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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Feb 15. 2023

옛사람들의 피땀눈물을 마주하며

시안(西安) 지역연구 2일차 (1)

파면 나온대요, 병마용(兵马俑)


둘째날 아침. 오늘은 미리 예약해 둔 빠오처를 타고 시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을 보고 올 계획이다. 바로 병마용갱과 진시황릉. 진시황릉의 동쪽에 병마용이 묻혀있는 병마용갱이 있는데, 두 장소가 2km 정도 떨어져 있다.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이 두 장소는 '진시황제릉박물원(秦始皇帝陵博物院)'이라는 이름으로 합쳐져 관리되고 있다. 


이전에 충칭 여행기에서 빠오처 이용과 관련해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시내에서 진시황릉까지 택시를 타기는 좀 그럴 것 같아서 이번에도 씨에청(携程, Ctrip) 사이트를 통해 빠오처를 예약했다. 어쩌다 보니 내가 주로 조수석에 앉아 기사님과 이야기를 하며 다녔는데, 기사님이 성격이 좋으셔서 아직까지도 위챗 친구로 지내고 있다. 코로나 때 이분이 엄청 우울해하셨는데 (손님이 없어서) 요새는 좀 얼굴이 피신 듯. 시중심에서 병마용갱까지는 40km 남짓 떨어져 있어 차로 한 50분 정도 걸린다.


박물관에 거의 도착했는데 또 비가 온다. 닝보, 쩐쟝에서 비로 된통 당했던 나는 또 비를 보자 한숨이 나온다. 으휴.. 징글징글하다 비.



진시황릉의 조각상을 보고 더 안으로 들어가면 매표소가 있다. 병마용갱과 진시황릉의 입장료는 120 위안. 그냥 둘러만 보면 아무래도 머릿속에 남는 것이 별로 없을까 봐 영어 가이드를 들을 수 있는 리시버를 대여했다. 이건 30.5 위안. 비도 오고 하니 실내로 돌아다닐 수 있는 병마용갱부터 보기로 한다. 



병마용갱. 병마용(兵马俑), 즉 병사와 말 모양의 인형들이 잔뜩 파묻혀있다 하여 병마용갱(坑)이라 불리는 그곳. 세계 제8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고 하는 그것의 시작은 어떤 농부의 '목마름'이었다. 1974년 한 농부가 마실 물을 좀 얻고자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땅에서 도기 인형 조각을 발견한 것. 그 사실을 기자에게 제보한 뒤 발굴을 거쳐 지금의 규모에 이르렀고, 아직 전체가 다 발굴된 상태는 아니어서 현재까지도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진시황릉을 만들 때 이 수많은 도기 인형을 만들어 묻었다는 설이 유력하며, 묻혀있는 도기 인형들의 복식이나 표정이 다 다르고 정교해서 진나라 때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발굴작업이 완료된 갱도를 다녀보면 그 규모가 엄청나서 진시황이 당시 가졌던 위엄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이것들을 만들 당시 중국 전역의 70만 명의 죄수를 동원했다고 하니 사람을 갈아 넣어도 보통 갈아 넣은 게 아니다. 하긴, 중국인에게 70만 명은 우스울지도 모르지만.


수많은 병마용들과 그것을 관람하는 수많은 사람


실제 발굴작업이 진행될 당시 이 도기 인형에는 채색이 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발굴이 진행되고 햇빛에 노출되자 몇 시간 만에 그 색이 모두 바랬다고 한다. 인형이 지하에서 정말 잘 보존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짝이 되는 머리를 찾지 못해 몸통만 남아있는 인형도 꽤 있었지만, 생각보다 온전한 모습으로 잘 서 있는 인형이 훨씬 많았고 정말 그 모습이 다양해 신기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곳은 19년에 방문했을 당시 아직 발굴작업이 진행 중이었던 곳이다. 저 흙무더기로 보이는 곳에서 살살 흙을 떼어내어 발굴을 진행해야 한다. 아마 지금 방문하면 19년에 갔을 때보다 더 다양한 병마용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진시황릉 주변 구역은 거의 지하 박물관 같아서, 지금도 무작위로 땅 파면 뭔가 유물이 나온다는 말도 있다. 대체 진시황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갈아 넣은 걸까...?



신기하고 좋았다는 후기는 여기까지로 하고, 사실 이날 관람은 정말 힘들었다. 유명한 전시관 (=복원이 거의 끝난 곳)에는 정말 사람이 미어터지게 많았고, 앞으로 비집고 들어가 구경하려면 엄청난 내공이 필요했다. 심지어 밖에 비가 와서 그런지 기압이 낮아 실내가 웅웅 울리고 답답했다. 그 와중에 영어 가이드까지 귀로 들으려니, 사실상 사람 많은 전시관에서는 하나도 안 들렸다고 봐야 될 것 같다. 중간에 거의 공황장애가 올 것 같길래 대충 돌아보고 나왔다. 아쉽긴 했지만, 산소 부족으로 쓰러질 것 같아 어쩔 수가 없었다. 혹시 이후 방문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비 오는 날은 웬만하면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공황장애가 올 수도 있다.



누군가의 피땀눈물이 지금의 관광지로



병마용갱을 구경한 뒤 찾은 진시황릉. 무료 관람차로 바로 이동이 가능한 듯했지만 우리는 빠오처를 했기 때문에 대절한 차량으로 이동했다. 진시황릉에 도착하자 비가 더 많이 내려서 제대로 둘러볼 여유 없이 그냥 컴팩트하게 진시황'릉'과 배장묘(陪葬墓)만 구경하고 나왔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사진이 거의 없네.


진시황릉은 역사적으로 여산원(丽山园)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릉이 여산(骊山)의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서 그런 듯하다. 진시황릉은 그 규모와 미스테리한 전설들(!), 그리고 기나긴 역사로 인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제대로 구경을 못하긴 했는데도, 진시황릉의 거대함만은 기억에 남아있다. 우산을 쓰고 릉으로 추정되는(!) 곳까지 갔는데, 아무리 걸어도 끝이 안 나왔다는 슬픈 전설. 찾아보니 무덤 자체는 동서, 남북으로 거의 500m씩 되는데, 그 무덤을 둘러싸고 있는 담과 담 사이는 2km, 6km로 어마어마하게 크다. 어쩐지, 끝이 안 나오더라..


진시황릉과 병마용. 시황제가 당시 가졌던 위엄을 상징하기는 하지만 내게는 당시 혹사당한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는 장소였다. 그 큰 무덤을, 또 그 수많은 도기 인형들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갈려나갔을지. 이집트 피라미드나 중국의 만리장성도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대단한 유적들은 사실상 그 당시 사람들의 피와 땀의 결정체라는 점에서 그것들을 둘러보는 마음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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