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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Jul 19. 2022

핑야오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나다

산시(山西)·허난(河南) 지역연구 3일차 (3)

혼밥 스킬 레벨업 중!


홀로 가는 여행은 분명 낭만적이다. 하지만 거기에도 나름의 고충은 있었으니, 바로 식사를 할 때. 나는 사실 혼밥이 어색하거나 힘든 사람은 아니다. 문제는 '혼밥'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렸을 때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적절한 식당이나 메뉴가 있는데, 여행을 가면 그런 식당에 가기가, 또 그런 메뉴가 먹기 싫어진다는 점에 있다. 한국의 예를 들면, 김밥천국이나 서브웨이, 맥도널드 같은 곳은 사실 혼밥을 하기 아주 적절한 식당이다. 하지만 한정된 시간 내에 그 지역을 둘러봐야 하는 여행자의 입장에서, 한국의 특색을 보여주지 못하는 이런 식당에서 한 끼를 때우고 싶진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 고민은 시작된다. 무난하게 면이나 만두 같은 분식(小吃)을 파는 곳에 가서 한 끼를 때울 것인가, 아니면 조금 눈치가 보이더라도 입구에서 당당하게 "한 명(一位)!"을 외치고 들어가 지역 특색 요리를 푸지게 먹고 나올 것인가. 나는 후자를 택했다. 지역연구 제도의 특성상 한 번 갔던 곳을 다시 갈 수도 없을뿐더러, 어차피 이 넓은 땅에 나를 아는 사람도 없는데 혼밥을 한다고 눈치 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렇게 나의 혼밥 스킬은 천천히 레벨 업되고 있었다.


중국에서 어느 식당을 골라야 할지 모를 땐 일단 당황하지 말고 따중뎬핑(大众点评)을 켠다. 자동으로 GPS 반응을 통해 현재 자신이 위치해 있는 도시가 나오고, 도시 내 식당 랭킹도 볼 수 있다. 나는 핑야오에서 먹는 첫 저녁인 만큼 핑야오 특색 요리를 판다는 '런짜이베이팡(人在北方)'이라는 식당을 골랐다.


핑야오 고성은 산시(山西)성에 속해 있는데, 산시성의 특산물인 식초(陈醋) 외에도 핑야오 소고기(平遥牛肉)가 유명하다. 내가 들어간 식당은 주로 이 재료들을 사용한 요리를 파는 곳이었다. 나는 감자채소고기볶음(土豆条牛肉)과 식초계란볶음(香醋鸡蛋), 그리고 완퉈(碗托)라는 요리를 시켰다. 첫 번째 요리는 핑야오의 소고기, 두 번째 요리는 핑야오의 식초, 그리고 마지막 요리는 핑야오 특색 분식(小吃)이라 하여 시킨 것이다. 그리 붐빌 시간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딱 봐도 여행객인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식당 주인분이 직접 등판하셔서 메뉴 소개를 해주신 덕에 엑기스 메뉴만 딱 시킨 것 같다.


소고기 볶음에 들어간 핑야오 소고기는 기름기가 많지 않은 살코기로 되어 있어서 씹는 맛이 좋고 건강에 좋은 느낌이 들었다. 식초계란볶음은 얼핏 굉장히 실 것 같지만 오히려 식초가 들어감으로 해서 감칠맛이 살아난 느낌이었다. 완퉈는 메밀가루를 주성분으로 한 요리인데, 묵과 도삭면의 중간 식감이랄까? 거기에 마늘과 식초, 간장, 고추기름 등으로 양념을 해 좋은 반찬이 되었다. 하지만 요리의 맛이나 완성도보다도 식당 주인분의 친절함이 돋보였던 식당이었다. 혼자 온 손님이고 뜨내기임이 분명함에도 열정적으로 핑야오 음식에 대해 설명해주셨던 핑야오 토박이 주인장. 언제 또 만나볼 수 있을까?


식당 내부와 그날 시켰던 음식들


핑야오에서 즐기는 색다른 공연, 요우졘핑야오(又见平遥, 우견평요)


친절한 주인장의 식당에서 배를 채우고 나는 7시에 시작할 한 특별한 공연을 보러 갔다. 막 고성에 도착했을 때 숙소까지 데려다주던 기사님이 추천해준 바로 그 공연, <우견평요(又见平遥)>였다. 숙소로 들어가던 길에 C trip(携程) 어플로 예매를 했고, 고성을 구경하던 시간에 짬을 내어 실물표를 교환했다.



공연장은 고성 바깥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나는 숙소에서 잠시 개인 정비를 한 뒤 천천히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성 중심부와는 달리, 고성 밖으로 나가는 문에 가까워질수록 실제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집을 더 많이 볼 수 있는데, 나는 오히려 이런 생활감 있는 고성의 모습이 한적하고 더 좋았다.



고성을 나가 성벽을 둘러싼 해자(垓子)를 지나면 꽤나 크게 지어진 공연장 입구를 볼 수 있다. 사실 핑야오에 있으면 고성 밖으로 나갈 일은 많지 않은데, 공연을 계기로 밖에서 고성을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공연장에 도착하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7시 공연을 기대하며 공연장 밖에 모여 있었다. 입장할 때 사람이 몰릴까 봐 입장 가능한 출구를 지정해두긴 했지만 역시 중국. 사람이 많은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자 그럼 여기서 잠깐, 이 <요우졘핑야오(又见平遥)>라는 공연이 어떤 공연인지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중국 각지를 여행하다 보면 크게 두 가지 형태의 관광공연을 접할 수 있다. 하나는 실제 경치에 공연 요소를 접목시킨 형태의 '실경 공연'이고, 다른 하나는 고층 빌딩의 조명을 이용해서 쇼를 보여주는 '등광쇼'다. 오늘 관람하는 핑야오의 이 공연은 전자인 '실경 공연'에 속한다.


중국인들은 흔히 남방 지역에는 인상(印象) 시리즈, 북방 지역에는 요우졘(又见) 시리즈가 있다고들 한다. 초기에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장이모우(张艺谋) 감독이 남방 지역에서 총연출을 맡아 인상 시리즈가 시작되었으며, 이후 역시 중국의 유명 감독인 왕차오거(王朝歌) 감독이 북방 지역의 특징을 담아 요우졘 시리즈를 연출하면서 더욱 다양해졌다고 볼 수 있다.


요우졘 시리즈 중 특히 오늘 관람하는  <요우졘핑야오(又见平遥)>가 여행지에서 꼭 봐야 할 공연으로 손꼽히는데, 2019년 기준 이미 5억 위안 이상의 공연 수익을 내고 있다고 한다. 2013년부터 시작된 공연으로, 북방에서는 가장 수작으로 호평받고 있다. 핑야오의 남성들이 산시성 부호의 아들을 목숨을 바쳐 지켜내는, 그러니까 표국(镖局)에 속한 남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관객이 챕터별로 직접 공연장을 옮겨 다니며 관람하는 공연이라는 특징이 있고, 관객이 관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연의 일부가 되어 배우들과 상호작용하는 점도 특별하다.



실제로 이 공연에서 관객이 객석에 앉아 무대를 볼 수 있는 부분은 마지막 챕터 정도밖에 없다. 나머지 챕터들은 모두 서서 관람하고, 직접 발로 움직여가며 공연을 보아야 한다. 특히 2장에서는 무대에 청나라 거리를 재현해 두었는데(위쪽 왼편 사진), 배우들이 당시 상인을 연기하고 있고, 관객이 직접 돌아다니며 그들에게 말도 걸고 상호작용 할 수 있었다. 내게도 어떤 배우가 다가와 비단을 사지 않겠냐고 묻기도 했다.  


공연의 마지막 챕터는 관객들이 앉아서 관람을 하게 되는데, 무대에 온통 밀가루가 발라져 있었다. 배우들이 흰색 무언가를 들고 연기를 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밀가루 반죽이었다. 산시성의 면식(面食) 문화를 보여주는 부분인 것 같았다.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위험천만한 보디가드 임무를 수행하는 핑야오의 남자들을 보여줬던 이 공연은 그래도 낮동안 고성을 돌아다니며 역사 공부를 좀 하고 봐서 그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공연 중간중간 사진도 찍을 수 있고, 동영상 녹화도 가능했는데, 그만큼 공연 콘텐츠에 대한 자신이 있다는 뜻으로 보였다.




고성의 밤


공연을 다 보고 공연장을 나오니 어느덧 해는 다 지고 없었다. 그토록 와보고 싶었던 고성이고 일정상 내일이면 이곳을 떠나야 하는데, 고성에서 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 밤에 무엇을 할까 하다 역시 고성에 있는 배낭여행자라면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고성의 밤거리를 거닐며 맥주 한 잔 할 곳을 찾기로 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만난 곳이 '어우위 지우바(偶遇酒吧)'. 우연히 만난 술집이라는 뜻. 정확히 내 목적에 부합하는 곳이었다. 사실 이 집에 들어가게 된 계기는 매우 단순했다. 지나가다가 즉석에서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려서 멈췄는데, 생각보다 가게 안에 사람이 많았던 것뿐. 그런데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가게 주인일 줄은 몰랐다.


병맥주 하나를 시켜놓고 가게 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조명이 붉다 못해 정육점 조명처럼 보인다. 문득, 중국인들은 이런 조명도 좋아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참이 지났는데 어째 병맥주가 오질 않는다. 알고 보니 가게 주인이 신청곡을 받고 한참 노래를 부르는 중이라 서빙을 올 수가 없는 상황. 주인도 한 명, 직원도 한 명, 그리고 그 둘이 동일인물인 참으로 '느린' 가게로다.



가게 벽면에는 손님들이 남긴 메모가 잔뜩이다. '너와 사귀고 싶어'라는 노골적인(?) 사랑 고백도 있고, 외국인 관광객이 자국의 언어로 남긴 의미를 알 수 없는 메모도 있다. 그 와중에 '사장님은 사투리를 말할 때 정말 멋있다!'라고 쓰인 한국어 낙서도 보게 되었는데, 그 옆에 똑같은 뜻을 가진 문장이 번체로 적혀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대만에서 온 여행객이 한국어로도 낙서를 남긴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낯선 곳에서 한국어로 적힌 낙서를 만나니 반갑긴 무척 반갑다.



어렵사리 받아 든 병맥주를 들고 벌컥벌컥 삼키며 주인장의 노랫소리를 듣자니 낮 동안의 더위가 좀 가시는 것 같다. 적당히 쉬고 다시 고성 거리로 나온다. 밤이 내려앉은 고성 안은 낮 동안의 쨍함이 사라지고 약간은 적막한 공기가 감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가 참 길었다. 기차를 타고 핑야오에 와서 알차게 고성도 구경하고, 공연까지 보고. 꿈꿔왔던 고성에서의 하루를 꽤나 알차게 잘 보낸 것 같다. 이제 고성 느낌 물씬 나는 숙소에서 핑야오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밤을 보내야지. 조용한 고성의 밤이다.




[산시·허난 3일차 일정 (핑야오)]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처음으로 일반 열차를 타고 도착한 핑야오 고성, 강추! 낮에는 고성에서 여러 곳들을 둘러보고, 오후에는 한 카페에서 멍도 때려보고, 밤에는 산시성 음식점에서 밥도 먹고(산시 핑야오의 유명하다는 면, 식초, 소고기 모두 먹었다!), 밥 다 먹고 나서는 "요우졘핑야오" 공연도 보고, 공연 다 본 뒤에는 술집에서 음악을 들으며 술도 마시고..! 이 모든 것들이 모두 완전 우연히 만난 것들이라니..! 사실 이 중에 그 어떤 것도 내가 미리 계획한 게 없었다는 사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알차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고성 너무 좋다, 고마워 핑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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