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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Feb 18. 2023

LED 폭탄에도 너그러워지는 시안의 여름밤

시안(西安) 지역연구 2일차 (2)

음악분수.... The Love...♡


오늘 글은 과거에 썼던 글 한 토막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요새는 힐링 플레이스로 (사진에 나온 것 같은) 예술의 전당 음악분수를 간다. 지난번 들렀을 때,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틀어주었다. 정말 위. 풍. 당. 당. 하다는 느낌이었다. 힘들 땐 빠앙 터져 나오던 음악과 분수를 떠올리며 심호흡을 하고 큰 보폭으로 걸어본다. 그렇게 하면 분수의 작은 포말과 노을 지던 하늘과 아름다운 불빛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만 같아서.



2014년, 입사 1년차 때 예술의 전당 음악분수라는 힐링 스팟을 발견하고 페이스북에 적었던 글 중 일부다. 돌이켜보면 난 참 음악분수를 좋아했다. 어릴 때 과천에 살 땐 공원에서 분수를 봤던 것 같고, 대학 다닐 땐 학교 수업 끝나고 신대방역까지 걸어가서 보라매공원 분수를 본 적도 있었던 듯.


반짝반짝한 불빛을 담은 물기둥이 음악에 맞춰 덩실덩실 위로 솟구치는 모습은 보는 사람을 묘하게 기분 좋게 한다. 꼭대기까지 시원하게 뻗은 물기둥이 몇 초 정도 고공에 머무를 때의 짜릿함. 음악이 잔잔해졌을 때 귓가에 들려오는 솨아-솨아- 물소리도 기분 좋다.


사실 LED 떡칠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음악분수도 한 떡칠하는데, 그래도 뭔가 음악분수의 조명은 좀 덜 인위적인 느낌이 든다. 분수물이 일으킨 물안개로 불빛이 은은하게 보여서 그런 건지.


그리고, 시안에도 있었다. 내가 이렇게 좋아해 마지않는 음악분수가!



규모의 예술, 대안탑 음악분수


진시황릉에서 빠오처로 숙소로 돌아와 좀 쉬다가 대안탑(大雁塔)의 음악분수와 야경을 보러 밖으로 나갔다. 대안탑이 숙소 바로 앞이라 분수광장도 금방일 줄 알았는데 음악분수는 대안탑의 북광장에서 하는 것이라 생각보다 좀 걸어가야 했다. 본래 8시 30분 공연을 보려고 했는데 이미 끝난 것 같아 낭패다 싶었는데 다행히 9시 공연이 있었다.


음악분수 이야기에 앞서 대안탑에 대해서 소개해야겠다. 대안탑은 대자은사(大慈恩寺) 안에 있어 자은사탑(慈恩寺塔)이라고도 불리는 7층짜리 탑인데, 시안의 상징적인 탑이다. 당나라 때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경전불상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본래 5층짜리 탑이었으나 측천무후 때 10층으로, 이후 전란 등으로 인해 현재의 높이인 7층으로 굳어졌다.


2010년 답사로 왔을 때 대안탑을 와보긴 했었는데, 그땐 낮에 왔기 때문에 대안탑 안에 들어가 맨 위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오기 전날 화산(华山)을 등반했기에 다리가 너무너무 아팠지만 죽기 살기로 계단을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 7층 대안탑 꼭대기에서는 네모 반듯한 시안의 모습도 볼 수 있고, 크게 조성된 분수광장 (그렇다, 이때도 분수가 있었다!)도 볼 수 있었다.


2010년 당시 시안 대안탑의 모습


이번에는 저녁에 왔기에 지난번 봤던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일단 저렇게 조명으로 탑신을 밝게 보이게 만들어두었고, 현장법사와 관련된 곳인 만큼 탑 앞에 현장법사 동상도 볼 수 있었다.



남광장 쪽에서 북광장으로 걸어가 분수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날씨가 오전부터 꾸물꾸물 비도 오던 날이었는데도 밤의 음악분수를 보려는 사람들로 분수 앞은 북적였다. 우리는 한 20분 전쯤 분수 앞에 도착했는데, 이미 분수가 잘 보이는 명당자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사람이 정말 너무 많아서 분수를 찍으려면 팔을 위로 쭉 뻗을 수밖에 없는 정도였다. 동행한 언니는 셀카봉을 들어 영상을 찍은 후 나중에 보겠다고까지.


분수 시작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뭔가 비장한 오-라가 뿜어져 나왔다. 촤르륵 촤르륵 작은 분수가 흘러나오고 음악분수가 곧 시작된다는 방송이 흐르는 가운데, 분수 주변에 서있던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장비를 만지작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장비는 휴대전화일 수도 있고, 고성능 카메라일 수도 있었지만, 뭘로 찍든 피사체가 안 보이면 말짱 꽝이기 때문에 좋은 자리에서 찍어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는 없을 수 없었다.


분수 시작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멀리 보이는 대안탑


대기하는 동안은 대충 이런 느낌이었다. 보이는가, 분수를 둘러싼 저 수많은 사람들이. 뭔가 콩나물 같은 것들이 많네, 라고 생각한다면 맞다. 그게 바로 사람 머리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분수에 큰 기대는 없었다. 사람도 많고 북적여서 제대로 볼 수나 있을까 싶었고 무엇보다 대당불야성 거리에서 느낀 LED와 중국식 심미(审美)로 인한 절망감을 다시 맛볼까 걱정이 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음, 예술의 전당이나 보라매공원에서 봤던 음악분수가 '리듬'과 '색채'로 이야기한다고 한다면, 이곳 대안탑의 음악분수는 '규모'와 '자유분방함'으로 이야기한다는 느낌이었다. 웅장한 느낌의 배경음악이 나오고는 있었지만 음악과 크게 조화를 이루는지는 모르겠고, 대안탑이 배경이 되어주고 있기는 하나 이 분수쇼와는 상관없는 무언가로 느껴졌다.


하지만 중국에서 보는 무언가가 늘 그렇듯 대안탑 음악분수는 엄청난 규모와 자유분방한 물기둥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총천연색 LED로 또 한 번 절망을 맛보긴 했지만 넓은 분수광장에서 음악분수를 연출하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냐는 너그러움이 살짝 생겼다. 물기둥도 마찬가지. 아무래도 예술의 전당처럼 한 방향에서만 보는 분수쇼가 아니고 광장의 형태이기 때문에, 어느 각도에서 봐도 비슷한 모양이어야 하고, 그렇기에 자유분방한 모양으로 나올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로 전날 대당불야성에 비하면 크게 너그러운 평가다. 음악분수니까. 음악분수는 늘 옳다. 미관상이야 어쨌든 덥고 습한 여름밤, 음악분수의 포말을 맞는 기분이 그리 나쁘진 않았다. 백문이 불여일견. 당시 찍은 영상을 공유해 본다. 귀여운 꼬마의 할머니 찾는 목소리는 애교로 들어주시길.



LED 폭탄을 맞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은은한 조명 아래 비친 자은사의 벽과 빨간 단풍잎에 시선이 간다. 검푸른 밤하늘에 붉은 단풍, 붉은 담벼락과 은은한 불빛이 참 잘 어울린다. 시안에 이런 아름다움도 있었구나. 좋아하는 음악분수를 보고 와서 그런가, 좋은 것만 눈에 들어온다. 뭐든지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시안의 여름밤이다.



[시안 2일차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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