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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Jul 17. 2022

그 시절, 은행과 보디가드

산시(山西)·허난(河南) 지역연구 3일차 (2)

전편에서 열심히 핑야오의 고성으로서의 면모를 서술해봤다면, 이번에는 감성감성은 잠시 빼고 '고대의 월스트리트'라 불리는 핑야오의 특별한 역사를 보여주는 곳들을 좀 소개해볼까 한다.


청나라 때 산시(山西) 지방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 돈을 잔뜩 벌어 더 이상 집 안에 은자를 놓을 곳이 없을 정도의 부자들. 피땀 흘려 번 돈을 어떻게든 지켜야 했음은 당연하다. 자신의 재산을 지키는 방법 중 가장 안심이 되는 방법이야 물론 내 침대맡, 내 집 안에 보관하는 것이었겠지만 너무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방법은 오히려 도적들에게 훔쳐갈 기회를 줄 수도 있었다. 부자들은 고심 끝에 두 가지의 보험을 들었다. 하나는 표호(票号), 다른 하나는 표국(镖局)이다.


표호(票号)는 중국 최초의 은행으로 여겨지는데, 한 마디로 은자를 놓을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 은자를 맡겨둘 공간을 제공해주는 곳이다. 어느 지역의 표호에서든 표호에서 받은 종이 한 장만 갖고 가면 자신의 돈을 찾을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무척 편리하다. 실제로 표호는 예금, 대출, 환업무 등을 통해 이윤을 챙기는 오늘날의 은행과 유사한 기능을 지녔다. 청대 통틀어 51개 표호 중 43개가 산시성 사람이 세운 것이고, 그중 핑야오에만 22개가 있었다고 하니 그 당시에는 핑야오가 현대 상하이 같은 금융 도시였음은 분명하다.


중국 최초의 표호라는 일승창(日升昌) 표호 역시 이곳 핑야오에 있는데, 1823년 설립된 곳이다. 중국에서는 관우나 재물과 관련된 명승고적에 가면 꼭 틈새로 어떻게든 돈을 넣어두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판을 튕기고 있는 밀랍 직원(?)의 곁엔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던져둔 지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일승창 표호와 돈다발을 받은 밀랍 직원


돈 많은 사람들에게 돈을 맡겨둘 공간만 있으면 충분히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까? 안타깝게도 아니었다. 부자들은 또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만약 은자를 가지고 어딘가로 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는데, 도중에 도적을 만나면 어떻게 하지? 그래서 든 두 번째 보험이 바로 무력으로 재물을 노리는 사람들을 제압하는 표국(镖局)이었다. 현대식으로 하면 보디가드다.


'표국'의 표(镖)는 칼집 끝의 장식, 칼 끝을 일컫는 한자로, 표창에도 쓰인다. 표국은 이런 무기를 가지고 뭔가를 하는 사람들임을 짐작할 수 있다. 현대 중국어에서 보디가드를 바오뱌오(保镖)라고 하는데, 여기에도 같은 한자가 쓰였다.


핑야오에 있는 중국표국박물관


표국은 일정 보수를 받고 돈 많은 사람이 재난을 당하지 않도록 막아주고 보호해주는 업무를 맡는다. 무협 사극을 보면 뭔가 중요한 물건을 운송할 때 무장된 장정들이 그 길을 따라가며 경호해주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들이 표국의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사극이나 무협소설을 많이 봤다면 용문표국, 쌍사표국 같은 표국의 이름은 꽤나 익숙할 것이다.


대충 이런 느낌?


표국의 업무 범위는 주로 운송과 경비, 경호의 역할인데, 고객의 물건을 안전히 운송하는 일, 점포의 정상 운영을 돕는 일, 개인 저택의 안전을 보호하는 일, 공적·사적 기관 야간 경비, 관가 금고 관리원의 안전 경호 등을 맡는다. 당시 산시성엔 부자도 많았지만 굶주린 사람들도 많았기에 도적은 꽤나 잦았고, 표국의 일을 하려면 당연히 무공이 뛰어나야 했다. 주로 표국에 모여 무사 훈련 등을 열심히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살벌한 각종 칼날들이 전시된 표국


이들은 클라이언트들의 재물을 받아 잘 보관하고 있다가 일정 일자에 맞춰서 목적지로 운송하는 업무를 맡는다. 만약 기간 안에 운송하지 못하거나 맡겨진 물건의 일부라도 없어지게 되면 그만큼 표국에서 보상을 해야 하고, 표국의 명성에도 먹칠을 하는 일이기 때문에 잘 관리해야 한다.


클라이언트들이 보통 부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맡겨진 재물의 가치가 엄청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지하 금고나 비밀 금고를 표국 안에 두게 된다. 이 금고는 당연히 관리가 삼엄해야 하고, 우두머리(镖头)가 아니면 물건을 꺼낼 수 없게 규칙을 만들어두고 있었다.


지하 금고와 여기서도 빠질 수 없는 지폐의 향연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이렇게 성행했던 표국도 시대의 흐름을 이길 순 없었다. 그 배경에는 철로 건설 및 경찰 조직의 설립이 있었다. 아무래도 운송에 필요한 인프라가 구축이 되어버리자 이들이 직접 발로 뛰어 운송을 할 필요성이 없어졌고, 따로 치안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이 생겼기에 더 이상 사설 조직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역시 어느 업계든 영원한 호황은 없다.




구경은 열심히 하고 있는데, 너무 덥다. 저녁을 먹기에는 시간이 또 어중간하게 남은 상황. 이럴 땐 일단 보이는 아무 카페나 들어가 보는 것이 자유 여행의 매력! 내가 찾은 카페는 '핑야오를 만나다(遇见平遥)'라는 이름의 카페였다. 너무 더워서 일정도 좀 점검할 겸 노트를 펴고 앉았다. 커피 한 잔과 아이스크림 와플을 시켰는데 기온이 너무 높아 아이스크림이 이미 반절 정도가 녹은 상태. 그마저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하며 먹는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일까. 달콤하고 맛있다. 여기서 시간을 좀 보내다 저녁을 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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