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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Feb 12. 2023

그냥 당나라에 밤을 돌려줘

시안(西安) 지역연구 1일차 (5)

시안 성벽(西安城墙)에는 자전거가 다닌다


회족거리에서 간단히 배를 채우고 우리는 시안의 야경을 볼 겸 시안 성벽으로 향했다. 시안 성벽은 지난 답사에서도 다녀오긴 했는데, 그땐 밤이 아니라 낮에 갔기 때문에 야경을 즐기진 못했다. 밤에 보는 성벽도 색다른 매력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성벽으로 올라간다. 입장료는 54위안.


대학 때 다녀왔던 성벽. 저 넓은 성벽을 하염없이 걸었다.


시안 성벽(西安城墙)이라고 하면 명나라 때의 성벽과 당나라 때의 성벽을 포괄하는 개념인데, 일반적으로 명나라 때의 성벽을 가리킨다. 명 태조 때 만들어진 성벽으로 현존하는 성벽들 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고 규모가 가장 큰 성벽이다. 성벽 위에는 옛날에 사용했던 무기도 보존해 두었다. 


이 성벽의 동서남북에 위치한 문들도 실제 명나라 때 있었던 출입구인데, 보통 성벽을 구경할 때 북문에서 성벽을 올라 쭉 내려와 남문에서 나가면 된다고들 한다. 문제는 북문에서 남문으로 가는 거리가 꽤 멀어서, 걸어서 둘러보려면 체력이 아주 많이 필요하고, 보통은 자전거로 구경한다. 관람용 자동차도 지나갈 수 있게 되어 있다. 



밤에 온 것은 처음이었는데, 성벽을 둘러싼 망루들마다 불빛을 켜두었더라. 개인적으로 이런 인공적인 불빛을 크게 좋아하진 않지만, 그게 이곳의 야경을 이루는 중요한 구성요소이니 불만 없이. 



그리고, 진짜 있었다. 자전거 하이킹족! 우리나라 성벽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된다 싶지만, 이곳 벽의 너비와 길이를 봤을 때 자전거든 차든 다니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중국 여름밤에 빼놓을 수 없는 건 뭐다? 바로 광장무(广场舞). 성벽 아래로 보이는 거리에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참 건강한 습관이다. 



이날은 재미있게도 서안 성벽 예술단(西安城墙艺术团)의 2019년 상반기 정리보고가 있는 날이었다. 예술단이라 그런가 정리보고를 이렇게 LED 쇼로 하더라. 성벽의 조형물을 이용해서 멋진 쇼를 준비해서 재미있게 구경했다.



자전거를 못 타는 나는 북문에서 남문까지 쭈욱 걸을 용기가 없었고, 설렁설렁 걸어서 가까운 문에서 내려가기로 했다. 가장 가까웠던 곳이 용녕문(永宁门)이었는데, 내려가서 밖을 보니 이런 풍경이 있었다. 맞은편에 보이는 저 화려한 건물은 전편에서 언급한 시안의 종루(钟楼)다. 


이전 글에서 종루가 시안이라는 도시의 중심에 있다고 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남문인 용녕문에서 북쪽을 올려다보면 종루의 모습이 저렇게 똑바로 보이게 되는 것. 아- 이토록 곧게 뻗은 길이라니! 시안의 네모 반듯한 매력, 인정합니다!


그나저나, 시안은 가로등도 중국매듭(中国结) 모양이네. 천년고도다운 모습이다. 고풍스럽고 좋아.



그냥 밤을 돌려주면 안 될까, 대당불야성(大唐不夜城)


성벽을 다 돌아보고 나서 숙소 쪽으로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숙소에 그냥 들어가기는 좀 아쉬워서 방황하다 보니 숙소 앞에 있는 빛나는 탑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대안탑(大雁塔)이다. 찾아보니 대안탑에선 매일 밤마다 음악분수를 틀어준다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구경꾼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대안탑의 야경은 내일 구경하기로.



대안탑을 등지고 뒤를 돌아보니 여기도 또 흥성흥성하다. LED 조명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이곳은 대당불야성(大唐不夜城) 거리. 대안탑 남광장에서부터 남으로 당 성벽 유적지까지 이어지는 긴 거리다. 남북으로 약 2km가 넘는 길이를 상업 보행가로 조성해 두었다. 중국에서 유일하게 '성당(盛唐)' 시대를 테마로 잡아 만든 거리인데, 2002년부터 이곳에 조성을 시작했다고 한다.



간단하게 먹고 마시는 상점들 외에도, 이 거리에서는 몇 가지 테마를 담은 조형물들을 볼 수가 있었다. 당나라를 배경으로 한 거리라 그것들이 모두 당나라와 관련된 테마다. 그중 하나는 현장법사. 서유기의 그 현장법사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다. 현장법사가 다양한 포즈를 하고 생동감 있게 서 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테마는 시인 테마. 이백(李白), 이상은(李商隐) 등 당나라 때의 유명 시인들의 조각상과 그들의 작품을 함께 보여준다. 이백의 저 조각상은 월하독작을 상징하는 듯하다. 멋진 시를 남긴 문인이 많았던 당나라였기에 이런 주제의 전시는 확실히 당나라의 특성을 잘 구현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또 이 긴 거리에는 아래 사진처럼 큰 영화관과 미술관, 공연장 등이 있다. 오늘의 시안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먹고, 마시고, 보고, 즐길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갖춰져 있는 셈. '보행가'의 클라쓰가 대단하다. 영화관과 미술관 건물이 너무 고풍스럽고 화려해 시선이 갔다.



하. 지. 만. 앞서 언급한 몇 가지 특징들 외에 이 거리는 내게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법한 놀거리도 많고 먹거리도 많은 거리인데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면 '당나라'를 주제로 한 거리와 어울리지 않는 너무 화려한 LED 조명 때문 아니었나 싶다. 


물론 앞서 본 시인들의 조각상 같은 것들을 밤에 구경하려면 은은한 조명 정도는 있는 게 좋긴 하겠지만, 이 거리엔 그 외에도 너무 많은 곳에, 너무 잡다하게 조명을 많이 달아놔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당최 저런 오색찬란한 불빛과 당나라가 무슨 관계가 있나 싶은데, '아, 찬란한 성당시대'가 테마라면 아주 딱이다.



"가장 중국 스러운 것을 보려면 시안을 보아라 (最中国,看西安)". 거리를 걷던 중 마치 캐치프레이즈처럼 적혀있던 문구. 잡스러운 LED 조명을 보느라 피곤해진 눈에 저 문구가 들어온 순간, 나는 탄식을 뱉었다. 


성당시대의 화려했던 모습을 재현하는 거리에 꼭 LED 조명을 잔뜩 달아놔야만 했을까? 다른 방식으로 그 매력을 보여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다소 촌스러운 이 거리가 중국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았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당나라 때는 애초에 통금이 있어서 원소절(정월대보름)을 제외하고는 밤에 자유롭게 다닐 수도 없었다고 하던데. 밤이 없는 도시, 불야성(不夜城)이라는 말은 송나라 때 개봉의 모습에서 나온 말이라는 설이 유력하다고 하니, 결국 대당의 불야성(大唐不夜城)은 어불성설이 아닌가! 


그냥 당나라에 밤을 돌려주면 안 될까? 중국매듭(中国结) 모양 가로등과 함께하는 고즈넉한 밤이 더 당나라 때의 장안(시안)과 가까울 것 같아. 여행객의 소소한 바람을 뒤로하고 시안에서의 첫날이 저문다.




[시안 1일차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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