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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Nov 07. 2020

이 한 몸 누일 곳 어디인가

상해에서 집 구하기

혼자 살아본 경험도 없고, 집을 혼자 구해본 경험은 더더욱 없던 나였다. 그래서 중국에 가기 전 가장 걱정했던 부분도 바로 이 집 구하기였다. 파견 전부터 노하우를 알려준다며 집 구하기 관련 무용담을 꺼내놓던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큰일이다'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에피소드들을 종합해 봤을 때 중국에서 집을 구할 때 가장 중요한 건 '협상 스킬', 전문용어로 '쇼부를 치는' 능력이었는데 내게 가장 결핍된 능력이 또한 그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식당에서 너스레를 떨며 '서비스 좀 더주세요~', '3인분 같은 2인분으로 해주세요~'하는 말도 잘 못하는 내가 과연 중국에서, 그것도 중국어로 그런 대화를 할 수 있을지, 출발 전부터 이미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다.


사실 한국에서 집을 구해본 적이 없어 이 두 가지를 정확하게 비교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국에서 집을 구할 때 가장 중요한 게 '협상 스킬'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일단 중국은 집주인이 가전가구, 인테리어까지 모두 직접 진행하는데, 임차인 본인이 생각했을 때 집안 소품들이나 가전가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꿔달라고 요구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집세에 대한 협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본인의 예산 범위보다 집주인이 제시한 집세가 싼데 집에 있는 TV가 너무 옛날 모델이라고 하면, 'TV를 좀 더 좋은 것으로 바꿔주면 집세를 매달 얼마씩 더 낼게요'라는 식으로 협상을 할 수 있다. 집주인에 따라서는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있고 그 과정에서 약간의 밀당이 필요하다. 또 집에 하자가 있을 경우에 임차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그 부분을 언급하고 집세를 깎거나, 수리를 요구하는 등의 협상도 물론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보면 나는 완전 '호구' 세입자였지만, 그래도 혹시 나중에 중국에서 집을 구하게 되실 분이 있다면 나의 실패 경험이 그분의 성공을 도울 반면교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이번 편을 써보도록 하겠다. 글은 2019년 3월의 상해를 기준으로 쓰여졌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상해는 서울의 10배에 달하는 면적을 자랑하는 대도시지만, 예산이나 치안 상태, 또 외국인 세입자에 대한 포용성 등을 감안했을 때 갈만한 곳은 일전에 소개한 바 있는 서가회(쉬자후이, 徐家汇), 중산공원(中山公园), 난징시루(南京西路)와 정안사(静安寺) 일대, 홍췐루(虹泉路), 이렇게 네 곳 정도로 좁혀볼 수 있다. 그 중에서 내가 파견 전부터 이미 소거한 곳은 홍췐루. 북경에 왕징(望京)이 있다면 상해에는 홍췐루가 있다고 할 정도로 이 곳은 상해의 유명한 코리안 타운인데, '진정한 중국통이 되기 위해 중국으로 파견된 것인데 코리안 타운이 웬말이냐!'는 묘한 거부감이 있어 갈 의향이 전혀 없었다. 파견 전에 우선 이렇게 홍췐루를 제외한 다른 세 곳을 고정숙소 후보지로 정해 두었고, 둘째날 점심을 먹고 나서 부동산 중개인을 만나 이 세 곳을 모두 다녀보았다. 세 곳을 다녀본 후기 및 홍췐루에 살던 분들의 후기를 종합해 간단히 적어본다.


1. 서가회(쉬자후이, 徐家汇) 일대

 - 장점: 어학당을 다닐 상해 교통대학(上海交通大学), 어학원 등이 모두 도보 거리에 위치해 있음.

    지하철역(1, 9, 11호선), 각종 상권의 집합소로 생활이 매우 편리

    집세가 비싸지 않은 편, 타 지역에서 원룸 구할 돈으로 방 2개짜리 집을 구할 수 있음

 - 단점: 집이 넓어 청소를 하려고 하면 매우 힘이 듦

    집이 넓은데 온돌이 없어 날이 추우면 보온이 더욱 취약 (그렇다, 넓은 것도 단점이다!)


2. 중산공원(쭝산꽁위엔, 中山公园) 일대

 - 장점: 지하철역(2, 3, 4호선)으로 교통의 요지, 도보 거리에 어학당 분점이 위치함

    특히 홍챠오 공항, 푸동 공항, 기차역 등이 모두 연결되는 2호선이 지나간다는 건 엄청난 장점!

    지하철역에 바로 쇼핑몰(롱즈멍龙之梦), 마트(까르푸)가 위치하여 매우 편리

    일본인 거주자가 많은 지역(中山公园-娄山关路 일대)으로 전체적으로 환경이 깨끗한 편 

 - 단점: 일본인이 워낙 많이 살아 집세를 좀 올려놔서 그런지 집세가 비싼 편

    같은 돈으로 쉬자후이에서 방 2개짜리 구하면, 여기는 원룸임

    어학당 규모가 작은 편이며, 당연히 온돌은 없음


3. 난징서로(난징시루, 南京西路), 정안사(징안쓰, 静安寺) 일대

 - 장점: 지하철 2, 12, 13호선(난징시루), 2, 7호선(정안사)이 지나는 중심가 중 중심가

    상권이 특히 발달한 곳이며, 인민공원, 난징동루 등 중심가와도 가까움

    외국인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치안이 우수함 (난징시루 파출소는 엄하기로 소문난 곳)

 - 단점: 외국인(특히 서양인)이 많이 사는 지역 → 집값이 비싸고 물가가 비싼 지역

    호화로운 쇼핑몰, 네온사인 가득한 거리와 달리 집 내부는 좀 초라할 수 있음


 4. 홍천루(홍췐루, 虹泉路) 일대

 - 장점: 상해의 한인타운 지역으로 그 어디보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환경과 먹거리가 있음

    온돌이 딸려있는 집들이 많아 겨울나기가 상당히 용이함

    상해 중심가에서는 다소 떨어진 위치이기 때문에 집세가 싼 편임 (네 지역 중 가장 저렴)

 - 단점: 당연한 이야기지만 언어 환경이 중국어 학습에는 적합하지 않음

    시 중심에서 다소 떨어진 위치로 교통이 불편함


사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도 주거에는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는 편이었고, 더군다나 상해에서 고르는 이 집은 1년이라는 한정된 시간 동안만 머무르게 될 곳이라 더더욱 큰 고민을 하고 고르고 싶지가 않았다. 그런 내가 그래도 양보할 수 없는 요소로 생각한 것은 학교/어학원과의 접근성, 그리고 치안 상태였다. 또 어차피 혼자 살 집이고 청소하는 것도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과하게 넓은 집은 필요가 없었다. 고민 끝에 내가 고른 곳은 이 매거진의 제목에서 이미 스포일러했다시피 '난징시루'였다. 상해의 청담동이라고 불릴 정도로 화려하고 돈 많은 사람들이 사는 지역, 그러나 구석구석 골목에는 역사가 숨어 있는 상해의 중심가. 내심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내가 청담동에 살아보겠나' 싶은 생각도 있었다.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지금 내게 난징시루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 되었지만, 하반기 쯤 '여기 살았다면 더 좋았겠다' 싶었던 곳은 '중산공원' 쪽이었다. 



난징시루로 마음을 굳히고,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중개인에게 나의 의사를 전하고 우선 집 내부의 하자는 없는지 계약 전에 체크해보기로 했다. 꼭 계약 전에 문제를 되도록 많이 발견하고 다 고쳐지면 계약을 하라는 말을 워낙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개인이 머리를 긁적이며 '사실은 지금 변기 버튼이 고장났는데, 너 입주할 때까진 고쳐 놓을게'라고 먼저 문제를 말해줄 때 뭔가 낌새를 챘어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집엔 너무도 많은 하자가 있었다. 그 하자들의 대부분을 계약을 이미 한 뒤에 발견해버렸다는 게 나의 가장 큰 실수였다.


첫 날 발견했던 하자들, 이건 애교에 불과했다


처음 집을 보러 갔던 날 발견했던 하자들은 꽤 소소했다. 중개인이 먼저 털어놓은 변기 버튼 문제를 제외하고, 부엌 서랍의 고장 및 전구 문제 정도였다. 입주 전까지는 꼭 고쳐놓겠다는 중개인의 말을 듣고 '고쳐질 때까진 중개료 안줘야지'라고만 생각했지 뭔가 더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들이 고쳐졌다고 계약을 하기로 한 날, 또 다른 문제들이 발견되었다.


추가로 발견된 문제, 그 땐 이게 끝인 줄 알았다


그래, 부엌에 토치가 올려져 있을 때 왜 수상하게 여기지 않았던 걸까? 알고보니 가스레인지 화구가 고장나 있었다. 토치를 쓰지 않으면 쓸 수 없다고 했다. 중개인은 '이게 뭐 그리 대수인가' 싶어 말해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버튼만 문제라고 했던 변기는 사실은 수압도 문제였다. 물이 거의 내려가지 않을 정도였다. 다행이었던 것은 집주인이 있는 자리에서 이런 문제들이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결정을 내려줄 사람이 바로 곁에 있다보니 변기는 바로 새 것으로 교체해주기로 했다. 입주일 전까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좀 걱정이었는데, 수리공 아저씨께서 최대한 해보겠다고 하셨다. 문제는 가스레인지였는데, 이건 답이 없었다. 그냥 이대로 사는 수밖에. 중국어로는 顺其自然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반은 체념 상태였다. (사실 이 '토치'레인지를 핑계로, 나의 상해에서의 1년은 대부분 배달음식과 인스턴트, 외식으로 점철되었다.)


여기까지가 끝이었다면. 하지만 당연하게도 많은 문제들이 입주를 하고 나서 또 터져 나왔다. 부엌 서랍만 문제가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안방 옷장 서랍도 이상했고, 베란다 창문은 완전히 닫히질 않아 추울 땐 외풍이 심하게 들어오는 편이었다. 폭우가 오면 베란다에 홍수가 나서 장마철 내내 베란다 물 치우느라 고생했다. 안방에는 큰 창이 나 있었는데, 비가 많이 오거나 태풍이 불면 창문과 벽이 연결된 틈으로 물이 새는지 벽이 젖어 흘러내렸다. 8월 초 상해의 태풍을 한 번 겪고 공포의 벽 흘러내림을 당하고 나서는 비가 많이 오는 날마다 집이 갑자기 무너지는 것은 아닌지 너무나도 무서웠다.


공포의 벽 흘러내림. 시멘트 물이 자꾸 흘러내려 휴지로 막아두었다.


어찌 보면 이런 에피소드들이 있었기에 1년의 상해 생활이 더욱 다이나믹하고 다채로웠다고 볼 수도 있고, 우여곡절 끝에 내게 주어진 이 보금자리에 나는 꽤 정이 들었지만, 순수히 집 계약의 측면에서 보면 나는 완전한 패배자이자 호구였다. 이런 수많은 하자들을 사전에 발견하지 못한 것도 그렇고, 그런 것을 근거로 집세를 깎지도 못했고, 가전을 새것으로 바꿔달라고 요구도 못했으니 말이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언어적으로 잘 통하지 않더라도 집주인과 성공적으로 협상하여 계약한 사람들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경험의 부재가 이 모든 상황의 진정한 패인이었다. 집을 혼자 구해본 적이 없으니 집을 구할 때 어떤 점을 주의해서 봐야 하는지를 전혀 몰랐고, 그랬기에 이 모든 일들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집을 구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좀 정리해보았다. 너무 당연한 것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혹시 나같이 경험이 부족한 분이 계시다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0. 가능하면 천천히, 신중하게 집을 고를 것.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무리 빨리 집을 구하고 싶더라도 꼭 시간을 들여 꼼꼼히 보고 정하기를 바람. 그 집의 낮도 보고, 밤도 보는 것이 좋음. 낮에는 너무 좋아보이던 곳이 밤이 되면 생각보다 음침할 수 있음. 


1. 주변환경, 집세, 평수, 인테리어, 교통, 집주인의 성품 등 각종 요소 중에서 본인이 어떤 것을 선호하는지, 어떤 것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지, 어떤 것은 포기할 수 있는지 등을 미리 정하고 고를 것.


2. 생각해둔 예산 대비 실제 임차료가 저렴할 경우 집주인과 가전이나 인테리어와 관련된 협상을 진행할 것. 물론 반대로 하자가 발견될 경우 그것을 근거로 임차료를 깎는 것도 가능함. 생각보다 흔쾌히 수용해주는 집주인도 있고, 깐깐하게 나오는 집주인도 있음. 가구를 바꿔달라고 했더니 직접 이케아에 같이 가서 같이 고르자고 한 경우가 있었는데, 세입자가 고른 물건이 비싸다며 싼 걸 고르라고 하는 경우도 있긴 했음. 상해의 경우 주로 나이가 좀 있는 집주인 분들이 본인 돈으로 집을 장만한 경우가 많아 이런 협상에 깐깐한 편이고, 나이가 비교적 젊은 집주인의 경우에는 부모의 집을 물려받은 경우가 많고 유복한 편이라 흔쾌히 수용하는 편임.


3. 집의 하자는 꼭 다 해결된 후 입주할 것. 부동산 중개료도 마찬가지. 다 해결되지 않으면 중개료는 지급할 수 없음. 예를 들어, 상해 집들은 단열이 잘 되지 않으므로 창문이 꽉 닫히지 않을 경우 치명적임. 위에 쓴 것처럼 변기 수압은 괜찮은지, 전구는 다 잘 나오는지, 가스레인지는 멀쩡한지, 서랍 등은 고장나지 않았는지 등등 집주인/중개인과 꼼꼼히 확인하고, 다 해결된 후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추천함. 중요한 건, 입주하기 전 발견된 하자는 꼭 사진 말고 영상으로 찍어둘 것. 자칫하면 계약 만료 후 퇴실 시 내가 저지른 짓으로 오해받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거나 환급 액수를 깎는 경우가 발생함.


4. 상해의 겨울은 습도가 높고 실내 단열 및 보온이 잘 되지 않아 온도와는 관계 없이 매우 추움. 온돌 딸린 집이 아니라면 1인용 전기장판 혹은 라디에이터 등 필수. 다만 막상 상해 사람들은 이런 것에 이미 적응해 있어서 집이 그다지 춥다고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이런 것들이 설치되어 있지 않기도 하고 필요성을 못느끼기도 함. 따라서 2번 항목처럼 주인과 협상을 할 때 좀 좋은 난방 관련 가전을 요구하는 것도 권장함. 


5. 계약은 꼭 신분이 확실하게 증명된 집주인과, 중개인을 끼고 할 것. 상해에는 부동산 중개업을 주된 업무로 하는 회사가 간혹 있고, 이 회사가 내놓은 매물을 계약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데, 이런 경우 매우 위험함. 일단 회사가 도산을 하는 일이 발생하면(흔하지 않은 상황 같지만 꽤 자주 일어남), 이 회사와 계약을 한 세입자는 보증금이나 선불한 집세(중국은 첫 계약 때 3개월치 집세와 보통 1개월치 집세 금액 상당인 보증금을 지불하고, 분기에 한 번 3개월치 집세를 한꺼번에 내는 付三押一 방식이 일반적임) 등을 환급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음. 회사가 집주인인데 집주인은 이미 망했고, 중개인도 그 회사 사람이니 당연히 없고, 결국 세입자만 개털이 되는 상황임. 따라서 되도록이면 신분이 확실한 개인 집주인과, 중개인을 끼고 계약하는 것을 추천함. 중개인을 끼는 이유는 중개료가 들긴 하지만 일단 계약 절차가 훨씬 편해지기 때문인데, 우리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계약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돌발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도 있음.


6. 계약서에는 집세를 내는 방식이나 내는 날짜, 금액 등이 명기되고, 집세 외 생활비(수도세, 전기세, 난방비 등)의 지불 방식이 적힘. 마지막 항목에 추가 협상 내용을 적을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여기에 집주인과 협상한 내용을 꼭 서면으로 남겨두어야 함. 예를 들어 거주 기간 중 가전이 고장날 경우 책임소재라든가 집세에 어느 비용까지 포함되는지 등은 문자로 남겨두어야 오해 소지가 없음. 서명은 되도록 여권 영어 이름으로 해야 함. 중국에서 하는 계약이라고 한자로 하지 말고, 여권에 적힌 영어 이름으로 해두어야 주숙등기나 여타 일들을 처리할 때 문제 소지가 적음.



아- 집 구하기 참 힘들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건, 집 주인(중국어로는 팡동房东)이 참 좋은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좋은 사람이라는 건, 절대 귀찮게 하지 않고, 문제가 있으면 시원시원하게 도와주는 편이며, 하나하나 따지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본토 출신의 상해인(上海人, 상해 말로는 상해닝上海宁)이었는데, 유복한 집에서 자란 사람이라 여러모로 관대했다. 돈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과시하는 편도 아니었고, 상해 사람답지 않게 大方했다. 


이상한 집주인을 만나면 여러모로 골치가 아프다. 집세 협상부터 난항을 겪기도 하고, 가전가구를 바꾸는 것에서 하나하나 꼬투리를 잡기도 하고, 심지어는 집이 잘 있나 궁금해서인지 복사해둔 집열쇠로 임차인이 없을 때 (아니, 심지어 있을 때도!) 집에 들어와 이래저래 살피기도 한다. 그래서 계약할 때 집주인에게 여분의 열쇠가 있는지 등을 미리 확인하기도 한다. 나는 그래도 집주인만큼은 잘 만나 여러모로 구속당하지 않고 1년을 날 수 있었으니 천만다행이라고 하겠다.


집주인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귀국을 앞두고 퇴실 절차를 밟을 때의 일이다. 다른 집주인들은 직접 집에 와서 1년간 세입자가 생활하면서 고장낸 건 없는지 매의 눈으로 꼼꼼히 살펴보고 문제가 있으면 보증금을 깎곤 했는데, 내가 퇴실하던 날에는 집주인은 오지 않고 중개인만 왔다. 해외 여행을 갔다고 했다. 그래도 마지막이니 중개인이 영상통화를 걸어서 퇴실 절차를 설명하고 "집 한번 보실래요?"라고 말하며 휴대전화로 집 구석구석 보여주려고 하는데, 집주인이 "에이, 당신이 거기 있는데 무슨 걱정이에요? 그냥 마무리 합시다"라고 하며 쿨하게 끝내는 것이 아닌가! 상해의 이 집주인을 만나고 나는 진정 '구김살 없이 자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가진 것이 많았기에 구겨질 일이 없어서 그런 걸까? 어찌됐건 고마운 일이었다.


상해의 '이 한 몸 누일 곳'은 난징시루로 정해졌다. 1년 사는 집에 정 주고 싶지 않아 소품들도 많이 사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만취해서 택시에 타도 집주소를 대라고 하면 술술술 나올 정도로 내게는 익숙한 공간이 되었다. 어떻게 정이 들게 되었냐고? 그건 앞으로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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