. 어쩌면 오늘날 같이 애국 사상을 강조하는 중국 사회에서 장쉐량 같은 인물은 (그의 행동이 정말 공산당을 위한 목적이었는지는 차치하고) 환영받을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관람을 모두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대문 앞에서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장쉐량과 그 아버지 장쭤린 가족들의 일화 몇 가지를 극화하여 일요일 10시, 11시에 하는 공연 프로그램이었다. 연극 내용은 사실 눈에 잘 안 들어왔고, 나는 선양, 6월의 낮, 그 땡볕 아래서 공연하느라고 미간을 가득 찌푸린 배우들의 얼굴만 눈에 들어왔다. 사실 관람을 시작하기 전 백스테이지의 모습을 이미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선양, 그 오후의 햇볕은 꽤나 살인적이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는 선양 금융박물관. 본래 장 씨 가족이 갖고 있던 개인 은행인 변업은행(边业银行) 자리를 1930년 독일 건축가가 리모델링하여 만든 박물관이다. 이런 배경을 모르고 봤을 땐 왜 입장권을 통합해서 파는지 몰랐는데 정말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있고 박물관의 전시 내용도 꽤나 흥미로워서 방문한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박물관 내부는 초창기 은행이 가지고 있던 모습들을 밀랍 인형 등으로 실감 나게 전시해둔 전시장과 역대 동전, 지폐, 기념주화 등의 전시 등 금융업과 관련된 역사적인 변천 등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도 재미있었을 전시들이 많았다. 물론 중국에서는 어린 아이나 다를 바 없는 우리에게도 무척 흥미로웠다. 금융박물관은 몇 가지 내부 사진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오전 일정을 마치니 이제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이 15시라 적어도 12시 30분에는 시내에서 출발해야 했다. 제대로 된 밥을 먹기에는 시간이 애매해 우리는 괜찮은 카페에서 브런치처럼 간단하게 점심 한 끼를 해결하기로 했다. 검색을 통해 발견한 곳은 칭녠따졔(青年大街)에 있다는 카페 QUAFF.
블루베리 치즈 타르트와 훈제연어 샌드위치를 시켰다. 오픈 키친에 깔끔하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아서 괜찮은 가게라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며 찾아보니 이미 폐업을 했는지 나오질 않는다. 벌써 2년이 넘게 흘렀으니, 중국 기준으로는 강산이 변할 세월이긴 하지. 어쩐지 조금 아쉽다.
훈제연어 샌드위치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선양도선공항으로 향하는 택시에 탔다. 도착한 날부터 가는 날까지 선양의 공기는 정말 쾌적했고, 하늘은 푸르렀다. 한적해서 좋았던 고궁과 배가 터질 듯했던 동북 요리 음식점이 끝까지 기억에 남는다. 청나라와 만주족의 처음이자 끝을 간직한 도시. 선양은 소박하고 한적한, 그러나 그 특유의 매력이 있는 도시였다.
[선양 3일차 일정]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랴오닝 선양(랴오닝성은 번체자로 쓰는 게 확실히 예쁘다), 은 내가 가본 중국 도시들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도시였다. (이 기록은 하얼빈을 다녀오고 나면 깨질 것이다.) 인구 8백여만 명, 어디를 가든 한적하고 편안했던. 기온이 꽤 높았지만 하나도 습하지 않아서 밤에는 정말 쾌적했다. 선양은 청나라 초기의 수도(성경)였기 때문에 만주족 문화와 선양 고궁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마치 베이징을 예습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선양은 또한 9·18 사변이나 위만주국 성립 등 비통한 근대사 역시 가진 도시다. 이번 여정에서 꽤나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얼런쫜 공연도 빼놓을 수 없다. 공연 중 동베이 사투리도 꽤 많이 있어서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분위기가 정말 뜨거웠고 보는 내내 즐거웠다. 다음엔 동베이 사투리를 좀 배운 뒤에 다시 보러 가고 싶다. 동베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