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6월의 일입니다)
상하이로 오기 전 교육을 받으며 활동 계획을 짤 때, 중국 박람회 정보를 모아둔 웹사이트에서 관심 분야와 관련된 박람회 일정을 추려놓고 스케줄을 짰다. 중국은 땅이 워낙 넓어서인지 지역마다 열리는 박람회가 무척 다양하고 빈번한데, 그중 가장 관심이 있었던 박람회는 바로 상하이 MWC였다. 아무래도 회사가 속한 업계와 연관이 되기도 했고, 마침 거점도시인 상하이에서 열리는 박람회였기 때문이다. 물론 유럽에서 열린다는 "진짜" MWC보다야 못하겠지만, 아시아에서 최대 규모로 진행되는 모바일 관련 행사인 만큼, 배울 점도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참가를 예약하는 등록 과정이 꽤나 복잡했다. 다양한 개인정보를 제출해야 했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저렴한 비용으로 참관 가능한 방법이 있는지 공지를 자세히 읽어보았지만 결론은 전시를 보기만 하려고 해도 650위안, 우리 돈으로 10만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해야 했다. 그때 문득, 이전에 다녀왔던, 비용이 저렴했지만 그만큼 볼거리도 저렴했던 박람회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싼 게 비지떡이라 하니 비싼 건 좀 낫지 않을까? 어느새 손가락이 참가 신청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2019년의 MWC 상하이는 6월 26일부터 3일간 진행되었다. 당시 이미 8회째를 맞은 이 행사는 아시아에서는 최대 규모의 IT 관련 박람회로, 모바일 및 IT업체, 주변기기 업체 및 통신사 등이 주축이 되어 운영되는 행사다. 19년의 MWC는 "智联万物(Intellignet Connectivity)"를 큰 테마로, 세계 최초로 모든 전시관이 5G 네트워크라는 주제를 관통하게 설계되었다. 정말 전시장 내에 5G와 智能(Smart)이라는 단어가 어디를 가나 보였다. 5G가 정말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된 듯.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5G라는 테마 외에는 달리 내세울만한 키워드가 없는 건 아닌지 생각이 들었다. PC나 TV, 휴대전화를 포함한 모바일 기기의 혁신, 괄목상대할만한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5G라는 키워드를 붙잡고 늘어지는 듯한 느낌을 전시장 곳곳에서 많이 받았다.
5G Network라는 키워드로 MWC가 전달하고자 한 것은, 광범위한 네트워크가 우리 모두를 연결하고 있으며,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 모두의 정보가 어딘가에 수집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해보면 우리 삶이 매우 편안한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어떤 도시를 5G 네트워크가 전면 커버해서 화재나 돌발 상황 발생 시 실시간으로 안내해준다면, 혹은 환경오염 정도를 실시간으로 체크해서 시민들에게 공지한다면? 이런 부분은 확실히 주민들에게는 큰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조금 무섭기도 하다. 도시 모든 각도로 CCTV가 설치되고, 개인의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중앙 서버로 이동시키고,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기록되고 그 기록을 삭제할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5G 네트워크가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은 분명 매우 넓고 유용하지만, 그 정보를 수집한 뒤 어떤 방향으로 운용할지, 중요하지 않은 정보는 어떤 식으로 폐기할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 없이 진행되는 5G에 대한 무분별한 숭배는 조금 불편했다.
금번 MWC에서 5G만큼 많이 보였던 단어는 Smart. 모든 영어를 중국어로 바꾸기 좋아하는 그들답게 Smart의 중국어인 智能이라는 단어가 정말 많이 보였다. 기존에는 휴대전화에 붙는 수식어 정도로 느껴졌던 스마트라는 단어가 이제는 가전을 넘어서서 보안, 금융, 교육 등 다양한 분야로 옮겨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Smart라는 단어와 관련해 좀 신선하게 느껴졌던 부분은 AI 스피커의 진화와 각종 로봇의 등장이었다. AI 스피커 자체는 사실 별로 신선할 것이 없었지만, 어떤 업체의 스피커는 아예 홀로그램 영상이 나오는 화면이 탑재되어 스피커가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인물과 대화하는 느낌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가전제품이 친구로 진화하는 셈이다. 또 몇 개 업체들이 전시장에 로봇을 전시해 눈길을 끌었는데, 한편으론 점점 인간의 가치가 소멸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간담이 서늘해졌다.
불과 몇 달 전, 자동차를 하나도 모르면서 모터쇼에 가서 삼만보를 찍은 뒤, 또 같은 곳에서 삼만보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정말이지 중국의 박람회는 튼튼한 다리를 만들어주는 일등공신이다.
650위안짜리 비싼 박람회답게 다양한 체험거리와 볼거리가 있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머릿속에 남은 단어는 결국 5G, Smart라는 단어뿐이었다. 실시간으로 어디서나 편하게 네트워크 이용이 가능하고, 이전에는 번거로웠던 일들이 기계 하나면 다 해결되고, 심지어는 손도 움직이지 않고 눈으로 응시하기만 해도 상품 주문이 가능한 세상. 언젠가 보았던 SF 영화의 한 장면이 이곳에서는 곧 펼쳐질 현실인양 전시되고 있었다.
의문이 남는다. 어디까지 갈까?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떤 식으로 적응할까? 나는 그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진정 되어 있는가? 다음 MWC는 화려한 기술의 나열만이 아니라 이미 다가온 5G 및 스마트 기술의 바람직한 이용 방향에 대한 솔루션을 제시하는 박람회이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