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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Oct 24. 2020

다시 만나 반가워, 상해야!

작은 친절에도 감사했던 첫날

상해는 내 첫 해외여행지였다. 때는 바야흐로 2005년, 고등학교 1학년 수학여행으로 인생 처음으로 타봤던 비행기에 몸을 싣고 향한 곳이 중국의 상해, 남경, 소주, 항주, 이른바 강남 일대(江南一带)였다. 당시 내 중국어는 그야말로 초급 수준이라, 여행과 흥정에 대비해 가격 협상용 중국어만 열심히 복습해 갔고, 70위안짜리 손가방을 60위안에 샀다고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 돌이켜보면 그 흥정은 완전한 실패지만 말이다. 겉보기에 속아 딸기맛이 날 줄 알고 먹었다가 시기만 해서 한 입 먹고 버렸던 삥탕후루(冰糖葫芦)와 UFO처럼 생긴 건물, 동방명주의 기억도.


2013년, 대학 졸업 직전 운 좋게도 한국 모 기업과 제휴하여 진행하는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어 두 번째로 상해에 가게 되었다. 목적이 관광이 아닌 시장 조사였기 때문에 많은 곳을 돌아다니진 못했지만, 8월의 뜨거웠던 아스팔트 빌딩 속에서 약간의 시원함을 선사했던 예원(豫园)만은 인상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예원은 지금도 내가 상해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8년이 지난 상해는 그야말로 상전벽해였다. 


상해 예원의 모습.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상해를 보여주는 것 같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2014년 이후의 상해는 비록 몇 번의 짧은 여행을 가긴 했지만 대부분이 출장이었다. 거래선의 공장 방문을 위한 출장이었고 공장은 대부분 상해 교외에 위치했기에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았고, 그마저도 택시나 회사 차량 이동이 대다수였던 터라, 중국이나 상해 사람들의 생활을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거지도 QR 코드를 쓴다며?"라는 말을 귀에 인이 박히게 들었지만 그 실상을 막상 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2019년 3월 17일, 상해行 비행기에 올랐다. 대학생도, 출장자도 아닌 지역전문가의 신분으로.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안 떨리지?" 확신에 찬 그들의 질문에 나 역시 몇 번이나 스스로 되물었다. "상해는, 중국은, 나에게 정말 익숙한 곳인가?" 대학 전공이 중어중문학인 나에게 중국어 할 일이 떨리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라 하겠지만, 혼자 사는 것 자체도 처음인 내가 그것도 생면부지의 중국에서 1년을 살게 된다 생각하니 이건 완전 다른 개념이나 진배없었다. 



지역전문가 과정은 크게 네 가지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약 1~2주간의 '초기 정착 기간'. 이 기간 동안에는 임시숙소에 머물면서 고정 숙소가 될 집을 알아보고, 은행 계좌, 휴대전화, 어학원 및 학교 등록 등 1년간의 생활을 준비하는 일들을 진행한다. 두 번째는 '어학 집중 기간'. 이름에서 볼 수 있듯 현지어 학습에 집중하는 기간이며, 대부분 현지 대학에 있는 어학당에서 수업을 듣고 어학원 수업도 병행한다. 세 번째는 '정보화 기간'. 현지의 다양한 지역에서 지역 연구를 진행하면서 이 시기를 보낸다. 마지막으로 '전문화 기간'. 이 기간에는 비즈니스와 관련된 필드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현지 법인에서 법인 실습을 한다. 


푸동 공항에 내리는 그 순간, 아니 출국 수속을 밟는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실전이기에 사실 설레는 마음보다는 떨리는 마음이 더 컸다. 나름 단출하게 쌌다고 생각했던 짐이 막상 공항에서 가족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난 뒤부터는 왜 그리도 무겁게 느껴지던지. 그래도 다행히 공항에서 쑤저우(苏州)로 파견되는 지역전문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짐을 잘 옮겨 부치고 상해 푸동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에 타기 전 인사팀장님께서 일기장으로 쓰라고 주신 노트에 한 문장을 적었다. 이는 1년간의 지역전문가 생활 동안 늘 마음속에 담아둔 한 마디가 되었다.


새로운 생활 속에서 '나'로 살고 일정한 수확을 얻을 수 있길...
"希望新的生活当中能够做好自己,有一定的收获"


지역전문가 파견이라는 기회는 나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무척 귀중한 것이었다. 회사에서는 간혹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할 필요도 있지만, 상해에서 보낼 1년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함께 파견된 이들과 업무로 엮일 일도 없고, 심지어는 회사가 다른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다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능했다. 그런 소중한 시간을 나는 정말로 '나'를 위해 쓰고 싶었고, 살아가면서 해본 적이 없는 특별한 경험들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먼 훗날 2019년의 돌이켜봤을 때, '한 치의 후회도 없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한 해였다'라고 회고할 수 있었으면 했다. 




두 시간 남짓 비행을 마치고 상해에 갓 도착한 내게는 며칠 동안의 '초기 정착 기간'이 주어졌다. 첫날에 해내야 할 미션은 크게 두 개였다. 우선 고정 숙소인 집을 얻기 전까지 임시로 살 호텔로 가서 체크인을 해야 했고, 현대인의 필수품인 휴대전화를 자유롭게 사용하기 위해 현지 휴대전화 구입 혹은 SIM 카드 구매를 해야 했다. 


첫 번째 미션은 감사하게도 당시 상해에 계시던 주재원께서 지역전문가 파견자를 위해 회사 차량을 지원해주셔서 편하게 완료할 수 있었다. 출국 전 내가 임시숙소로 정한 곳은 난징루 보행가와 매우 가깝고 지하철 1, 2, 8호선 접근이 모두 용이한 인민공원(人民公园) 역 근처 르 로열 메르디앙 상하이 (Le Royal Meridien Shanghai, 上海世茂皇家艾美酒店)이었다. 우선 회사와 제휴가 되어 있는 호텔이라 계약가 적용을 했을 때 조금 더 저렴하게 예약이 가능했고, 상해 각 중심지와의 이동이 편리하고 주변에 편의시설이 많다는 점이 좋았다. 또 고정 숙소 후보지인 정안사(静安寺), 난징시루(南京西路), 중산공원(中山公园), 서가회(徐家汇) 등 지역들에서도 멀지 않아 고정 숙소 물색 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출국 전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내가 '신용카드'를 챙겨 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중국 대부분의 호텔에서 체크인을 할 때 실숙박요금보다 훨씬 많은 요금을 보증금(deposit, 押金)으로 미리 지불해야 하는데, 그럴 때 사용할 신용카드를 하나도 가져가지 않은 것이다. 회사에서 출장을 갈 때는 항상 법인카드를 사용해서 이 점을 해결했는데, 중국에 살러 가는 거라 혹시 카드를 잃어버리면 어쩌나 싶어 챙기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체크인 카운터에서 잠시 멘탈이 붕괴됨을 느낀 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현금은 안 되나요?"


호텔 직원은 프로페셔널한 웃음을 잃지 않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되죠." 그러나 그녀의 그 미소 뒤에는 약간의 당혹스러운 표정이 숨어있었다. 분명 '그 많은 돈을 현금으로 내겠다고?'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몰랐다. 초기 정착 기간 중 회사 지원금이 들어오기 전까지 사용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현금을 캐리어 구석구석, 책과 서류 사이사이에 분산시켜 담아 왔는지를. 다행히 엄청나게 많은 현금을 위험을 무릅쓰고 잘 가져온 덕분에 체크인 해프닝은 잘 마무리되었고, 며칠간 묵을 임시숙소가 정해졌다.




참 카메라 상견례로 여행까지 다녀온 것이 무색하게도 사진이 무지막지하게 흔들렸다. 첫날 나를 맞이한 상해의 하늘은 그야말로 '쏘 쏘'였다. 분명 북경이 미세먼지가 심하고 상해는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왔는데, 막상 상해에 도착해보니 공기가 너무 안 좋고 코가 아팠다. 북경으로 간 지역전문가들은 오히려 하늘이 너무 맑다고 자랑을 해왔다. 두 가지 이유가 있겠는데, 상해도 겨우내 난방을 틀어 미세먼지가 증가했을 것이고, 북경에 당시에 무언가 행사가 있어서 인위적으로 공장을 조금 덜 돌렸을 가능성이 있다. 이후 경험한 바에 따르면 겨울-초봄 즈음 상해 공기가 좀 안 좋은 편인 거 같고, 5월부터는 화창한 봄날을 볼 수 있는 듯하다. 고정 숙소를 잡은 후 공기청정기를 들였는데, 4월쯤 최고점을 찍고 이후에는 그렇게까지 심하지 않았다. 한국도 당시 비슷한 추세를 보였다는 점을 봤을 때, 상해의 미세먼지는 서울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두 번째 미션인 전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가회 전자상가(徐家汇数码城)를 가야 했는데, 오른쪽 사진은 서가회에 가기 위해 1호선 인민광장 역에서 산 교통카드다. 1년간 상해에서 나의 생활필수품이었다. 교통카드 하나에도 보증금이 있어서, 보증금 20위안에 본인이 알아서 충전을 해서 사용하면 된다. 만약 충전을 잊어서 돈이 남아있지 않을 때 기계가 보증금 안에서 교통비를 공제하게 되고, 이후 충전하면 그만큼을 빼고 충전되는 식으로 운영된다. 사실 이런 실물 교통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휴대전화 어플로도 지하철 이용이 가능하다. 'Metro 大都会'라는 어플인데, QR코드를 찍고 탑승하고, 하차하면 어플과 연결된 은행 계좌(Alipay)에서 자동으로 요금이 빠져나간다. 지하철 도착 예정 정보도 함께 제공되기 때문에 상해에 사는 많은 중국인들이 이용하고 있다. 다만 나의 경우에는 초반에 잠깐 이 어플을 사용하다가 워낙 아날로그를 더 좋아하기도 하고 어플 오류가 자꾸 나기도 해서 실물 카드로 갈아탔다.


서가회 전자상가는 지하철 1호선, 9호선, 11호선이 모두 지나는 서가회(徐家汇) 역에 위치해 있다. 서가회, 중국어 발음으로 쉬지아후이라는 곳은 중국 명나라 때의 학자 서광계(徐光启)가 이곳에서 농장도 하고 각종 저술도 했다는 데서 본래 '서 씨 성을 가진 자의 창고(徐家库)'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다 이곳이 짜오지아방(肇家浜)과 파화징(法华经)이라는 두 하천이 만나는 곳이라는 이유로 汇라는 한자가 붙어 지금의 '徐家汇'라는 이름으로 변하게 되었다. 무려 3개 지하철 노선의 환승역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상해 중심지에 위치한 무척 번화한 곳이며, 역 주변에 美罗城, 恒隆广场, 太平洋百货, 东方商厦 등 각종 쇼핑몰이 입점해있고 가까운 곳에 프랑스 조계지도 있어 둘러볼만하다.


19년 3월, 서가회의 밤. 왼쪽은 동방다샤, 오른쪽은 강회헝롱광장. 강회광장은 당시 리모델링으로 일부 지역만 입장 가능했는데, 19년 하반기쯤 공사가 완료되었다.


서가회 전자상가는 크게 太平洋数码와 百脑成이라는 두 곳으로 나뉘어 있는데 나와 동료 지전가들은 太平洋数码에 있던 China Unicom(中国联通)에서 상담 후 프로모션 요금제 가입 및 SIM 카드 구입을 진행했다. 중국에 가서 SIM 카드를 구입할 땐 보통 China Unicom이냐 China Mobile(中国移动)이냐 이 둘 사이에서 많이 고민을 하는데, 개인적으로 데이터 사용량이 많다면 Unicom을, 통화 사용량이 많고 벽지에 갈 일이 많다면 Mobile을 사용하라고 권하고 싶다. Unicom은 데이터 요금 할인과 관련된 정책이 많은 편이고, Mobile은 그런 정책은 좀 부족하지만 기지국이 구석구석 잘 깔려있는 편이라 벽지에 가도 신호가 끊기지 않고 잘 쓸 수 있다는 평이 많다. 나는 지도나 각종 어플 사용에 데이터 사용량이 훨씬 많을 것 같아 Unicom 1년 약정 프로그램으로 가입했다.


사실 이때 너무 힘들었다. 첫날이라고 한국에서 학교 수속 및 비자 발급 진행을 도와주었던 유학원 직원이 이런저런 일들을 도와주러 출장으로 나와 있었는데, 막상 전자상가에 도착하고 나니 휴대전화를 구입하는 사람과 SIM 카드만 구입하는 사람으로 무리가 나뉘게 되었다. 그러자 그 직원은 SIM 카드 구입자를 중국어가 가능한 나와 또 다른 지전가에게 맡기고 본인은 휴대전화 구입자들을 데리고 떠나버렸고, 덕분에 나는 내 일도 해결해야 하고 다른 지역전문가들의 의문을 통역도 해주어야 했다. 직원은 한 명인데 무리가 둘이니 그 직원도 어쩔 도리가 없었겠지만 나 역시 중국에서 생활하는 것은 처음인데 갑자기 다른 사람을 도와 잘 모르는 분야(통신사 프로모션)에 대해 통역을 해야 하니 여간 당혹스럽지 않았다.


결론적으론 잘 끝났고, 강제로 로컬 환경에 놓여버리니 굳었던 혀도 점점 풀려갔다.



두 개의 중요한 미션을 마치고 동료 지전가들과 저녁을 먹은 후 함께 택시를 타고 임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중국에 온 첫날이니 그 핫하다는 디디추싱(滴滴出行)을 써보기로 했고, 기사 아저씨에게 전화가 올 경우를 대비해 내가 택시를 불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뭣도 모르고 어플부터 써본 것이 화근이었다. 호텔에 거의 도착했을 때 요금을 지불하기 위해 현금을 주섬주섬 챙기던 내게 기사가 '현금은 받을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돈이 있는데도 지불을 할 수 없다니! 처음에는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라 괜히 트집 잡는 것인가 싶어서 화도 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안절부절못하는 내게 기사는 침착하게 어떤 이유로 현금을 받을 수 없는지 디디추싱의 작동원리부터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알고 보니 어플로 택시를 불렀으면 어플을 통해서 지불을 해야 요금이 지불되고 이 일이 마무리된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현금을 받을 경우 끝까지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때 우리는 아직 중국 로컬 계좌가 없었고, 당연히 위챗 페이나 Alipay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설령 현금이 있다 하더라도 어플 내에서 지불이 불가능했던 것이었다.


사용 방법도 모르면서 무작정 택시를 부른 점이 미안해서 나는 우리가 내일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 예정인데, 그때 계좌를 만든 후에 지불을 해도 되는지를 물었다. 그러니 기사는 당연히 가능하다며 일단 오늘 이렇게 내리면, 이 Order(订单)는 내일이 되어도 이 어플에 남아있으니 계좌 연결 후에 어플에서 돈을 지불하면 된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외국인 차별하는 것 아닌가 하고 무작정 경계부터 했던 것이 미안할 정도로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나 스스로 너무 가시를 세우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머쓱해졌다. 물론 다음날 계좌를 연결하자마자 그 택시기사 분께 바로 밀린 요금을 지불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택시기사의 친절도 결국은 비용을 지불받기 위한 자본주의 친절이었을 수 있다. 또 어플에서 미지불 Order가 많을 경우 나의 디디추싱 이용 권한이 막히기 때문에 결국 어떻게든 그 돈은 지불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해 첫날, 이런저런 일들에 부딪히고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보여준 친절한 태도는 당연하게도 너무 감사했다. 어쩌면 너무 날 서지 않아도 될지 몰라, 첫날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아래는 그날 썼던 일기다. 기록의 차원에서 남겨둔다.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今天第一次用了滴滴出行,还冒昧地无法用微信支付的情况下叫了车, 快车司机载了我们几个,发现我们只能付现金的时候非常尴尬,但马上亲切地跟我说明为什么无法收现金。当我不好意思地说明天办好账户后付款时,他爽快地说不要紧,还教了我微信支付连接之后怎么用滴滴出行付款。他说不要紧即使是可能是一种客套话,但对我这个外国人士来说是一句温馨的话。上海第一天,感觉不错!


(譯) 오늘 처음으로 디디추싱을 써보았다. 무모하게도 위챗 페이를 쓸 수도 없는 상황에 차를 불렀다. 기사는 우리 몇 명을 태우고 나서 우리가 현금으로만 지불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무척 난처해했다. 하지만 바로 친절하게 어째서 자신이 현금을 받을 수 없는지 설명해주었다. 내가 미안해하며 내일 은행 계좌를 만든 후에 바로 돈을 내겠다고 하니 그는 바로 조급하게 생각 말라며, 위챗 페이 연결을 한 뒤 어떻게 디디추싱에서 요금을 지불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그가 말한 '不要紧(괜찮아, 조급히 생각 마)'이라는 말은 어쩌면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었을지 모르지만, 나 같은 외국인에게는 무척 따뜻하게 들렸다. 상해 첫날, 괜찮은데?


[한국어 일기 in 인사팀장님 노트]


상해의 첫날이다. 어제저녁부터 은근히 긴장이 됐는데, 막상 돌아다니면서 중국어로 소통하니까 혀가 풀려가는 느낌이다. 다만 아직도 흥정만은 못하겠다. 집 보러 다닐 게 걱정이다.


짐이 무거웠지만 다행히 소주(苏州)로 가는 동료 지전가들 덕분에 무사히 게이트까지 잘 옮겼고, 상해사무소의 처음 뵙는 廖师傅(기사님)는 비록 운전이 좀 험했지만 임시숙소까지 잘 데려다주셨고, SIM 카드 구입에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요금제 설명이나 프로모션 소개 등) 그래도 어찌어찌 번호를 만들었고, 신용카드를 안 가지고 왔지만 현금 환전을 충분히 해와서 살았고. 처음으로 써본 디디추싱(滴滴出行)은 위챗 페이가 안 되어 기사님을 곤혹스럽게 했지만 다행히 기사님이 친절해서 잘 들어왔고. 요 며칠 비가 왔다는 상해도 꽃을 보여줬고. 즐거운 일이 이리도 많았네. 내일부턴 실전이다. 잘 계획해서 알차게 보내자!



임시숙소에 돌아온 뒤 호텔에서 찍은 바깥 풍경. 같은 곳을 찍었지만 풍경이 다르다. 11시를 기점으로 동방명주를 포함한 모든 불이 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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