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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Feb 10. 2023

김이 모락모락 나는 낭 한 봉지

시안(西安) 지역연구 1일차 (4)

나는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휴양 여행보다 거리를 구경하고 사람 사는 걸 보는 시내 여행을 선호한다. 그래서 신혼여행도 다들 가는 발리, 하와이, 몰디브 이런 곳 말고 일본으로 다녀왔고. 상하이에 있는 1년 동안 상하이에 있든 지역연구로 다른 도시에 있든 짬이 나면 꼭 사람들 다니는 골목을 둘러보곤 했는데, 시안에선 그런 이유로 가게 된 곳이 바로 회족거리(回民街)다. 



지금 회족거리가 있는 이곳은 본래 청나라 때의 아문과 관청이 있던 곳인데, 90년대부터 이곳에 사는 회족의 비중이 높아지게 되고 이들이 점차적으로 식당이나 잡화상을 운영하게 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조선족이 모여 사는 우리나라 서울의 대림동처럼, 현재 이곳에 사는 회족은 6만 명 이상으로 많은 편이고, 전편에 언급한 청진대사 외에 크고 작은 이슬람 사원도 곳곳에 숨어 있다.



거리 입구로 들어가면 위 사진처럼 회족만의 독특한 간식거리나 음식을 파는 집이 많고, 건물들은 명청대 스타일로 생겼다. 실제 명청대 건물은 (당연히) 아니고, 이 거리를 조성하면서 만든 것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당시 드라마 <장안십이시진(长安十二时辰)>의 인기와 그 안에서 배우 레이쟈인(雷佳音)이 보여준 먹방으로 시안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상당히 높았다. 회족거리를 찾은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증명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양꼬치 구워지는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굵고 붉은 홍류(红柳)라는 나무의 나뭇가지에 양고기를 꽂아서 구워 파는데, 사람들도 많이 줄 서있고 하여 사 먹어봤다. 흠.. 역시 이런 데 오면 입구 근처에서 뭘 사 먹으면 안 된다. 저거 하나에 10 위안이라니. 



다음 군것질거리로 택한 것은 러우쟈모(肉夹馍). 모(馍)는 넓적하고 동그랗게 생긴 빵인데, 그걸 반으로 가르고 그 안에 양념된 고기를 넣어주는 음식이다. 중국식 햄버거 같은..? 고기만 넣으면 퍽퍽하니까 양념 국물을 좀 넣어주고, 얘기하면 고추기름도 넣어준다. 고추기름을 같이 넣어 먹으면 느끼한 맛이 잡혀서 더 맛있다.


우리가 택한 이 식당은 줄 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주문하는 곳과 음식 받는 곳이 나뉘어 있었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가게 옆으로 들어가서 일단 주문을 하고 표를 샀다. 그다음 가게 앞에서 줄을 선다. 십 분 정도 줄을 서니까 우리 차례가 왔다. 흰 모자를 쓴 회족 아저씨가 고기를 다지고, 그보단 좀 젊어 보이는 청년이 빵을 가른다. 인기 있는 집이라 분업도 철저하다. 


고추기름 넣어줄까 물어봐서 넣어달라고 했다. 뜨끈뜨끈한 러우쟈모가 손에 들어왔다. 맛은... 짭조름한 고기 빵? 좀 부들부들한 장조림 고기 같은 게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면 유사하다. 빵이 좀 퍽퍽한 편이라 분명 양념 국물을 안에 넣어줬는데도 목이 막혔다. 게다가 내용물이 흘러내려 체면 차리고 먹기는 좀 힘들다. 길거리 음식이니까 감안하고 먹어야지.



넓은 냄비 안에서 자글자글 구워지고 있는 저 동글동글한 것들은 스즈빙(柿子饼)이라고 하는 것이다. 감 호떡? 이라고 하면 비슷한데, 만드는 과정이 우리나라 호떡과 유사하기 때문. 서안의 린통(临潼)이라는 지역이 감으로 유명한데, 이곳의 감을 가지고 만든다고 한다. 곶감과 밀가루 반죽을 이용해서 만들고, 안에 달달한 속이 들어있다. 기름에 자글자글 계속 구워내기 때문에 다소 느끼하지만 특색 있는 음식.

 


요건 딱히 시안의 특색 있는 음식이라 할 수는 없지만, 중국의 이런 미식 거리나 야시장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디저트, 차오쏸나이(炒酸奶). 쏸나이(酸奶)는 요거트고, 차오(炒)는 볶는다는 뜻인데,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요거트를 급속냉각판 위에 올리고, 뒤집개를 이용해서 긁어낸 다음 위에 견과류나 과일 등을 뿌려주는 음식이다. 뒤집개를 사용하는 것이 마치 음식을 볶는 것 같다 하여 차오쏸나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달달하고 시원한 요거트 아이스크림이다. 안전함! 물론 길거리 음식이라 조심하긴 해야 하지만.. 이미 국내에서 모두 철수한 콜드스톤이 생각난다. 맛있었는데..



골목을 다니다가 엄청난 크기의 대추를 발견했다. 맨 위에 보이는 자오왕(枣王), 즉 대추의 왕은 신쟝(新疆)에서 온 대추고, 그 밑에 보이는 거우터우자오(狗头枣), 즉 개머리 대추(!)는 바로 이곳 시안의 대추란다. 두 대추가 용호상박으로 크다. 과육이 정말 가득할지는 먹어봐야 알겠지만. 여하튼 이 시안의 대추도 신쟝 대추만큼 유명하다고 하니 혹시 대추를 좋아하시는 분이 있다면 한 번 사보셔도 좋을 것 같다.



회족 거리에 처음 방문하면 너무 상업화된 거리에 혀를 내두르는 사람들도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이런 미식 및 상점가로 조성된 곳이다 보니 당연히 돈을 벌려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중국의 물가보다 음식들이 비싸거나 값을 못하는 경우도 분명 있다. 기대를 가득 품고 왔다가 막상 이런 이유로 회족 거리에 와본 뒤 실망하는 사람도 많이 봤다. 


하지만 회족 거리는 입구에 보이는 큰길 말고도, 지도에는 자세하게 표시도 되어 있지 않은 작은 골목이 많이 있다. 고루 뒤쪽이고 사람들도 많이 다니는 곳이니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고 발길 닿는 대로 걸어 다녀보길 추천한다. 오히려 입구에서 가까운 큰길보다, 작은 골목골목에 재밌는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다. 당연한 얘기지만 가격도 좀 더 착한 편이고 사람들도 덜 영악하다(?). 


우습게도 회족거리에서 참 이것저것 많이 주워 먹었는데 마지막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사진에 보이는 둥근 낭(馕)이었다. 낭은 엄밀히 말하면 신쟝 사람들의 음식인데, 신장의 위구르족도 이슬람을 대부분 믿다 보니 회족과 맞는 부분이 있는 모양이다. 갓 구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낭 봉지를 들고 회족 거리를 걷는 기분이란! 따뜻한 낭이 입 안에서 부드럽게 씹힐 때 그 느낌! 화려하진 않아도 사람 냄새나는, 회족 거리 구경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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