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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Oct 31. 2020

돈이 있는데 왜 쓰지를 못하니

은행계좌 및 위챗 페이 개통

이방인이 덜 이방인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은 무엇일까? 일단 몸을 누일 곳이 있어야 할 것이고, 돈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것들만 있으면 완전히 그 사회에 녹아들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적어도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를 갖추는 셈이 되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해의 둘째 날, 내게 주어진 미션은 두 가지였다. 은행 계좌 및 위챗 페이 개통, 그리고 임시숙소를 떠나서 앞으로 근 1년을 살게 될 고정 숙소, 즉 집을 구하는 것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돈 관련 문제를 먼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돈과 관련된 아주 당황스러운 (중국어로는 尴尬 라는 말이 아주 잘 어울리는 상황) 상황은 전편('다시 만나 반가워, 상해야!' 편)에서 아주 소상하게 기술한 바 있다. 솔직히 지금 돌이켜보면 친절한 기사 아저씨를 만났으니 망정이지 조금만 까칠한 아저씨를 만났어도 멘붕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상해 첫날을 완전히 망쳐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둘째 날 가장 먼저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어제 밀린 택시비를 지불하는 것이었다. 27.61위안이니까 한국 돈으로야 오천 원 남짓한 돈이지만 이 돈은 내게 죄책감을 안기기 충분했다. 얼른 계좌를 만들어 이 찝찝한 감정을 떨쳐내야 했다!


https://brunch.co.kr/@jineye2199/17


드물게 파랗던 상해의 하늘, 이 중에 내가 살게 될 곳은 어디일까?



사실 그때 내가 손에 쥐고 있던 현금은 정말 정말 많았다. 오죽했으면 호텔 보증금을 현금으로 지불할 정도였을까. 그런데 내가 현금을 쓸 수 있는 곳은 딱 그 정도뿐이었다. 전날의 택시비는 애교고, 식당에 가도 테이블마다 QR 코드가 붙어있어 QR 코드로 주문, 결제까지 다 해결해야 했고 가게에서 뭘 사더라도 현금을 주려고 하면 거스름돈이 없다며 안 받는 경우도 많았다. 이 정도이니 현금을 들고 다니는 사람도 당연히 점점 줄어들었고, 사람들의 이런 생활습관의 변화는 점점 현금을 쓸 수 있는 곳을 줄어들게 했다. 한국 같으면 신용카드, 혹은 현금카드로 결제할 일들이 중국에서는 다 어플로 결제가 가능했다. 중국인이 카드에 대해 불신이 많은 탓이다. 돈이 있는데 왜 쓰지를 못하니! 너무나 억울했지만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라(入乡随俗)고, 일단 계좌부터 만들고 어플에 연결해보기로 했다.


핀테크는 둘째치고 일단 생활비 등을 송금받아야 하니 계좌를 먼저 만들기 위해 은행을 찾아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지원금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금융 관련 용어의 경우 소통이 잘 되지 않을 경우 자칫하면 크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으므로 주거래 은행을 중국에 있는 우리은행으로 하기로 했다. 상해에도 몇 개의 우리은행 지점이 있는데, 그중에서 푸동에 위치한 上海分行에서 계좌를 만들게 되었다. 사실 중국에서 한국계 은행의 계좌를 개통하는 중국인은 막상 별로 없는 것 같다. 대부분 로컬 은행에서 만들고, 그게 당연하게도 생활함에 있어 여러모로 편하다. 한국계 은행을 이용하는 사람은 나처럼 한국에서 파견된 사람이나 한국에서 송금을 받을 일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듯하다.


은행에 도착해서 만약 첫마디로 중국어를 꺼낸다면 중국 직원이 대응을 해와 당황스러울 수 있다. 첫마디로 "한국어 할 줄 아는 분 어디 계시죠? (这里有会说韩语的人吗?)"라고 중국어로 한 마디 하면 한국어 가능한 직원이 응대를 해준다. 물론 중국어가 유창할 경우 중국어로 진행해도 되지만, 상술한 것처럼 금융 관련 업무를 처리할 땐 조금만 실수가 벌어져도 큰일이 생길 수 있으므로 기왕이면 모국어를 사용해 소통하는 것을 추천한다. 직원만 찾으면 한국에서처럼 쉽게 계좌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회사나 관련 기관에서 당사자의 파견을 증명하는 서류를 가지고 가면 그것을 기반으로 계좌를 만들어준다. 신용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한국과 다소 다른 점은, 중국에선 특별히 요청을 해야지만 종이통장을 발급해준다는 점이다. 요청을 하지 않으면 카드만 발급해주고, 이 카드의 번호를 계좌번호처럼 사용한다. 그렇다고 이 카드번호가 계좌번호인 것은 아니라서 처음엔 좀 헷갈린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금융 관련 거래(송금, 계좌 연결 등)를 할 때 통장번호, 카드번호 둘 중 하나만 사용하면 다 통한다. 앞에 말한 것처럼 특별히 요청해서 종이통장을 받는 중국인은 아주 드물기 때문에 굳이 둘 중 하나만 외워야 한다면 카드번호를 외우는 것을 추천한다.



은행에서 받게 되는 이 카드의 이름은 借记卡. 한국어로 하면 체크카드. 다만 앞서 말한 것처럼 중국인들은 카드에 대한 묘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서 이 체크카드로 뭔가 결제를 하는 사람은 없다. 결제 기능 자체가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한국에서 편의점에 가서 천 원짜리 무언가를 사도 습관적으로 체크카드를 내미는데, 만약 중국에서 체크카드를 내밀면 편의점 직원이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볼 것이다. '뭐지, 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카드로는 은행 ATM에서 돈을 뽑거나 돈을 보내는 정도만 가능하다. 호텔에 가서 '이걸로 보증금을 긁어주세요'라고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저쪽에 ATM 있으니까 돈을 뽑아 오세요'다. 은행에서 카드를 주면 잘 간직하기는 해야겠지만 카드만 만들어서 모든 일이 해결될 거라고 믿으면 절대 안 된다.


그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위챗 페이와 Alipay(支付宝) 연결! 한국인은 중국인과 달리 어플에 계좌를 연결하는 것이 훨씬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중국인은 정반대다. 카드를 가지고 밖에 돌아다니면 도난당할 가능성도 높고, 그럴 바엔 늘 손에 쥐고 다니는 핸드폰에 계좌를 연결하는 편이 훨씬 안전하고 편리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은행 계좌를 트기만 해서는 돈을 쓰기가 어렵고, 이 돈을 어플을 통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계좌를 어플과 연결하는 일을 해주어야 한다. 재미있는 것은, 계좌를 만들었다고 해서 바로 위챗 페이에 연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위챗을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New-be라면, 처음 금융거래를 트기 위해서는 나의 신분을 증명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현지에 있어야 한다. 그 증명의 방식을 위챗은 용돈(红包) 기능으로 구현하고 있는데, 이미 위챗을 6개월 이상 사용하고 있는 누군가가 나의 계정으로 단 1원이라도 红包를 보내주고, 내가 그것을 받아야 나라는 사람이 인증된 셈이 된다. 황당하지만 실제로 인구가 너무너무 많은 중국이라는 땅에서는 '꽌시', 즉 내가 아는 사람을 바탕으로 나의 신용도를 증명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나 역시 현지에 알고 있던 친구의 도움으로 위챗 페이 Block을 풀 수 있었고, 덕분에 편하게 1년을 생활할 수 있었다.




위챗 페이에 계좌만 연결되어 있으면 돈과 관련된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각종 어플에 결제계좌를 연결하여 위챗을 통해서 내가 OK만 하면 돈이 빠져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공과금도 지로용지에 찍혀있는 QR코드로 들어가면 위챗을 통해 지불할 수 있고, 메일로 전자영수증이 송부된다. 이뿐 아니라 여러 명이 밖에서 밥을 먹고 내가 대표로 돈을 지불했을 때, 해당 지불 내역을 바로 群收款이라는 기능을 통해 함께 먹은 사람에게 전달하고 더치페이를 진행할 수 있다. 위챗 친구끼리라면 송금도 편하게 할 수 있다.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아까 말한 红包 기능을 통해 예쁜 봉투에 담아 돈을 보낼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중국에서 이런 기능을 너무 편하게 사용해서 도리어 한국에 와서 좀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지금은 카카오페이도 많이 구현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여전히 이런 어플을 통한 금융거래에 경계심이 큰 한국인들은 사용을 좀 저어하는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위챗 페이에는 零钱(우리말로 하면 잔돈)이 있다. 위챗 페이에 연결된 계좌 중에서 어플로 옮겨놓은 돈을 의미한다. 만약 零钱에 돈을 옮겨두지 않으면 돈은 계좌에서 빠져나가게 되고, 이미 零钱으로 돈을 옮겨놓았다면 이 돈은 이미 계좌에서 어플로 옮겨온 금액이므로 어플 안에서만 빠져나간다. 혹시 나처럼 중국에 한정된 시간 동안 머무르는 경우에는 웬만하면 零钱에 많은 돈을 옮겨두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왜냐하면 零钱에 너무 많은 돈을 옮겨두었을 경우, 귀국할 시점이 되었을 때 그 돈을 계좌로 옮겨야 할 텐데, 어플에서 은행계좌로 돈을 옮기는 경우 수수료가 발생하고 꽤 비싸다. '들어올 땐 네 맘대로 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라는 우스갯소리처럼 말이다. 기왕이면 조금조금씩 쓸 만큼만 미리 옮겨두고 쓰는 것을 추천한다.


아, 드디어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빚진 돈을 갚았다! 연락처를 알았다면 위챗이라도 보내서 "어제 정말 감사했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 한마디라도 하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디디 추싱에 기사 연락처는 없어서 그러질 못했다.



빚도 갚았겠다, 두 번째 큰 미션을 수행하기 전 상쾌한 마음으로 허기를 채우러 간 곳은 난징동루(南京东路) 위치한 광동요리(粤菜) 집, 喜粤8(Canton 8). 미슐랭 투스타를 딴 집이라고 하는데, 꽤 신뢰할만한 맛집 평가 어플인 大众点评에서도 금일 기준 5점 만점 중 4.83점에 빛나는 집인 것으로 보아 사실은 꽤 유명한 맛집이었던 모양이다. 정작 방문할 당시에는 그냥 딤섬이 먹고 싶어 찾아간 곳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예약은 받지 않는다고 해서 현장에서 30~40분 정도 웨이팅 후 먹었던 기억이 난다. 2020 상해에서 꼭 먹어봐야 할 맛집 리스트(必吃榜)에도 올랐으니 혹시 상해에 있다면 한 번 가봐도 좋겠다. 다만 미슐랭 이름값과 와이탄 근처라는 지리적 요인으로 가격은 좀 세다.


大众点评에서 찾은 喜粤8号


지금 보니 뭘 굉장히 많이 시켜먹었는데, 가장 충격적이고 맛있었던 건 두 번째 줄 오른쪽에 있는 바삭새우창펀(脆皮鲜虾肠粉)과 세 번째 줄 오른쪽의 가재살 볶음밥(龙虾蛋白炒饭). 특히 창펀은 그때 처음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어서 눈이 번쩍 뜨였던 기억이 난다. 안에 튀김 부스러기 같은 것이 들어가 있어서 바삭바삭한 식감에 새우의 식감이 어우러져 있었다.



두둑하게 배를 채우고 부동산 중개인과 만나기로 한 곳으로 향했다. 집 구하러 다닌 일은 비록 같은 날 발생한 일이긴 하지만 내게 너무 많은 교훈을 남겼기에, 다음 편에 계속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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